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로버트 샤피로(왼쪽) 교수와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사무소장이 최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교정에서 미국 대선의 추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미국 정치여론조사 분야의 권위자인 샤피로 교수와 김 소장은 사제지간이다. 조기현 사진작가
⑧ ‘초박빙’ 美대선… 한·미전문가 대담
미국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간의 대선전쟁이 종료됐다. 지난해 3월 23일 미국 공화당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의 출마선언으로 시작된 597일간의 미 대선 캠페인은 역사상 가장 추악한 선거전이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미국 정치의 민낯을 드러낸 대전쟁이었다. 올해 미국 대선이 미국 및 전 세계에 던지는 의미와 향후 파장에 대해 이미숙 국제부장이 로버트 샤피로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사무소장과 이메일 및 전화 대담을 했다.
―이번 대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로버트 샤피로=이번 선거는 특별했습니다. 완전히 다르고 새로웠어요. 지금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선 체제가 1970년대에 처음 제도화되고 24시간 언론 시대에 이렇게 예측하기 힘든 선거는 없었던 것 같네요.
△제임스 김=저도 놀랐습니다. 작년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출간한 정세 전망에서 저희는 민주당 후보 당선율이 55% 정도라고 했는데요. 여러 가지 어려운 요소들이 있었지요. 경제 회복도 느린 상황이었고 2차대전 이후 정당이 대선 3연승을 이룬 경우도 드물어 여러 가지 면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어렵다고 예상했지만 심해지는 양극화로 인해 선거 분할이 2012년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후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지요. 박빙의 가능성이 높다고 봤는데요.
―어쩌면 2000년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보셨나요? 2000년 선거 때와 비슷할 정도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나요.
△샤피로=네. 저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트럼프의 득표율이 클린턴보다 높을 수 있지만 선거인단표는 클린턴보다 낮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더 놀랐던 건 두 정당 후보가 유권자들 사이에서 비호감이라는 점이었고 공화당 후보가 여성혐오와 인종 우월의식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공화당은 클린턴을 기소해야 한다고 하고 있고요. 솔직히 제가 듣는 말이 현실인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김=2000년 선거 얘기가 나왔지만 저는 1948년 선거가 기억나는데요.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우파 공화당 후보로 린든 존슨 대통령을 상대했었지요? 트럼프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았나요.
△샤피로=저는 미국 역사를 뒤돌아보며 오히려 미국 건국 초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1796년 선거에서 존 애덤스와 토머스 제퍼슨은 치열한 진흙탕 싸움을 벌였지요. 찰스 코플린이나 휴이 롱 같은 포퓰리스트들도 있었고요.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내세운 후보들도 있었어요. 1948년엔 스트롬 서먼드와 헨리 월리스가 있었고 1968년과 1972년엔 전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리스가 대표적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 중 트럼프와 비교할 만한 후보는 없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비슷한 면이 있었는데 1912년 선거에서 공화당에 걸림돌이 됐을 뿐이지 유력한 후보로 남지는 않았어요. 아마 제일 비슷한 후보는 앤드루 잭슨일 거예요. 트럼프 못지않게 인기도 있었고 또 트럼프와 다르지 않게 1824년 선거에서 아쉽게 존 퀸시 애덤스에게 패배하면서 선거가 조작됐다고 했지요.
△김=저도 기억납니다. 개표수로는 잭슨이 다수를 확보했지만 과반이 아니어서 하원이 대통령을 선택했던 유일한 경우이죠?
△샤피로=그렇습니다. 역사상 처음이었어요. 제3당 후보인 헨리 클래이가 애덤스와 거래해 켄터키주 선거인단 표를 애덤스가 가지고 가게 됩니다.
△김=작년까지만 해도 여러 전문가들은 클린턴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거라고 예측했는데요.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 생각보다 어려운 선거였습니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며 예측하지 못한 점이 있었나요? 어떤 면에서 놀랍게 생각하셨습니까.
