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드라마 속 데이트 폭력, 현실에서는 쇠고랑 찹니다

얼마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흥미로운 주제로 회의를 열었습니다. SBS 주말극 ‘우리 갑순이’ 속 남녀 주인공의 애정 행각이 ‘데이트 폭력’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죠. 극 중 갑돌이는 거부하는 갑순이의 팔뚝을 낚아챈 후 으슥한 골목에서 벽에 밀치고 키스를 했습니다.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온라인 상에선 설왕설래가 이어졌죠.

다른 드라마를 살펴보겠습니다. KBS 2TV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신준영은 노을을 괴롭히는 것을 즐깁니다. 남자 초등생이 좋아하는 여학생의 치마를 들치고,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는 것과 비슷한 심리죠. 괜히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머리를 향해 신발을 던집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을 짓궂게 표현했다고 봐야 할까요?

그럼 또 다른 드라마를 얘기해보죠. 젊은층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tvN ‘또 오해영’은 남녀 주인공의 절절하고 격렬한 사랑 표현으로 화제를 모았는데요. 박도경은 오해영이 타고 있는 자동차의 유리창을 주먹으로 깹니다. 오해영은 옛 연인과 함께 있는 박도경의 집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지죠. 또 박도경은 가방과 주먹으로 자신을 때리던 오해영을 벽으로 강하게 밀치고 키스를 나눕니다. ‘또 오해영’의 명장면으로 꼽혔던 대목이죠.

자, 이제 이런 상황을 드라마가 아닌, 뉴스를 통해 접했다고 생각해봅시다. ‘30대 남성 박모 씨가 교제 중이던 30대 여성 오모 씨를 자동차에 앉힌 채, 주먹으로 내리쳐 자동차 유리창을 깼습니다. 오 씨는 박 씨의 집에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신문 사회면의 한 귀퉁이를 장식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상황 아닐까요?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데이트 폭력을 바라보며 무감각한 것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며,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라는 전제를 깔아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 폭력성이 드러나도 더 극적인 상황으로 이어지기 위한 일종의 장치나 설정 정도로 여기는 거죠.

하지만 실생활의 데이트 폭력 역시 당연히 ‘사랑하는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상호 간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각자가 가진 폭력의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죠. 결국 “난 애정 표현이었다”라는 해명은 “난 고통스러웠다”는 상대방의 호소 앞에 폭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마를 만들며 그런 것까지 고려해야 하느냐’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같은 장면이 엄밀히 따지자면 데이트 폭력에 해당한다고 짚어 보는 것은 유의미합니다. 드라마가 모방 범죄의 온상이 돼서는 곤란하니까요.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