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부검 실패’ 법치주의 根幹 훼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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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6-10-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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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원도, 경찰도, 유족도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린 것일까? 고(故) 백남기 씨 시신 부검영장(압수수색 검증영장) 집행시한이 25일 밤 12시로 종료됐다.

법원은 유족들과 협의할 것을 조건부로 영장을 발부했다. 그런데 그 조건부 내용을 두고, 그것이 부검 자체에 대한 협의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부검 여부는 협의의 대상이 아니고 부검의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해서만 협의하라는 뜻이라는 주장의 대립으로 오히려 극심한 혼란만 초래했다. 이미 부검의 찬반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서 조건을 붙이는 것이 적절했는지 의심스럽다.

경찰은 이날 ‘유족의 완강한 부검 반대 입장과 야간 집행으로 인한 안전사고 등 불상사가 우려돼 강제집행을 하지 않겠다’며 영장 집행을 포기했다. 경찰 철수 후 백남기 투쟁본부 측은 ‘현 정부의 부검 강행 시도가 국민의 힘으로 저지됐다.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검영장 발부부터 집행시한 종료까지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은 혼란스럽다. 경찰은 왜 굳이 유족이 반대하는데도 부검을 하려 하고, 유족이나 투쟁본부 인사들은 왜 저지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부검을 둘러싼 대립이 촉발된 것은 고인의 직접적 사인이 병사(病死)인지 외인사(外因死)인지에 대한 논란 때문이었다. 유족이나 투쟁본부 사람들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경찰이 쏜 물대포에 의한 외인사라고 믿고 있었는데, 병원의 공식 사망 진단은 지병(持病)에 의한 병사라고 나온 것이다. 병원의 사망 진단을 두고 의과대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이런저런 논란들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경찰은 이러한 논란을 불식하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반면 유족이나 투쟁본부 측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외인사가 분명하므로 부검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그 진위를 떠나 공식적 사망 원인은 사망진단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족이나 투쟁본부의 주장처럼 고인의 사망 원인이 외인사가 분명하다면 오히려 부검이 더욱 필요하다. 만약, 사망 진단이 허위라면 부검을 통해 그것을 공식적으로 변경하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도, 향후 고인에 대한 법적 구제에도 유리할 것이다. 부검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은 부검 과정에 대한 참관과 검증을 통해 충분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더 큰 문제는 부검의 찬반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에 있지 않다. 이번 사태로 인해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사실을 고민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가 영장 제도이다. 영장은 내 마음에 들면 집행에 응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자기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그 집행을 거부한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의사의 사망 진단과 부검을 통해 사망자의 모든 법적 지위를 변동시키는 것이 우리의 법 체계다. 따라서 사망진단서는 공적 증서다. 이러한 공적 증서의 진위(眞僞)가 의심스러울 때에는 공식 절차를 통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사망 원인에 대해 유족이나 투쟁본부의 생각과 경찰이나 공적 증서의 진단이 서로 다른 상태에서 부검에 의한 공적 증서의 변경 없이 이번 사태가 종결된다면 이로 인해 법치주의의 근간(根幹)에 심각한 금이 생기는 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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