△샤피로=저는 아웃사이더가 이번 선거에서 이렇게까지 선전했다는 게 놀라웠어요. 클린턴이 생각보다 어려운 경선을 치렀다는 점도 의외였고요. 클린턴이 이 정도로 비호감일 줄은 몰랐어요. 트럼프는 경선을 뚫고 대선을 이길 수도 있는 유력한 후보로 남았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건 미국 유권자들이 정당 지도층에 대한 불만이 이렇게 컸을 거란 점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것이겠지요.
△김=저도 백인 유권자들이 공화당 지도층에 대해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샤피로=맞아요. 그런데 2010년 중간선거에서 티파티가 비교적 성공적인 선거를 치렀다는 점과 2014년에 에릭 캔터 공화당 원내대표가 낙선됐을 때 벌써 이러한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었지요.
―김 소장은 작년 이맘때 트럼프를 공화당 후보들 중에 유력한 후보로 보고 있지 않았나요.
△김=솔직히 데이터는 그렇게 보였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때는 데이터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고요. 저희가 지난 7월에 기고한 문화일보 글에 트럼프 현상에 대한 내용이 있었지요? 교수님이 보시기에 이러한 현상이 왜 이 시점에 등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샤피로=지금 미국에서는 당파적인 갈등(partisan conflict)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상황입니다. 공화당 쪽 사람들이 민주당 쪽 사람들을 미워하고…. 어쩌면 흑인이 두 번이나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것이 싫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특히 백인들 중에서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봐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이 공화당 지도층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김=정체성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고 보시는군요. 솔직히 미국 정치에서 인종 문제를 빼놓을 수 없지요. 노예제도부터 남북전쟁 그리고 남부민주당파인 딕시크랫(Dixiecrat), 민권법 개혁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까지 인종 문제는 미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입니다.
△샤피로=맞습니다. 특히 지난 8년간 오바마 대통령이 법을 집행하는 경관들보다 흑인들의 편을 들어주는 게 보기 싫었을 거예요. 2009년 하버드대의 흑인 교수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가 집 앞에서 체포됐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게이츠 교수 편을 들었어요. 사실 그 상황은 더 복잡했었지요. 그리고 나중엔 경관들과 흑인 사이에 총격 사건이 잇따르며 오바마 대통령이 경관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컸던 것으로 보여요.
―이번 대선에서는 공화당 지도부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불만이 폭발하며 공화당이 대혼란을 겪었는데.
△샤피로=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은 2008년 오바마 당선 후 그를 단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 대선에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런 불만이 당 안팎에서 표출됐습니다. 또한 공화당이 지지층의 정책 선호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공화당 지도층은 이민법 개혁과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과소평가했어요.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공화당 소속 유권자들이 복지에 대한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에 대해 반대했는데 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공화당 지도층이 당의 성향을 소수계와 밀레니얼 세대에 맞추는 움직임이 싫었을 거예요. 백인 유권자의 지지층을 넓히는 정책을 선호했던 것이지요.
△김=공화당 지도부와 지지층 간의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와 같은 후보가 공화당에서 또 출현할 것으로 보십니까.
△샤피로=저는 가능하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이번 선거 후 당의 강령과 전략을 바꿀 가능성이 높아요. 특히 경선 규칙이나 대의원을 할당하는 방법을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경선에서 트럼프 같은 후보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후보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상당수의 슈퍼대의원이 클린턴을 지지했기 때문이에요. 공화당도 슈퍼대의원을 경선과정에 도입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김=클린턴은 이번 선거에 대한 기반작업을 작년부터 시작해 경선이 시작될 때 이미 몇 백 명의 슈퍼대의원 표를 확보한 상황이었지요. 조직력이 약한 샌더스에게는 시작부터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 이번 대선에서 녹색당과 자유당 후보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득표율이 미미한데 제3당의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샤피로=공화당이 분열될 수 있다고 봅니다. 공화당이 조직과 정체성을 개편해 새롭게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문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공화당 날개 아래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지요. 만약 공화당의 극보수적 성향이 변한다면 중도 성향의 제3당이 구성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창당을 하고 당위원들을 선거 후보로 선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미국 인구입니다. 특히 히스패닉계 유권자는 늘고 백인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그리고 텍사스에서는 히스패닉 인구가 30% 이상입니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가 앞으로 10∼20년 후 미국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으로 보십니까.
