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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6년 11월 09일(水)
‘조삼모사’든 ‘조사모삼’이든 의견 다를 뿐 틀린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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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안은진 기자 eun0322@

김정탁의 장자 이야기 - (19) 함께 나아가는(兩行)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서양 커뮤니케이션학에선 정보(information)·지식(knowledge)·의견(opinion)의 공유쯤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이런 정의에는 문제가 있다.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건 쉽지만 의견을 공유하는 건 쉽지 않다. 더구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 의견을 공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의 제 갈등은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에서 빚어지는데 커뮤니케이션만 하면 의견이 공유된다는 생각은 안이한 발상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고, 봉합할 수 있는지의 방법론이 커뮤니케이션학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 즉 화합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다는 건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관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야만 소통도 가능하다. 부부의 예를 들어보자. 서로 다르게 자라온 환경을 감안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부부는 화목할 수 있지만 이를 전제하지 않는 부부는 다투기 마련이다. 이것이 동이불화(同而不和)이다. 지금의 남북관계도 동이불화에 빠져 있다.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지만 분단 60여 년 동안 다르게 살아온 점을 서로 인정하지 않아서이다. 그러니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남북이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화이부동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장자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얘기를 통해 화이부동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조삼모사는 원래 열자 ‘황제’ 편에 나오는 글이다. 열자는 노자, 장자와 더불어 중국 도가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장자는 인시(因是), 천균(天鈞), 양행(兩行)이란 생소한 개념을 동원해서 열자의 조삼모사를 새롭게 각색한다. 그래서 열자판 조삼모사와 장자판 조삼모사는 강조하는 주제가 사뭇 다르다. 열자판 조삼모사가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가벼운 우화(寓話)라면 장자판 조삼모사는 도를 통달한 원숭이 주인의 모습을 담은 무거운 격문(格文)에 해당한다.

그래서 장자판 조삼모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익히 알아온 조삼모사 내용과 차이가 있다. 장자판 조삼모사에선 원숭이들이 ‘조삼모사(3+4)’에 대해서 화를 내자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조사모삼(4+3)’으로 먹이 주는 방식을 바꾸었다. 이에 반해 열자판 조삼모사에선 ‘이 바보 같은 원숭이들아! 조삼모사나 조사모삼이나 차이가 없는데 왜 이리 난리야’ 하는 암시가 깔려있다. 이런 꾸짖음은 원숭이 주인이 자신이 옳다는 바, 즉 위시(爲是)에 따른 행동이다. 그렇지만 장자판 조삼모사에선 ‘너희들이 원하면 그렇게 하지’라는 무덤덤한 자세를 보였기에 주인은 자연의 이치, 즉 인시에 따른 행동을 보일 수 있었다.

원숭이 주인은 자연의 이치에 따른 행동을 어떻게 보일 수 있었을까? 큰 앎(大知)의 입장에서 세상사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즉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의 차이보다 모두가 일곱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서이다. 그래서 원숭이 주인은 조삼모사와 조사모삼 중에 어느 게 옳다는 판단을 유보한 채 원숭이가 바라는 대로 먹이를 주었다. 이에 반해 원숭이는 작은 앎(小知)의 입장에서 세상사를 파악했기에 일곱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을 구분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그래서 조삼모사에 대해선 옳지 않다고 여겨 화를 냈고, 조사모삼에 대해선 옳다고 여겨 기뻐 날뛴 것이다.

인시는 인시인비(因是因非)를 줄여 표현한 단어이다. 인시인비란 ‘옮음(是)으로 인해(因) 그름(非)이 말미암는다(因)’는 뜻이다.(2016년 8월 17일자 26면 16회 참조) 그래서 그름으로 인해 옳음도 말미암는다는 말이 성립한다. 즉 옳음에서 그름이 생겨나고, 그름에서 옳음이 생겨난다. 이는 옳음과 그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옮음과 그름이 교차하며 나타난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인시는 자연의 결, 즉 천예(天倪)에 입각해서 세상을 바라볼 때 파악될 수 있다. 인시를 자연의 이치라고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자에 따르면 성인은 별다른 이유 없이 세상사를 자연의 결에 따라 판단한다.

과학도 자연의 결을 제대로 읽을 때 가장 과학적이며, 이때 자연의 큰 원리가 발견될 수 있다. 사람 사는 사회도 자연과 마찬가지여서 인간의 결을 제대로 읽을 때 사회의 큰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법이란 글자를 파자해도 잘 드러난다. 법(法)은 ‘물()’처럼 ‘지나간다(去)’는 의미이다. 그래서 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기에 자연의 균형, 즉 천균에 입각해 있는 법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자연법 개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법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이면 부작용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인은 자연의 큰 원리를 알고 천균에 입각해서 세상사를 판단하는데 원숭이 주인이 그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천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를 위해선 ‘균(均)’과 ‘균(鈞)’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균(均)은 인위적 균형에 가까운 개념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줄이고, 오리 다리가 짧다고 늘이면 이는 인위적 균형이다. 그렇지만 학의 다리가 길더라도, 또 오리 다리가 짧더라도 이걸 줄이거나 늘이거나 하지 않은 채 놔두면 이것이 균(鈞)에 따른 것이다. 자연 세계에는 입이 큰 하마가 있는가 하면 귀가 큰 코끼리도 있고, 날쌘 쥐가 있는가 하면 느린 굼벵이도 있다. 그래서 하나의 잣대로 아름답다 추하다는 식으로 획일화할 수 없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여서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생각과 의견을 무리하게 통일시키려는 건 천균과 어긋나는 처사이다.

