<골프와 나>“아들 병훈과 라운드땐 너무 못쳐 화나… 표정관리 힘들었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재형 탁구남자대표팀 감독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사옥 6층 테라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촬영을 위해 드라이버를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안재형 탁구남자대표 감독

안재형(51) 탁구 남자대표팀 감독은 언제부터인가 ‘프로골퍼 안병훈(25)의 아버지’로 불려 왔다.

지난 2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골프장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에서 종일 내린 비로 흠뻑 젖은 채 아들 응원을 위해 코스를 돌고 있던 안 감독을 만났다. 아내 자오즈민(52)도 나흘 내내 안 감독과 함께 아들을 응원했다. 선두에 3타차였던 안병훈은 얼마든지 역전도 가능했지만 부진 끝에 대회 2연패에 실패했다. 안 감독은 “아들이 못 친 걸 비 핑계를 댈 수도 없고… 4일 내내 잘 친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게 골프이니 어쩌겠어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사옥을 찾은 안 감독을 다시 만났다.

안 감독은 “지난해부터 리우올림픽 남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하며 ‘안병훈의 아버지’가 아닌 ‘탁구인 안 감독’으로 돌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안 감독은 아들이 골프선수가 되면서 재미를 못 느꼈던 골프에 이제 다시 빠져들고 싶어했다. 아들에게 골프를 시킨 이후 안 감독의 라운드 횟수는 현격히 줄어 1년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안 감독은 자신이 라운드할 비용으로 아들에게 한 번 더 라운드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안 감독은 1995년 동아생명 탁구팀 코치로 활동하던 시절, 골프채를 잡았다. 탁구계 선배이던 강문수 대표팀 감독, 박종대 총감독, 김택수 감독 등과 어울리는 골프 멤버였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팀 훈련이 없을 때 집 근처 골프연습장에 혼자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아내가 주말만큼은 쉬겠다며 안 감독에게 “아들과 함께 놀아 주라”는 성화에 못 이겨 7세 병훈이를 데리고 연습장에 갔다. 이후 주말이면 연습장에 데리고 가서 놀게 해줬던 것.

안 감독은 부부가 운동선수 출신이라 어린 아들에게 재능을 테스트해 봤다. 아들은 축구나 탁구, 달리기에 별 재능은 없었다. 하지만 연습장에 따라온 아들에게 골프채를 주며 한번 쳐보라고 했더니 흥미를 보였고 힘있게 볼을 치는 모습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아들은 처음부터 장타를 날렸다. 1998년 서울 광진구 세종대 부설 세종초교에 입학시켰고 현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유소연이 이때 아들과 학교 내에 마련된 간이 연습장에서 함께 연습했다.

안 감독은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던 2005년 12월 골프선수로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 탬파로 이민을 갔다. 안 감독 부부는 영주권이 있었다. 골프아카데미에 4년 동안 다녔고 캘리포니아주 UC버클리대에 골프장학생으로 진학했지만 1학년을 마치고 아들은 중퇴했다. 선수생활과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다며 일찌감치 프로행을 택하고 싶어했다.

안 감독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퀄리파잉 실패 후 1년을 더 기다리기보다는 기회가 되는 유럽 2부 투어를 가자고 아들을 설득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남자복식에서 동메달을 따낸 안 감독은 1991년 26세 때 현역에서 은퇴했다. 힘들게 노력한 만큼 돌아온 게 없었다. 가정도 있었고 선배들 역시 노장취급을 받으며 대부분 27세 전후로 그만두던 시절이었다.

안 감독은 1989년 국경을 넘은 사랑으로 중국인 탁구선수 출신 자오즈민과 결혼 후 아들이 태어났고, 대표선수로서 활동하기에 자신감이 없었다. 선수생활을 이어갈 뚜렷한 동기가 없었던 것도 이유였다.

결국 당시 동아생명탁구팀에서 ‘플레잉 코치’ 겸 선수로 활동하다 라켓을 놨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이 이어진 것도 원인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선수생명이 짧았던 풍토도 한몫했다.

1992년부터 지도자 길로 들어선 안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과 1998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코치, 1999년 전임 청소년 코치, 2001년 오사카세계선수권대회 대표팀 코치 등을 역임했다. 외환위기로 1998년 동아생명 팀이 해체되면서 직장도 잃었다. 2002년부터 한국체대 탁구 감독을 4년 정도 맡았다.

안 감독의 베스트 스코어는 골프를 배운 지 4년 정도 지나 경기 하남시 동서울골프장에서 기록한 80타. 하지만 안 감독은 아들이 골프를 배운 지 1년이 조금 지나면서 아들 실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드라이버로 230m 정도 보냈던 안 감독이었지만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미 드라이버로 240m를 날렸고, 70대 스코어도 곧잘 쳤다.

안 감독은 “아들은 흡사 체조선수가 팔힘이 세고 상체가 유연한 점을 많이 닮은 데다 어깨 턴이 좋고 손이 커 골프채를 휘두르기 쉬운 강점을 가졌다”고 기억했다.

안 감독은 미국에서도 아들과 연습라운드를 할 때면 “아들에 비해 너무 못 친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가 많았다”면서도 “아들 앞에서는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탁구인들이 드라이버 치는 것만 보고 내기하자고 덤벼들었다 낭패를 본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탁구인들 중에는 흡사 스매싱을 하듯 어깨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도 있어 ‘훅’ 구질로 고생하지만 손 감각이 뛰어나 쇼트게임 등 컨트롤 능력이 좋다는 것. 안 감독은 “탁구와 골프는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되는 운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골프와 탁구의 접근법이 다르다는 게 안 감독의 생각. 골프는 처음 시작할 때 몇 달씩 레슨을 받고 연습하지만 탁구는 특별한 배움 없이 즐기려다 보니 어렵고 금방 싫증을 내는 것 같다는 것. 또 자신의 경험상 선수로 키우기는 탁구가 골프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안 감독은 “탁구는 늦어도 10세 이전에 라켓을 잡아야 선수로 클 수 있지만, 골프는 재능만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감독은 “아들에게 앞으로 갈 길도 많고 올라가야 할 부분이 많으니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자신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탁구와 연관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