△샤피로=이번 선거 격차가 컸던 만큼 공화당은 소수계 유권자들의 지지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하신 주 외에도 플로리다와 네바다가 있어요. 이러한 성향의 주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언젠가 전략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김=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 작업을 누가 어떻게 진행하느냐인데 지금 공화당에서 변화를 이끌 리더가 보이지 않아요. 제가 걱정하는 건 이번 미국 선거가 국제적인 변화와 관계가 있는지 유럽이나 아시아 쪽을 보면 세계화가 후퇴하고 있는 현상이 보입니다. 인종적 정체성을 들고 나서는 정치인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요. 이번 미국 대선에서 영국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같은 사람이 트럼프를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한 것이나, 미국 고립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정치권에서 거론된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입니다.
△샤피로=반자유무역주의에 대한 의견은 공화당 쪽에서도 트럼프 지지자들만 유지하는 입장입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이러한 이슈에 대해 조금 더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유권자들에게는 무역 정책이 어떻게 미국에 이익이 될지가 관건입니다.
△김=이슈 프레이밍(issue framing) 지도자들이 이러한 이슈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제시하는지가 관건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다. 최근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가 발표한 여론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인 과반은 아직까지 자유무역에 대해 긍정적이며 개방적인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샤피로=보다 고립주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조지 W 부시나 오바마의 확장적 외교안보 정책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전쟁과 대테러 정책 그리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있어 미국은 지난 16년간 외교안보에 있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국내 경제 상황도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미국 정부가 새로운 대책을 내세우기보다 무역을 통해 일자리를 다른 나라로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그럼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은 정부에 대한 평가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군요. 정부의 정책 성과에 대한 평가가 좋으면 문제가 되지 않겠네요.
△샤피로=제가 2013년에 레리 제이컵스와 공저한 책에서 소개한 정치 연구 결과만 봐도 유권자들은 경제가 좋아지고 외교정책 성과가 긍정적이면 국제주의적인 외교정책에 대해 더욱 호의적입니다. 유권자들은 실패한 정책이나 미국이 나약해 보이는 걸 받아들이기 싫어합니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이러한 점을 노린 것이지요. 제가 보기엔 다음 대통령이 향후 4년간 어떠한 업적을 남기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 결과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 정부에 시간이 있다고 봐요.
△김=그런데 차기 정부가 성공적인 정책이나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려면 의회의 협조가 필요하지 않나요? 심해지고 있는 양극화가 다음 정부에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샤피로=클린턴시대가 개막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정치적인 타협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정체 상태로까지 갈 수 있지요.
정리 = 이미숙 기자 musel@munhwa.com
[대담자 약력]
- 로버트 샤피로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교수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석·박사 △컬럼비아대 교수(1982~). 정치학과장과 사회경제조사정책연구소(ISERP) 소장 대행 △학술지 ‘공공여론 쿼터리’자문위원회 위원장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정치와 공공여론, 정치 리더십, 미디어 등. 주요 저서는 ‘미국 공공여론과 미디어를 위한 옥스퍼드 핸드북’(옥스퍼드대 출판사·2011) 등.
-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사무소장
△미국 코넬대 노사관계학 전공, 컬럼비아대 정치학 석·박사 △랜드연구소 연구원(2003~2004년) △캘리포니아 퍼모나 공대 조교수(2007~2012년)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 미국연구프로그램 연구위원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 정치를 비롯한 민주주의 제도 비교와 공공정책 등. 저서로는 ‘전쟁터에 있는 기자들’ 등이 있음.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