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분권형 대통령제로 ‘소폭 개헌’ 적절… 통일이후 내각제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문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양재동 공부방에서 책을 보다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이번 개헌은 국민이 공감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국민이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김문현 이화여대 명예교수

‘모든 국민(國民)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김문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행 헌법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조항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헌법 ‘제10조’를 택했다. 이 조항은 대한민국 최고의 가치를 담고 있고 국가의 존재의미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함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 탄생한 9차 헌법이 29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적 사명을 다했고,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특히 ‘all or nothing’식 권력 다툼으로 정쟁과 갈등을 양산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이 임계점에 달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론이 달아오르고 있다. 한 개인이 법치주의를 농락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권력구조 개편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다.

개헌론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면서 너무 정치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김 명예교수를 찾았다. 그는 대학교수로, 헌법재판연구원장 등으로 헌법을 연구하면서 치우침이 없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올 1월 이화여대에서 퇴직한 후 명예교수로 있는 그를 지난 8일 그의 양재동 공부방에서 만났다. 김 명예교수는 “시대 변화에 따라 개헌할 때가 됐다”며 “개헌은 현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규제하는 만큼,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명예교수는 “개헌에는 국민의 참여가 필수”라며 “이번 개헌은 국민 참여형 개헌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번에 다 바꾼다는 생각은 오히려 개헌을 힘들게 할 수 있다”며 “개헌을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영토 조항인 헌법 3조를 바꾸려 시도할 경우 이념적,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개헌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경제 조항이나 복지에 관한 기본권 조항을 헌법에 세부적으로 규정할 경우 국정 운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만큼, 헌법에는 원칙을 천명하는 수준으로 담고, 법률을 통해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헌 필요성으로 시작된 그와의 대화는 헌법과 철학, 정치사상, 윤리학, 통치학 등을 넘나들며 2시간 이상 진행됐다.

―1987년 헌법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948년에 헌법이 제정되고 나서 1987년 9차 개헌이 있었으니, 지금 헌법은 30년 가까이 개정되지 않은 우리나라 최장수 헌법입니다. ‘87년 헌법’ 체제가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시대변화에 따라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보완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개헌이 갖는 시대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헌법을 개정한들 나아질 것이 무엇이 있느냐, 사람이나 현실이 안 바뀌고 법만 바뀌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건 일부분은 옳고 일부분은 잘못된 것입니다. 입헌국가에서는 헌법이 바뀌면 현실이 바뀌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헌법을 바꾼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운영 체제라든가, 기본 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개헌은 우리 헌정에 대한 반성인 동시에 미래의 우리나라, 바람직한 국가체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설계를 의미합니다. 개헌을 위해서는 과거 헌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고쳐야 하느냐, 고친 내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세부적 보완조치가 있어야 하는가 등 상당한 연구가 선행돼야 합니다.”

―정치권에서도 개헌 논의가 뜨겁습니다.

“개헌은 어차피 현실입니다. 개헌은 이상적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개헌은 현실정치에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정치권이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개헌 문제에 접근하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문입니다. 그렇지만 헌법은 최고법이면서 경성 헌법으로 일반 법률처럼 쉽게 개정할 수가 없습니다. 정략적인 고려보다 국민의 삶을 우선해야 합니다. 다음 정권 창출과 관련해서 개헌을 바라보는 그런 정략적인 개헌이라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개헌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국회 과반 의원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통과되는 일반 법률보다 개정이 어렵다. 미국 헌법의 경우 1787년 전문과 본문(article) 7조로 처음 발효된 이후 200년이 넘도록 수정 조항(amendment) 27개만이 추가될 정도로 개헌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김 교수는 “현세대가 새로운 헌법을 만들면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그다음 세대는 그 헌법의 구속을 받는다”며 “헌법 개정이 쉽지 않은 만큼, 신중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바른 개헌 논의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우리나라의 개헌은 주로 쿠데타 등 정변이나 그에 대한 국민의 저항으로 이뤄졌습니다. 개헌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민 참여가 별로 없었습니다.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정하든가 아니면 자기들끼리 타협해서 개헌안을 만든 뒤 국민투표에 부쳐 ‘yes’나 ‘no’ 등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국민에게 선택을 강요해 왔습니다. 정치적 갈등이나 국민의 대립을 부추기는 개헌은 곤란합니다. 국민적인 컨센서스가 있는 사안, 국민이 양해하고 납득하는 부분,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개헌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정 자체가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이어야 하고, 너무 이념 편향적인 것은 논의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헌 논의가 혼란으로 흐르지 않도록 제외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 어디인가요.

