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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6년 11월 04일(金)
“약자 보호·차별금지”… 法의 존재 이유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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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터리어스 RBG / 아이린 카먼·셔나 크니즈닉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이즈미 도쿠지, 일본 최고 재판소를 말하다 / 이즈미 도쿠지 지음, 이범준 옮김 / 궁리


일본과 미국의 최고법원에서 ‘소수의견’을 가장 적극적으로 낸 재판관에 관한 책들이다.

한국은 헌법적 분쟁의 경우 독립된 헌법재판소가 담당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일반법원 중 최고법원인 최고재판소와 연방대법원이 다룬다. 이즈미 도쿠지(泉德治·79)는 2002∼2009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사 재임 당시 36건의 소수의견을 낸,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3) 역시 1993년부터 종신제인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젠더 평등과 관련된 역사적인 소수의견을 여럿 내며 ‘RBG’(애칭) 팬덤이 생겼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일본 최고재판소를 말하다’는 이즈미 도쿠지의 저서다. 그는 자이니치(재일 한국인과 조선인)와 인연이 깊다. 1976년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한 재일한국인 김경득 씨가 사법연수소 입소 조건인 일본 국적 취득을 거부했을 때 그를 도와 일본 최초의 외국 국적 변호사가 될 수 있게 도와준 인물이 당시 최고재판소 인사국 임용과장이었던 이즈미 도쿠지였다.

그의 사법관(司法觀)은 기본적으로 다수자와 강자는 소수자와 약자를 차별하고 억압하기 쉽다는 인간사회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이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법과 재판관의 역할이라고 본다. 지난 2일 일본 최고재판소가 자이니치를 대상으로 헤이트 스피치 등을 일삼아온 혐한단체 ‘재특회’에 대해 손해배상을 최종판결한 것도 이즈미 도쿠지와 같은 ‘소수의견’을 지향해온 법조인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최고재판관으로 있을 때 ‘외국인 지방 공무원의 관리직 승진자격’ 등 사회적 소수자의 기본권을 위한 소수의견을 다수 냈는데, 그의 의견은 상당수 판례 변경을 통해 다수의견으로 바뀌었다. 판례 변경에 무척 보수적인 일본에서 드문 일이다.

책에서 그는 특히 종전 직후 공포된 현행 헌법 아래에서 70년간 일본 최고재판소가 헌법 재판에서 위헌으로 판결한 사례가 20건에 불과할 정도로 기본권 보장에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유럽의 헌법재판소, 미국 연방대법원, 한국 헌법재판소를 일본과 비교해 더 많은 위헌판단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다. 저자는 한국 헌법재판소의 성과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노터리어스 RBG’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평전이다. 긴즈버그의 소식은 요즘도 외신을 타고 국내 언론에 자주 보도될 만큼 전 세계적인 유명인사다. 지난해 방한해 국내 법조인들은 물론 김조광수 감독 부부 등 성소수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지명됐다. ‘노터리어스’(악명 높은)란 수식어는 그의 팬덤인 미국의 진보적 청년층에서 붙여준 것으로, 임금차별, 임신중절 금지, 사회보험 등 여러 분야에서 젠더 평등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그에 대한 찬사이다. 수많은 청년 페미니스트와 진보주의자가 그가 내놓는 소수의견을 앞세워 자유와 평등을 외쳤고, 그에게 열광했다. 조지 W 부시의 대통령 당선을 결정한 역사적인 ‘부시 대 고어’ 재판의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그는 “역사의 심판을 받고야 말 것”이라는 소수의견을 낭독해 더욱 유명세를 치렀다. 전 세계 청년 예술가들이 타투와 웹툰, 핼러윈 코스프레 등으로 그를 찬양했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어서 법정을 넘어 대중매체에서도 RBG의 이름은 민주주의적 가치의 상징이 됐다.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차별을 목도했고 법관 시절에도 압도적인 수의 남자 법관들 속에서 남성중심 사회의 폭력을 절감했다. 그는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통제할 권리, 동성결혼을 포함해 결혼생활에서 당사자가 그 형태와 방식을 결정할 권리 등을 앞장서 옹호했다. 책은 긴즈버그의 삶과 업적을 따라가는 딱딱한 형식이 아니라 많은 사진과 만화, 그래픽을 동원해 그의 매력적인 개인적 자아와 취미·취향, 생활방식까지 흥미롭게 소개한다. 대통령 연두교서 때 꾸벅꾸벅 조는 모습, 집무실에서 터번을 쓰고 나타나 재판연구원들이 웃음을 참느라 곤욕을 겪은 에피소드, 형편없는 요리 실력과 운전 감각 등 개인적 면모와 매력을 다채롭게 담았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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