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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6년 10월 19일(水)
존재하는 만물은 인간 신경계가 만든 內面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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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의 뇌과학 이야기 - ② 감각·지각·기억·정체성

우리는 매 순간 ‘감각적 인상’을 분별하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살아간다는 것은 느끼고 분별하는 정신작용의 연속이다. 감각과 지각 그리고 행동은 서로 엮어지면서 우리를 의식적 존재로 만든다. 감각과 지각을 통해 주변 환경을 뇌에서 재구성해낸다. 세계상의 구성은 감각입력으로부터 시작한다. 감각은 지각과 달리 전송채널과 지도를 구성한다. 청각은 달팽이관의 청신경에서 출발해 전용 청각신경전달경로를 따라 소리자극이 대뇌 일차청각피질로 전달된다. 일차청각피질은 신호처리영역이 주파수별로 배열되는 평면 영역지도를 구성한다. 촉각도 마찬가지로 일차체감각피질에는 신체 피부의 촉각정보가 감각의 중요도에 비례하는 면적으로 지도화돼 있다. 지각작용은 감각자극과 연결된다. 즉 지각은 감각입력의 단편자극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내는 구성적 과정이다. 감각자극의 전달 초기 단계에는 감각이 의식되지 않는다. 시각의 경우 망막에서 일차시각피질에 도달하는 0.05초까지는 무엇을 봤는지 의식할 수 없다.

후두엽 일차시각피질에서 시각의 흐름은 두정엽과 측두엽의 두 갈래로 갈라진다. 측두엽으로 전달되는 시각처리과정이 진행돼 0.1초 지나면 색깔과 형태를 ‘의식적’으로 알 수 있다. 앞쪽 측두엽에 시각정보가 전달되면서부터 감각이 의식화돼 지각된다. ‘시각정보가 전달된다’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사과’를 본다는 현상은 사과에서 반사된 빛 알갱이의 자극으로 생성된 전압파가 신경세포의 연결을 통해 측두엽까지 전달되면서 전압파열의 흐름이 ‘색깔’과 ‘형태’라는 놀라운 인식작용을 창출해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지각과정은 창조적 과정이다. 감각정보가 지각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결코 수동적 과정이 아니고 사람마다 고유한 창조적 과정이다. 단편적 감각자극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수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엮어내는 확률적 과정이다.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하려는 ‘열정’을 갖고 있다. ‘연결돼 함께 신경 펄스를 방출하는 신경세포는 함께 묶인다’는 신경과학의 기본 원리인 헤브의 법칙이다. 신경세포가 서로 결합해 작용한 결과는 기적 같은 인지능력이다. 우리의 청각은 시간적으로 바뀌는 공기압력의 변화를 엮어서 소리로, 소리를 엮어서 단어로, 단어를 엮어서 문장과 노래를 창조한다. 뇌 운동신경세포의 무수한 연결로 단순한 동작을 적절한 순서로 연결하면 집짓기, 베짜기와 같은 인간 문화를 이룬 고도의 적응적 능력이 출현한다. 지각이 감각단서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이 더 진행되면 그 단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무엇’인지를 안다는 과정은 반드시 이전 기억이 인출돼야 한다. 어떤 과일이 사과인지 배인지를 안다는 것은 구별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한 정신작용이다. 지각이 알아차린 대상이란 그 속성을 구별하는 한 묶음의 관계들의 집합이다. 즉 구별이 바로 의미다. 대상들을 속성에 따라 구별해 범주화한다. 감각적 인상은 의식적 지각과정이고 의미가 창출되는 뇌 작용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보거나 듣는 내용을 평가하고 분류해 의미를 생성해낸다. 그 결과 주변 환경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우리의 지각으로 생겨난 가치로 물든 환경이 된다. 좋거나 싫은 감정은 우리의 행동을 선택하게 만든다. 결국 행동은 지각의 결과다. 지각의 일부는 기억되기도 한다. 기억이란 지각의 갱신과정이며, 우리는 지각되는 과정을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의 인출을 지각하기도 한다.

