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저금통 어디 가고… 태아에게도 적금통장 쥐어주는 부모들

내일 ‘저축의 날’… 돼지저금통에 동전 넣던 풍경 사라져

“돈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부모가 일정액씩 대신 저축

기업銀 아이전용 적금 상품
출시 4개월만에 199% 늘어

저축 습관·경제관념에 도움
일각선‘富의 대물림’ 우려도

고사리손으로 부모님 안마를 해드리거나 설거지, 심부름 등을 하고 500원, 1000원씩 용돈을 받아 돼지저금통에 넣던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 대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태아 적금’ ‘아이 저축’ 등 부모와 조부모들이 매달 10만 원 이상씩 저금을 해주는 금융상품이 인기다. 이미 연간 1000만 원을 웃도는 대학 등록금이 얼마나 더 올라갈지 모르고, 취업난도 갈수록 심해지다 보니 아이가 한 푼 두 푼 저금통에 모은 돈으로는 대학 입학 후 취업할 때까지 자력으로 생활하기에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직장인 이모(여·34) 씨는 결혼 후 나중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3년 동안 매달 20만 원씩 저금을 하던 중 임신을 했다. 이후로는 아예 아기 전용 적금 통장을 만들고, 시댁 도움까지 받아 저금 액수를 늘렸다. 임신 7개월째인 이 씨는 남편과 자신이 예전부터 저축하던 20만 원과 시부모가 보내주는 20만 원을 합쳐 매달 40만 원을 아기용 적금 통장에 넣고 있다. 이 씨는 “하나뿐인 내 자식이 커가면서 돈 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부모로서 최소한의 준비를 해주려는 것”이라며 “아이가 태어나면 정부에서 지급될 양육수당도 모두 이 통장에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모(여·36) 씨는 임신 8개월째부터 매달 10만 원씩 태아 적금을 넣기 시작한 게 어느덧 6년이 됐다. 정 씨는 “아이가 성인이 되면 대학 등록금을 선물로 주기 위해 적금을 들었다”며 “조금이라도 일찍부터 돈을 모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4일 은행권에 따르면 아이를 위해 적금을 드는 부모들은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5월 출시된 기업은행의 ‘i-꿈을 키우는 적금’은 5월에 761개의 계좌가 개설됐는데 9월까지 2274개로 늘어났다. 4개월 만에 198.8%가 증가한 셈이다. 총 저축액도 5월 1억4900여만 원에서 9월 1억6300여만 원으로 늘었다. 신한은행의 ‘아이행복 적금’도 지난해 1월 292개의 계좌가 개설된 데 이어 올해 10월 현재까지 총 2541개의 계좌가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저축을 통해 자녀들이 경제관념을 자연스레 터득하는 장점과 부모의 재산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된다는 단점이 공존한다고 분석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3’ 논문에 따르면, 자산 형성에 상속과 증여가 기여한 비중이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2000년대 42.0%로 급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저축 양상을 보면서 돈의 흐름과 쓰임에 대해 배우는 것은 좋다”며 “다만 아이를 위해 저축할 경제력이 없는 부모가 느낄 상대적 박탈감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한 사회일수록 자녀들이 부모와 관계없이 유사한 출발선에서 시작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효목 기자 soarup6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