“예를 들어 영토 조항이 있습니다. 헌법에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돼 있습니다. 헌법상으로는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그럼 북한이 어떤 존재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대한민국 영토를 점하는 반국가단체가 되는 것이죠. 우리는 평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조항들 간에 모순이 발생한다는 지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 서독기본법처럼 남한 지역만 하자고 하면 커다란 논란이 일어 개헌이 불가능해질 겁니다.”

―경제민주화 등 경제 조항도 개헌 시 논란을 낳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 헌법은 119조부터 상당히 많은 경제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헌법에 경제 조항이 따로 없습니다. 어떤 경제정책을 펼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개인의 재산권이나 자유, 기본적 복지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 당시 다수국민의 지지를 받는 집권정당이 결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는 겁니다. 다수 국민이 우파 정당을 지지했다면 보다 시장경제 정책을 펴는 것이고, 좌파 정당이 집권하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경제 관련 조항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보십니까.

“경제에 관한 원칙을 규정하는 헌법 119조에는 두 개 조항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장경제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경제민주화 등 경제규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경제규제에 관한 규정을 없애자고 하고 일부에서는 규제조항을 더 강화하자고 합니다만 이 두 개 정도는 경제 원칙 조항으로 유지하고, 너무 세부 조항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헌법에는 원칙을 천명하고 운영은 그 시대의 경제 상황에 맞게 법률 등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통령제가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옵니다.

“대통령이 유능하고 자질이 뛰어나면 대통령제는 좋은 제도가 될 수 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국가를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기대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통령제의 단점 중 하나는 실패한 대통령의 문제입니다. 탄핵으로 갈아치울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고 국정 혼란과 국력 낭비를 감수해야 합니다. 또 다른 단점은 대통령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각제의 경우 의원들이 오랫동안 의정 활동을 함께하면서 장차 총리가 될 사람을 자연스럽게 검증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바람에 따라 요동치고, 짧은 시간 내에 검증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권력 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통일이 되면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의원내각제로 완전히 방향 전환을 할 것이냐, 이것은 이번 개헌을 전면 개헌으로 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론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동안 대통령제를 운용하면서 겪은 여러 문제점과 폐해를 수정하는 소폭 개헌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를 좀 더 강화해서 의회와 정부가 서로 협조 관계를 더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분권형 대통령제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지금 시점에서 합리적인 대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김 명예교수는 현 정치 현실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대통령제의 문제점 중 하나가 국민이 선출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기관이 두 개라는 것”이라며 “최근 들어 국민이 각각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명예교수는 “이념 편차가 크고 대립이 격화되는 사회에서 대통령제는 체제 분열적 요소를 강화시킬 위험이 크다”면서 “우리나라가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경우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배분이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헌법에 모든 조항을 담아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헌법에 큰 틀의 규정을 해 놓은 다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관습과 관례에 따라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다수 정당을 차지했을 때는 대통령이 국정을 주도해 나가게 하고, 여소야대가 되어 야당에서 총리가 선출되면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협의해서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권형 대통령제에선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나 비상대권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개헌 적기는 어느 때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정치적 판단의 문제이지만 저의 소견으로는 내년 대통령 선거 전에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치권 합의만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데, 정치권이 과연 합의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개헌의 내용도 문제거니와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불일치하는 경과 규정이 제일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5년, 국회의원 선거는 4년마다 하다 보니, 대통령 임기에 맞추면 국회의원 임기를 잘라야 하고 국회의원에 임기를 맞추면 대통령 임기를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개헌 발효 시기를 어떻게 하고 그에 따라서 임기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정치권이 타협을 해야 합니다.”

―양원제가 정파 간 충돌을 경감할 수 있을까요.