새로운 기억의 생성은 이전 기억의 인출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온다. 우연히 본 어떤 장면이 한 번도 회상해 보지 않았던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생각은 ‘생각나기’와 ‘생각하기’가 있다. 생각나기는 자동적으로 기억이 인출되는 현상이고 생각하기는 능동적으로 기억이 기억을 불러오는 과정이다. 인출과정에 따라 기억은 암묵기억과 서술기억으로 구분된다. 암묵기억은 반복행동으로 기억이 형성되며 무의식적으로 인출된다. 서술기억은 사건에 관한 기억으로 기억 인출과정이 의식적이다. 간단히 암묵기억은 우리 몸의 기억이며, 서술기억은 뇌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암묵기억에는 절차기억, 점화기억, 연합기억, 비연합기억이 있다. 절차기억은 몸동작의 순서화된 운동절차로 선조체에서 기억된다. 우리의 습관은 무의식적인 절차기억이다. 점화기억은 기억의 단서를 제시하면 즉시 기억이 확실해지는 현상으로 지각 예비화와 개념 예비화의 두 가지 점화현상이 있다. 서술기억은 사건기억과 의미기억으로 구분된다. 사건기억은 장소와 시간이 핵심 정보이며 기억 인출의 단서가 된다. 사건기억은 주로 자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한다. 그래서 사건기억을 이야기로 구성되는 일화기억이라고 한다. 인간 기억의 핵심은 일화기억이다. 일화기억은 해마에서 만들어진다. 일화기억은 부호화, 공고화, 저장, 인출이라는 네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부호화는 ‘지금 입력된 자극’을 ‘이전의 기억’과 결합하는 과정이다. 지금 입력된 자극은 감각자극 단편에서 색깔, 형태, 움직임 정보가 결합돼 시지각을 형성하는 정보다. 이전의 기억은 대뇌신피질의 감각연합영역에 신경세포의 연결 흔적으로 저장돼 있다. 공고화는 기억을 형성하는 시냅스 막에 새로운 이온채널이 추가되는 과정으로 DNA의 유전정보가 인출돼 단백질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억이 저장되는 곳은 기억이 형성되는 해마가 아니고 대뇌 감각연합피질이다. 새로운 기억은 유사한 이전의 기억에 결합돼 저장된다. 그래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려면 반드시 옛 기억을 ‘통과’하게 된다. 이 현상의 요점은 우리는 옛 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면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전의 기억이 전무한 상태에서 무언가 기억하려면 집중해서 무수히 암송하거나 손으로 반복해서 적어 봐야 한다. 즉 이전에 비슷한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려면 오직 반복해서 절차기억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뇌신피질에 저장된 일화기억은 연상회상과정으로 자동 인출된다. 자동연상회상은 기억이 그물망처럼 일부가 서로 중첩된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에 단편적 단서를 제시해도 온전한 기억 전부가 인출된다. 일화기억이 생성돼 저장되는 과정은 대뇌 전전두엽과 해마의 협동작업이다. 감각연합피질에 저장되는 일화기억은 경험이 누적돼 일화기억 패턴이 중첩되면서 기억의 공통 요소들이 반복돼 범주화된다. 일화기억에서 인출 단서로 작용하는 시간과 공간정보가 사라지고 공통요소만 남아서 범주화된 기억이 바로 의미기억이다. 비슷한 경험의 반복으로 사건의 의미가 견고해진 기억이 의미기억이며 평생 잊어지지 않고 유지된다. 의미기억은 많은 반복으로 절차기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기억은 일화기억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자동적이고 신속하게 획득해 일화기억으로 엮어낸다. 반면에 대뇌신피질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의미기억은 경험의 축적으로 ‘일반성’을 만들어가며 ‘작업의 목적’에 사용되는 느린 기억과정이다. 일화기억과 의미기억은 우리 생각의 재료이며, 생각과 행동에 반영되는 지속적인 표상과정이다.

해마는 연합피질과 연결된다.

