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문화에 자유를 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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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 부장

며칠 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안데르센 문학상’ 수상 연설 ‘그림자의 의미’가 화제가 됐다. 주인을 떠난 그림자가 더 강한 존재가 돼 주인을 살해하는 안데르센의 작품 ‘그림자’에 근거한 소감이었다. 하루키는 “인간 개개인에게 그림자가 있듯이 모든 사회와 국가에도 그림자가 있다”며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이를 직시하지 않으면 그림자는 더 강한 존재가 돼 돌아온다”고 말했다. 하루키는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언론들은 일본의 극우·역사 왜곡 움직임 정도로 해석했다. 그런데 그의 연설을 보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역시 주인보다 더 강해진 그림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를 삼켜버린 박 대통령의 그림자 최순실. 그가 문화융성 계획을 짜고 수천억 원의 문화 예산을 쥐고 흔들었다는 의혹도 그림자 국정 농단의 핵심 중 핵심이다. 사실 박 대통령이 정부 출범 초기에 문화융성을 4대 국정기조로 내세웠을 때 많은 이들이 기대했다. 정책적인 면에서 정치, 경제, 민생에 후순위로 밀려왔던 문화가 경제부흥, 통일기반 구축 등과 함께 4대 국정 기조로 선택됐으니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화융성이 창조 경제와 한 묶음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문화계는 실망하고 또 우려했다. 문화를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보며, 단순하게 말해 돈이 되는 문화는 좋은 것, 돈이 안 되는 문화는 의미 없는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됐기 때문이었다. 그 뒤 빅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 세계 시장을 휩쓸겠다는 정책 사업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번 게이트로 문화는 그저 빅 킬러 콘텐츠를 내세워 끌어들인 엄청난 돈을 자기 주머니에 채워 넣는 거대한 사기극의 영토일 뿐이었음이 드러났다.

지난 몇 년간 나부끼는 ‘문화융성’ 구호 아래 문화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1년에 책을 한 권 이상 읽는 성인 비율인 독서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공공도서관 도서 구입비는 삭감되고, 학교도서관 도서 구입비는 거의 반 토막 났다. 수십 년간 소극장 운동을 이끈 민간 소극장들은 경영 악화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 문화예술 관람률 역시 하락 중이고 국민의 50% 이상이 가장 즐기는 여가 활동이 TV 시청이다. 문화 예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무려 9000명이 넘는 문화예술인이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나라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의혹이 제기된 사업에 대해 전면 조사해 문제가 발견되면 과감히 정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문제 있는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겠다는 정책 자체를 바꿔야 한다.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빅 킬러 콘텐츠의 대표적인 예로 꼽는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등이 정부가 방향을 세워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문화를 마음대로 끌고 가려 하지 말고 민간 부문을 자유롭게 놔둬야 한다. 정부는 지원을 하면 된다. 그것도 누구나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 돈이 되지 않는 곳, 하지만 문화의 기반이 되는 곳을 지원하고 키워야 한다. 문화정책의 전환이 시급하다.

c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