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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Her Story 게재 일자 : 2016년 11월 02일(水)
“툭하면 싫증 내는 나… 매번 다른 제품 만나는 광고가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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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이노션 월드와이드 지하 도서관에서 김정아 제작센터장이 동화책을 많이 읽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미소짓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김정아이노션월드와이드 제작센터장

뭐든지 금방 싫증을 내지만 그만큼 또 많은 것에 호기심을 느끼는 한 소녀가 있었다. 한 나그네가 숲속에서 목욕탕이라고 착각하고 커다란 냄비에 들어가 식인종에 잡아먹히는 잔혹한 삽화를 엄마 몰래 보고, 차가운 눈과 전나무가 즐비한 북유럽 동화를 좋아했던…. 세월이 흘러 그는 세계 주요 광고제 심사위원을 도맡는 한국 대표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ECD)로 성장했다. 매번 다른 제품, 다른 콘셉트, 다른 미디어, 다른 시장 상황에 맞닥뜨려야 하는 광고 시장은 그에게 가장 재밌는 ‘놀이터’이다. 새로운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새롭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만들까 고민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크리에이티브를 평가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김정아(43) 이노션 월드와이드 제작센터장이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말 새로운 형태의 실험적인 창작물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게 주어진 가장 큰 새로운 도전입니다.”

지난 10월 26일 서울 강남구 이노션 월드와이드 본사 도서관에서 만난 김 센터장은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농구나 배구 등 스포츠팀의 ‘플레잉코치’에 비교했다.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하는 플레잉코치처럼 자신의 제작팀에서 직접 광고를 제작하는 것과 더불어 다른 제작팀 여러 개를 총괄하는 제작센터장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센터장으로서 제대로 ‘사고’를 치겠다고 작심하고 있다. 11월에 신설되는 새로운 팀을 통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지난 2개월 동안 공들인 새로운 크리에이티브에 관심이 많은 젊은 직원들을 엄선해 팀을 꾸렸다. 각자의 관심사부터 장점과 경력 모두가 다 다르다. 각자 원하는 것을 순서대로 프로젝트로 구성하거나, 서로 머리를 맞대 또 다른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거나 하는 다양한 방식이 활용될 예정이다.

그는 “맘껏 저질러 볼 것”이라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지만,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왔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영역을 만드는 게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광고시장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과도기’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하던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들이 해당 기업과 브랜드에 느꼈던 아쉬움이지만 정확히 뭔지 몰랐던 것을 콕 집어주거나 기대했던 역할을 시원하게 제시하는 등 ‘인사이트’(통찰)를 주는 광고가 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재밌는 스토리를 내세우는 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는 아닙니다. 광고 자체는 인기가 있는데, 사람들이 정작 그 광고에 나온 브랜드가 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죠. 그 브랜드가 지닌 철학에 동의하고, 공감하고, 그 브랜드를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광고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광고는 다른 창작물과 달리 광고주가 가진 숙제,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한데 최근에는 이런 새로운 숙제를 안게 된 것이죠. 인사이트를 주는 대표적인 예로는 최근 화제가 된 볼보에서 만든 스프레이 캠페인을 꼽을 수 있어요. 야간에 자동차와 자전거 간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기존 방식과 달리 볼보는 자전거 운전자들에게 몸에 뿌리면 야광으로 보이는 형광 스프레이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볼보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데서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한다는 이미지를 얻게 돼 많은 이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죠.”

사회적 변화로 사람들은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세상을 좋게 만드는 기업을 요구하고 있고, 그걸 제대로 표현하고 공감을 얻는 게 광고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오래된 것, 전통이 무조건 바꿔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그만의 특징을 살려 새로운 요구와 결합하는 것이 가장 독특한 매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디지털 시대에 가장 뒤처진 미디어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미디어가 갖지 못한 ‘깊이’를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죠. 올해 국제광고제에서 상을 많이 받은 것 중 하나가 뉴욕타임스의 캠페인이었어요. 뉴욕타임스는 구글 등 여러 회사와 함께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영상물을 만들었어요. VR 광고는 흔히 신기한 경험을 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내전지대의 난민이나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 등 사회적 이슈의 생생한 이면을 보여주는 VR 저널리즘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만큼 신문이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영역의 세상들이 있다는 것이죠.”