해마와 편도는 연합피질에서 감각입력을 받는다. 대뇌피질은 정수리 부분의 중심열을 기준으로 앞쪽은 일차운동피질과 연합운동피질, 그리고 뒤쪽은 일차체감각피질과 연합감각피질이 순서대로 배열돼 있다. 시각의 경우 색깔, 형태, 모양 그리고 움직임이 결합해 대상에 대한 단일 양식 감각이 만들어져 시각적 지각이 시작된다. 청각과 촉각의 단일 양식 감각이 시각과 결합돼 다중 감각 양식으로 결합된 지각정보가 해마에 입력된다. 즉 시각·청각·촉각의 단일 양식 감각이 모두 결합하며 다중 양식 감각이 형성되고, 해마에서는 다중 양식 감각들이 서로 결합해 대상과 공간에 대한 맥락적 기억이 형성된다. 단일 양식 감각은 대뇌 감각연합피질에서 만들어진다. 해마는 일차감각피질·일차운동피질과 거의 연결돼 있지 않고 연합감각피질과 상호 연결돼 있다. 일차감각피질과 일차운동피질의 신경세포들은 모듈 형식의 연결이며, 연합감각피질에서는 모듈성이 약해지고 그물망 형태의 연결이 된다. 일차감각피질의 지도화된 배열과 모듈식 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적으로 정해지는 인간 고유의 신경연결이다. 물론 시각과 청각의 장애와 집중적인 훈련이 일차감각피질을 변형시키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형태가 비슷하다. 반면에 연합감각피질은 해마와 연결돼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들을 기억하게 한다. 인간이란 종 고유의 감각적 특질을 보존하는 일차영역과 새로이 학습하는 기억을 저장하는 연합피질로 구분된다. 개나 고양이의 일화기억은 매우 빈약해서 한 시간 이상 지속하기 힘들지만 인간은 수십 년 전의 일들을 기억해낼 수 있다. 인간에서 가능해진 일화기억으로 평소에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이 생겨난다. 즉 자신의 자전적 일화기억을 매 순간 인출하는 과정이 우리의 ‘개인적 자아’를 만들어 낸다.

세계의 존재는 우리의 신경계가 만든 내면의 표상이다.

인간은 지난 경험기억을 바탕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반면에 동물은 사건기억이 약해서 사건이 전개되는 바탕인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빈약하다. 그래서 뇌과학자 에덜먼의 표현대로 동물은 ‘기억된 현재’만 존재하고 그 결과 동물의 행동은 감각입력에 대한 즉각적 반응이 대부분이다. 동물은 기억을 반영한 행동이 아닌 감각입력에 대한 반응으로 즉시적 동작을 한다. 즉 동물은 감각에 구속된다. 해마의 작용으로 ‘기억’이란 능력을 만들어낸 인간은 과거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의 행동을 선택하고,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해마에서 사물의 지각을 연결해 맥락적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은 해마에서 공간에 배치된 사물에 대한 ‘패턴분리’와 ‘패턴완성’이란 과정을 거친다. 사물의 구별 가능한 개별 패턴을 대뇌 언어영역에서 단어로 대응관계를 만들게 된다. 결국 인간의 일화기억은 지각으로 구분 가능한 대상을 출현시키고 대상의 언어적 표현으로 의미가 생겨난다. 언어의 출현으로 구분된 대상을 단어로 지시해 단어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갖게 된다. 왜냐하면 대상의 구별 자체가 바로 대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화기억이 약한 동물은 감각에 구속되고 인간은 의미에 구속된다. 일화기억의 언어적 표상으로 출현한 ‘의미’가 인간 행동에 반영되면서 인간을 의미를 추구하는 목적지향적 동물로 만든다. 결국 감각이 제시한 단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지각과정이 출현하고, 해마를 통해 지각이 공고해져 기억이란 현상이 출현하게 된다. 지각과정은 감각단서와 이전기억이 서로 엮어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세계가 이렇게 보이는 것은 세계의 모습이 아니고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상태이다. 세계는 우리의 상태이다. <문화일보 9월21일자 24면 1회 참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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