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의 동네 집 이야기>詩 한 편 곱씹다, 숲 한 번 내다보고… 붉게 물든 ‘책의 향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있는 숲속도서관. 동네 주민들이 운영하는 아담한 도서관이지만 주변 단풍 숲 공간과 어울려 정감있는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분명코 더 감사하고／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한 해를 마감하는 분주함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가을, 잘 어울리는 시 한 편의 감동과 코끝을 스치는 커피 향에 멍하니 창밖을 보니 커다란 사각 창틀 안으로 고개를 내민 붉은 나뭇잎들이 가을을 알리고 있다.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가을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닥에 배를 깔고 동화책을 읽는 아이들과 커피를 앞에 두고 사색에 빠진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삼청공원 내의 숲속도서관. 이름에 걸맞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높은 나무들이 이 작은 도서관을 둘러싸고 있다. 열린 창틈 사이로 불어오는 향긋한 가을바람이 나를 기억 저편으로 데리고 간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이곳에서 멀지 않아서 부모님은 종종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삼청공원에 가시곤 했다. 너무 어려서 전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던 것과 내 손보다 큰 사과를 먹으려고 플라스틱 바가지에 사과를 넣고 바가지째 먹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하지만 삼청공원에 대한 나의 어릴 적 기억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구석구석 사람이 드문 골짜기에 불량기 있는 어른들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놀이 공간을 엄격하게 제한하셨다.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삼청공원은 내 어릴 적 기억과는 많이 달랐다. 나무는 더 울창해지고 관리도 잘되어 있었으며 산책코스도 안전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시민들과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공간도 조성되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숲속도서관이다.

삼청공원 입구에 있는 숲속도서관은 2013년, 공원 내 낡은 매점을 헐고 그 자리에 목조로 만든 작은 도서관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건물형태로 카페와 개방형 서가를 갖춘 1층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지하열람실로 이루어져 있고 곳곳에 자연으로 향하는 큰 통유리 창을 가지고 있다. 특히 1층의 커다란 사각 통유리 공간은 자연 속에서 책을 읽는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보유한 책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자연을 만끽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숲속도서관에서는 간단한 식음료를 판매하고 있으며 유아를 위한 책 읽어주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숲속도서관의 운영은 북촌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북촌인심협동조합이 하고 있는데 조합구성원이 가정주부에서 전문직에 이르는 다양한 경력의 동네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월요일과 국가지정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회원가입자에 한해 책도 대출해 주고 있으니 가을이 더 가기 전에 붉게 물든 숲속도서관에서 분위기 있는 책 읽기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숲속도서관 창밖의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가을이 눈부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책 읽기의 즐거움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