김 센터장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자 가장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은 “창작 영감은 어디서 얻으세요?”라고 한다. 그만큼 창작은 어느 순간 우연히 천재적으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흔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하면, 멋진 사람이 갑자기 어느 순간 큰 영감을 받아 엄청난 걸 창작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사실 크리에이티브라는 것은 작은 나의 조각조각이 조금씩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여행을 하거나 책이나 영화, 전시회를 보는 등 평소에 좋은 것을 많이 담아 내 안에 쌓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쌓아가다 보면 나도 더 좋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그게 모티브가 되기도 해요. 쌓인 것들이 내 안에서 화학작용을 하면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일할 때는 노는 것처럼 일하고, 놀 때는 오히려 일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내 안에 많은 것을 쌓으려고 노력합니다. 나중에 60세가 돼서도 주말에는 뭔가 내 안에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을 찾아볼 거예요. 이런 생각이 크리에이티브로서 제 비결 아닌 비결이에요. 모든 광고의 출발은 질문입니다. 이 브랜드는 왜 돈을 써서 광고를 해야 하지? 과제가 뭘까?를 생각하는 것이죠. 치열하게 질문해서 방향이 명확해지면 그때부터는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광고제에서 심사를 할 때도 그의 철학이 그대로 적용된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충실한 광고인지, 그만의 특징과 매력을 잡아낸 것인지를 본다. 그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심사위원 직도 재밌는 공부라고 여겼다.

“공들여 만든 작품을 한 번에 모아놓고 맛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일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매번 자극을 많이 받아요.”

김 센터장은 여전히 어린 시절과 같이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어린 시절 보던 동화책을 다시 주문했다. 어린 소녀의 시선과 40대 직장인이 된 지금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세상에서 유행하는 것이 아닌 지금 나에게 유행하는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번 가을 나의 유행은 주말에 무염치즈를 만드는 것과 새로 주문한 동화책을 읽는 것이에요.”

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국문학 전공을 선택했다. 대학 선배들이 광고공모전을 하는 것을 보고 재밌겠다는 생각에 함께 참여한 이후 광고의 매력을 알게 됐다. 2학년 때부터는 방학 때마다 광고공모전에 매달렸고, 상도 많이 받았다. 그게 제일기획 입사로 이어졌다.

싫증을 잘 내는 그가 광고라는 한 분야에서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 광고 일이, 크리에이티브가 그에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일을 시작할 때 이렇게 광고 일을 오래 할지 몰랐어요. 제 성격이 싫증도 잘 내고 급하고 재밌는 것만 쫓아다니는 경향이 있거든요. 광고는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사실 대체로 힘들고 가끔 재밌었어요. 근데 가끔 재밌는 게 그게 정말 큰 재미였던 거예요. 대체로 힘든 것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큰 재미를 즐기다 보니 20년째 하고 있더군요. 늘 새로운 것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하나하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좀 더 재밌는 것, 덜 부끄러운 것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 있는 ‘유리천장’ 문제도 김 센터장에게는 색다른 의미다.

“위로 올라가기보다는 넓어지는 것을 기대해요. 사회의 유리천장이 아니라 내 안의 유리막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남이 만든 조건이 아니라 나부터가 스스로 선을 긋고 지레짐작하며 겁먹지 않았으면 해요. ‘내가 이런 걸 하기는 어려울 거야’라고 막을 치는 게 더 위험하다고 봐요. 내 영역을 넓히려면 부지런히 막을 깨야 해요. 결국 아직 깨지 못한 것들도 있지만 지금도 내 영역을 넓히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e-mail 유현진 기자 / 경제산업부  유현진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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