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그를 놓고 싶었다”… 치매 남편 병간호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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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와 느린 춤을 / 메릴 코머 지음, 윤진 옮김 / MID

방송기자이자 앵커인 저자가, 의사인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을 힘겹게 지탱하고 보낸 20년 동안의 간병 기록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쉰여덟 살의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조발성 치매로 남편이 하나둘 무너져가는 과정에서부터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남편의 병세와 그를 돌보기 위한 고통스러운, 그러나 헌신적인 간병의 과정을 생생하게 털어놓고 있다.

이미 시작된 치매 증상을 부인하는 환자를 치료 과정으로 끌어들이기까지 가족이 겪게 되는 어려움과 치매 환자들의 인격권에 대한 고려 없이 선제적 진정제 투여만으로 환자를 ‘무기력한 좀비’로 탈바꿈시키는 요양소의 실상, 조발성 치매 환자의 폭력적인 행태와 이에 따른 간병의 어려움 등이 담겨 있다.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통해 엿보는 치매 환자와 간병의 열악한 실상은 충격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 칫솔을 물어뜯거나 뱉어내고, 어떤 날은 어떻게 뱉어야 하는지도 잊어버리는 상황에서 요양시설의 치과의사가 환자의 이를 모조리 뽑아버리자고 권한다. 이를 다 뽑으면 충치를 예방하고 돈이 많이 드는 치과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게 치매 환자에게 흔히 쓰이는 방법이란다. 그렇다면 보호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자의식을 잃어버리고, 아내는 물론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며, 걸핏하면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환자는 과연 어디까지 존중돼야 할까.

책은 행간에서 독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놓는다. 치매를 앓고 있는 배우자, 혹은 가족을 언제까지 헌신적으로 직접 보살펴야 하는 것인지, 극도의 피로감이 죄의식보다 커지는 순간이 직접 간병을 중단하는 적절한 이유가 되는 것인지, 환자의 의지에 반해 강제로 묶어놓거나 약에 취하게 만드는 게 과연 정당한 것인지….

저자는 왜 직업도, 자신의 생활도 다 버리고 치매 남편의 병상에서 20년이 넘도록 고통스러운 간병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책에서 ‘주위에서 늘 이런 질문을 한다’고 했다. 저자는 해를 거듭하면서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지 너무 오래돼 그가 전에 어땠는지 잊어버릴 정도라고 털어놓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긴 간병 길을 따라오는 동안 남편의 존재는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나 ‘특별했던 남편’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아서’가 그가 내미는 정답이다.

저자가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환자 가족의 고통을 생생하게 다룬 책을 펴낸 건 알츠하이머병의 실상을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경각심을 갖고 결속해서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는 사회적인 세력들을 키워낼 수 있으리라 저자는 믿는다. 이 책을 권하는 것도 책을 읽고 나면 치매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보게 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예방진단을 받거나, 가족들을 위해 장기요양보험에 가입하고, 치매에 걸려서 무능력하게 될 때를 대비한 지침서를 작성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지금 알츠하이머병의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제프리백재단의 회장 겸 CEO다. 말기 치매로 인한 ‘호스피스 관리’를 집에서 하기로 하고 남편 곁에서 20년째 간병하며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