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3만명 시대>北말투·가난 이유로 따돌림…‘그들만의 대안학교’ 내몰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이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탈북민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기타 연주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들학교 제공

- ⑤ ‘교육의 벽’ 좌절하는 청소년들

학교생활서 가장 어려운 문제
“수업 이해” 48% - “언어” 14%
“남한 친구 한명도 없다” 12%

교육·이민형 탈북 급증하는데
대책은 전무… 맞춤 지원 시급

최근 삶의 질과 자녀의 미래 등을 고려한 ‘교육·이민형 탈북’이 급증하는 가운데 국내 교육 현장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인권탄압이 수시로 자행되고 출신 성분에 따라 미래가 좌우되는 북한 생활에 암담함을 느껴 북한을 탈출하지만, 사선을 넘어 한국에 정착해도 기대와 달리 자녀 교육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는 탈북민들의 호소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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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잇달아 발신하는 탈북 권유 메시지에 비춰 이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탈북민의 사회통합을 위한 당국의 구체적인 정책과 전략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지점이다. 올해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을 반드시 변화시킬 것이다.”(2월 국회),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며 체제 동요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8월 을지국무회의),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10월 국군의 날 기념식) 등 탈북 권유 발언 수위를 높여왔다.

◇“어투와 문화 차이 때문에…”= 21일 북한 인권단체 및 탈북민 대안학교 등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반 학교에 진학한 탈북민 어린이나 청소년, 청년들이 북한식 사투리가 섞인 말투나 문화적 차이, 열악한 경제적 상황 등의 이유로 또래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학업이 뒤처지는 등 학교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일반 학교를 관두고 집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거나 탈북민 대안학교로 옮겨 ‘분리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탈북민 대안학교 ‘우리들학교’에서 만난 탈북민 조성남(30·가명) 씨도 이 중 하나다. “올해로 한국에 정착한 지 8년이나 됐지만 아직 남한 출신 친구를 단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조 씨. 지난 2월 이곳에 입학한 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통과한 데 이어 현재는 고등학교 과정 시험을 준비 중인 늦깎이 학생이다. 그동안 청소 등 고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지만, 탈북민 지원단체 등의 권유로 뒤늦게 학업에 뛰어들어 전문대 기계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조 씨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말투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마음에 상처도 입었다”고 토로했다. 조 씨는 “탈북민들로만 이뤄진 이 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또래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공부에 취미를 붙이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들학교는 탈북과정에서 학업 시기를 놓친 탈북민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2010년 10월 설립된 통일부 산하 비영리민간단체다. 현재 4명의 전임 교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총 3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초·중·고교 과정 전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10세도 안 된 어린이부터 30세 이상까지 학생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올해 7월 한국에 왔다는 이모(14) 양은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해 내년 일반 중학교 입학이 예정돼 있다. 이 양의 가장 큰 걱정은 과연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다. 부모가 중국으로 탈북했을 때 태어난 이 양은 “중국어는 능숙하지만 영어와 한국역사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학교 교사들은 붙임성이 좋고 씩씩한 이 양이 혹시 일반 학교에 입학한 뒤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교수업 따라가기가 최대 난제”=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이 8∼18세 탈북청소년(744명)과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 자녀(950명)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4 탈북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전체 응답자(716명 기준)의 48%가 ‘학교 수업 따라가기’를 꼽았다. ‘문화·언어적응’(14.9%), ‘친구관계’(8.0%), ‘선생님들과의 관계’(1.8%) 등에도 큰 어려움을 느꼈다. 반면 ‘어려움이 없음’이라고 답한 비율은 23.7%에 불과했다. 탈북 청소년들(744명 기준)은 ‘남한 친구 여부’에 대해 대개 ‘3∼4명’(25.7%)이 있다고 답했지만,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12.8%에 달했다.

윤동주(39) 우리들학교 교장은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온 탈북민 학생들이 말투나 문화차이, 선생님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일반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전했다. 윤 교장은 “통일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우리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탈북민들을 이웃이자 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장은 “학업 시기를 놓친 20∼30대 탈북민들의 초·중·고교 과정 학습을 원활히 지원하기 위해, 정부 지원조차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입학 제약이 덜한 미인가시설로 남아있는 탈북민 대안학교가 적지 않다”고 실상을 설명했다. 윤 교장은 “이런 학교가 꾸준히 운영돼 탈북민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는 디딤돌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2006년 탈북한 뒤 일반 고교를 거쳐 서강대를 졸업한 김은주(여·31) 씨는 “탈북민 학생들은 친구들에게 탈북 사실을 무조건 숨기기보다 솔직히 고백하고, 자신이 먼저 다가가 친해지려는 노력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씨는 “만약 무력감을 느낄 정도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크다면 탈북 지원시설을 찾아 전문가들에게 고민을 토로하고 함께 대안을 찾아보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권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