그렇더라도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과 막상 마주하는 경우 천균에 입각해서 어떻게 소통에 이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우리 몸을 행글라이더에 맡겨 볼 필요가 있다. 행글라이더를 타고 있을 때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바람이 불면 위로 올라가도록 놔둬야지 몸의 무게를 아래로 향하도록 하면 행글라이더는 엎어지고 만다. 또 왼편에서 바람이 불면 행글라이더가 오른편으로 향하도록 놔둬야지 몸의 중심을 왼쪽으로 이동하면 행글라이더는 엎어진다. 그래서 행글라이더를 탈 때는 바람의 결, 즉 천예를 제대로 읽으면서 자신의 몸을 부는 바람에 맡겨야 한다. 이래야만 하늘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데 이는 오로지 몸을 비울 때 가능한 일이다.

소통을 이루는 방식도 행글라이더 타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왼편의 생각을 지닌 사람과 마주하면 오른편의 생각으로 마주하기보다 왼편의 생각을 인정하면서 오른편으로 보완할 때 조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화이부동의 모습이다. 이럴 때 소통의 가능성도 생겨난다. 그렇다면 상대방 왼편의 생각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행글라이더를 탈 때 몸을 비우는 것처럼 마음을 비울 때 가능하다. 즉 그동안 지녀 왔던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즉 이룬 마음인 성심(成心)을 버릴 때 가능하다. 이래야만 천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마치 돌아가는 물레의 추가 원의 중앙, 즉 환중(環中)을 유지하며 튕겨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2016년 8월 17일자 26면 16회 참조)

배울 수 없는 바를 배우려고 애쓰는 학자(學者)는 환중이란 균형 감각을 지니지 못한다. 작은 앎에 집착해서이다. 말할 수 없는 바를 말하려고 애쓰는 변자(辯者) 역시 환중을 얻을 수 없다. 작은 말(小言)에 집착해서이다. 실천할 수 없는 바를 실천하려고 애쓰는 행자(行者)도 환중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다. 작은 행동(小行)에 집착해서이다. 이처럼 작은 앎, 작은 말, 작은 행동에 함몰된 사람은 물레의 추가 바깥으로 튕겨 나가듯이 다른 사람과도 배움(學), 말함(辯), 행동(行) 등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만다.

조삼모사에서 원숭이가 보여준 것이 이런 모습이다. 그래서 조삼모사에 대해선 거부하고, 굳이 조사모삼을 선택했다. 반면 원숭이 주인이 보여준 것은 큰 앎, 큰 말, 큰 행동에 입각해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을 구분하지 않고 원숭이가 바라는 바대로 먹이 주는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 만약 원숭이가 조삼모사가 아니라 조오모이(朝五暮二·5+2), 아니 조육모일(朝六暮一·6+1)을 요구했더라도 주인은 원숭이가 바라는 대로 먹이를 주었을 것이다. 모두가 일곱으로 통한다는 걸 알아서이다. 이것이 함께 나아가는 양행이다. 양행이란 서로 대립하여도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양행은 유가의 대동(大同)과도 통한다. 대동은 대동소이(大同小異)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는 ‘크게(大) 보면 같지만(同) 작게(小) 보면 다르다(異)’는 의미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크게 보아 차이를 줄이는 게 대동이 목표하는 바다. 양행도 대동과 마찬가지로 크게 볼 때 가능하다. 장자가 그의 책 서두를 대붕의 비상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붕처럼 높은 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두가 하나로 같아진다. 반면 메추라기처럼 작은 새는 날아봐야 나뭇가지밖에 이르지 못해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차이만 드러난다. 장자는 소통을 이루려면 한 단계 높거나, 한 단계 먼 데서 보도록 요청한다. 이럴 때 다른 의견일지라도 차이의 소멸로 인해 의견의 공유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해 온 두 그룹의 애국자가 있다. 하나는 힘의 우위를 통해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해온 매파 애국자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개방개혁을 유도함으로써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도록 한 비둘기파 애국자이다.’ 왜 우리 주위엔 국민을 이렇게 설득하는 정치인들을 찾아보기 힘든 걸까? 대붕처럼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어렵지 않은 일인데. 이것이 장자가 인시, 천균, 양행의 개념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다.(문화일보 10월 12일자 26면 18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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