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3만명 시대>화훼·채소·어업 등 종사… 年수입 수억원 올리기도

탈북민들에 새 일자리로 각광
주변 이웃들과 수확물 나누고
불우 학생들에 장학금 지급도

농촌에 정착해 영농생활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거나, 부농을 꿈꾸며 농작물을 재배하는 탈북자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등 농업이 탈북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로 각광 받고 있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어려운 농업환경에 대한 기억 때문에 농업을 기피, 1.7%만이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득을 올리거나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는 탈북자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1999년 입국한 전영숙(여·43) 씨는 경기 이천시 율면 농장에서 ‘가드너 조경’을 운영하며 초화류와 야생화 등 지피식물을 재배하고 정원과 실내·도로변 조경 사업을 17년째 해오고 있다. 9만여㎡에서 억새·부들·옥잠화·원추리·금낭화·꽃잔디 등 700여 종의 초화류를 재배, 판매하고 있다. 처음에 동네 주민들은 풀이 무슨 돈이 되느냐며 우습게 보았지만 전 씨는 미니정원 조경을 유망한 사업으로 보고 남편과 함께 초화류 식재법을 공부한 후 시댁의 종중 땅을 빌려 본격적인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전 씨는 거래처를 꾸준히 관리한 덕에 연간 1억∼2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마을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농촌체험 및 화훼·채소 영농교육을 하고 있다. 건설경기가 어려우면 출하량을 조절하거나 품종을 다양화해 극복했다. 전 씨는 매년 불우한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명절 때마다 북한 출신 어르신들을 위한 행사를 베풀기도 한다. 전 씨는 “열심히 일해 지금은 땅과 집을 사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며 정착 당시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며 “한국 농촌은 기술이 좋아 농사가 쉽고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탈북민들은 농촌이 힘들고 정착할 데가 못 된다는 편견을 버리고 가능하면 귀농해 농촌을 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양주시 수동면에 거주하는 김혜영(여·45) 씨는 5000여㎡의 밭과 비닐하우스에서 고추와 호박을 번갈아 재배하며 연간 6000여 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중국·라오스·태국을 거쳐 2007년 입국한 김 씨는 남편이 의류사업을 하다 실패하자 보험영업을 하며 남은 정착지원금 300만 원과 6개월 동안 월 생계비 30만 원으로 임대아파트에서 어렵게 생활해야 했다. 김 씨는 2011년 봄 양평에서 남편과 함께 토마토 농사를 시작, 하루 5㎏ 상자 200개 분량의 토마토를 생산했다.김 씨는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고추를 팔아 하루 10여 만 원을 손에 쥐게 되면 보람을 느끼고 아이들 때문에 웃으며 지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탈북민들에게 초기 정착을 위한 지원금과 일자리 등이 충분히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7년 입국한 김송희(여·43) 씨는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서 남편과 함께 펜션 영업을 하면서 텃밭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시간이 나면 바닷가에서 다시마와 굴을 채취하기도 한다. 800여㎡의 텃밭에는 토마토·호박·오이·파프리카·브로콜리·가지·고구마·들깨 등을 재배하고 있다. 북한에서 농업대학을 졸업해 농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농작물이 잘 자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수확한 농수산물은 자급자족하고 남으면 손님과 이웃들에게 나눠준다.

남양주 = 오명근 기자 om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