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경주, ‘日 시선’으로 만들어졌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경주의 문화유적을 잠재적 관광지로 취급하고 개발했다. 수리된 석굴암은 1930년대 일본 도쿄에서 방문한 황실 귀족들이 선호하는 촬영장소가 됐다. 경주고적보존회가 1937년 발간한 ‘경주고적안내’ 중 사진.

배형일 교수 ‘경주유적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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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는 ‘일본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 관광지인 경주는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강점 초기부터 근대적 유적 관광지로 ‘재발견’해 그들의 취향에 따라 개발됐으며, 또 고분 등 유적지와 유물을 저들의 고대사와 연결지어 ‘일선동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실물 증거로 배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버드대에서 한국 고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배형일(사진) 캘리포니아대(샌타바버라) 교수는 이런 내용의 ‘경주 유적의 낭만: 일제 식민지 시대 고고학사진사와 관광 이미지’란 논문을 27일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에서 발표했다. 배 교수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인들의 취향과 정치적 의도에 따라 개발된 경주는 요즘 젊은 사람이나 한류 관광객 선호와는 다르다. 경주가 근래 관광객이 지속해서 감소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1911년 만들어 경주 개발을 주도한 ‘경주고적보존회’는 총독부 관료와 일본 제국대학의 고고학자 등 식민지제국의 ‘파워’ 집단이 주도했고, 조선인은 고작 기사나 인부로만 참여하며 현장발굴이나 촬영은 못 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주의 유적이나 유물을 관광객의 관심 대상으로 수집·보존·정비했다. 석굴암(1909)에 이은 금관총의 발견(1921) 등 고고학적 성과는 조선통치와 ‘조선의 문명화’를 과시하는 선전도구로 국내외에, 특히 사진으로 전파됐고 ‘천년고도’의 이미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당시 조선총독부 등에 의해 제작된 사진첩 등과 학문적 기록은 다양한 식민지 매체를 통해 유포돼 경주의 정통적인 이미지가 창출되고 조작되는 데 공헌했다.

당시 조선총독부철도국이나 경주고적보존회의 안내책자는 ①경주박물관 금관 ②계림 ③월성 ④석빙고 ⑤안압지 ⑥첨성대 ⑦분황사 ⑧포석정 ⑨무열왕릉 ⑩괘릉 ⑪불국사 ⑫석굴암 등의 순서로 ‘꼭 봐야 하는’ 관광지를 선전했고, 이는 ‘일본인 그리고 여행자의 시선’을 따라 배치한 것이다. 이런 코스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일제의 ‘고도(古都)의 경관’ 마스터 플랜이 지금의 신라의 유적과 유물 그리고 경주의 이미지를 물리적, 역사적, 상징적으로 변모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 신라 고분의 주인공들을 일본 신공황후(神功皇后) 등 소위 건국 설화와 연결해 ‘신라왕실과 민족적 기원을 공유했다’는 일제 어용학자들의 ‘일선동조론’의 사료로 선전됐다. 배 교수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교과서와 안내서에 ‘경주는 일본의 고향이다’라고 선전했다. 일본사람을 상대로 일본 사람이 사진을 찍고 광고선전을 했던 일본의 시각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로 인한 문제점에 대해 배 교수는 “영국, 프랑스 등 서구제국주의가 이집트 등 식민지에서 그랬듯, 일제도 고분의 화려한 금관이나 장식품 등 유물 중심으로 마구 발굴해 박물관에 전시했다. 이에 따라 신라인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는 주거지 등 유적지들은 완전히 파괴됐다”고 말했다. 또 “경주에 있는 고려와 조선의 유적은 철저히 묻혔으며, 이를 통해 한반도 문명의 전성기를 신라시대로 단정하고 그 이후는 쇠퇴했다는 논리를 펴 식민정책을 정당화하는 ‘조선정체론’의 근거로 활용했다. 일제가 발굴·조사했지만, 그 해석에 식민지 지배자의 우월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고고학계도 신라고분과 유적의 발굴을 통해 발전했고 당시 그들의 수준이 높았다고 볼 수 없다”며 “이로 인해 석굴암 등이 보존의 명분 아래 해체·복원되며 큰 피해를 보았고, 도굴꾼이 기승을 부려 여러 유적의 큰 손실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배 교수는 “동아시아 전체의 관광역사는 2차대전 이전은 물론 이후 1980∼1990년대까지 일본관광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이런 관점의 동아시아 관광문화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