“현행 단원제가 장점도 있지만, 여야가 충돌할 경우 타협점을 찾기 힘든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상원 같은 것을 둬서 하원의 충돌을 조정하고, 견제도 하는 양원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큰 나라는 대부분 양원제를 하고 있습니다.”

―양원제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연방제 국가가 아니라서 미국식이나 독일식과 조금 다르게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연방상원의원은 주의 크기와 관계없이 2인의 의원을 냅니다. 우리나라는 연방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는 곤란합니다. 일본처럼 민의원, 참의원 형태로 해서 상원 격인 참의원은 지역 대표성과 그때그때의 여론보다는 어느 정도 이성의 정치를 반영하고, 임기도 좀 길게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선거구도 여러 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참의원은 현안에 몰두하거나 정쟁에 가세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정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면 민의원은 지금의 국회의원처럼 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도를 가미해 선출하고, 참의원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 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김 명예교수는 개헌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개헌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적 충격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정치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냄비 속이 뜨겁다고 뛰쳐 나와서 불 속으로 들어가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 한국의 권력구조로 의원내각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의원내각제가 갖는 내각 불안정에 따른 국정 혼란을 막는 방지책으로, 독일 등에서 시행하는 건설적 불신임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이 제도는 차기 총리를 선출한 다음 현 내각을 불신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헌 시 기본권 조항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현재 헌법은 기본권 주체가 국민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기본권 중에는 대한민국 국민뿐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가 많습니다.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은 국민뿐 아니라 외국인도 다 보장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나라에는 국민이 아닌 많은 외국인이 있습니다.”

“정보화 사회 발달에 따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 보호해야 할 새로운 기본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개인 정보가 함부로 파악되고 누설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자기 개인정보에 대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개인정보가 잘못됐을 때는 수정을 요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하는 새로운 기본권이 보장돼야 합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동성애, 어린이 인권 등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입니다.”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등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국민의 정치 참여 측면에선 일리가 있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습니다. 현재는 시민운동이라든가, 공청회, 집회, 시위 등 여러 통로를 통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또 인터넷이 발달하여 그때그때 중요사안에 대해서 여론조사나 댓글 등을 통해 의견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직접민주주의 강화 요구는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뽑은 대표가 잘못하는 데 대한 통제수단도 많이 있습니다. 시민운동이나 집회·시위를 통해 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를 통해 국회가 잘못된 법률을 만들면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발안이라든가 국민소환, 국민투표를 하게 되면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더 격화되고, 혼란이 가중될 위험이 있습니다. 또 yes냐 no냐 하는 방식도 문제이고 소수자가 배려되지 않을 위험도 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혼돈에 휩싸였습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번 최순실 사건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것은 사적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국정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대통령이 장관은 만나지 않고, 엉뚱하게 최순실 씨 같은 사람을 만나 국정 운영을 했으니 국민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죠.”

―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법치주의가 훼손된 것이란 의미인가요.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권한행사는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주의입니다. 최순실 사건도 대통령이 직무수행에서 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헌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국정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게 따지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는 사건인가요.

“고위공직자가 자기 직무를 수행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 사유가 됩니다. 이번 사건도 탄핵 사유가 될 수 있지만, 탄핵으로 가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탄핵소추요건도 엄격하고 탄핵심판결정까지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또 탄핵 소추가 되어 직무가 정지되면 굉장한 혼란이 오기 때문에 과연 그런 방식이 바람직한지 잘 따져봐야 합니다.”

―대선 결선 투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적진 않습니다.

“한 표라도 더 많은 후보가 승리하는 단순 다수결 제도에서는 소수파가 당선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파 지지층이 60%이고 좌파 지지층이 40%인데, 우파 쪽에서 후보자가 둘이 나와 30%씩 가져가면 40% 좌파 후보가 당선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결선투표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냐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 쪽에선 고칠 것은 없나요.

“법률의 헌법 위반 여부나 헌법 소원 심판, 정당 해산, 탄핵 심판, 권한쟁의 심판은 헌법재판소 담당이고 명령, 규칙, 처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심판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하고 헌재하고 권한 문제를 둘러싸고 계속 부딪쳐 왔습니다. 헌재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대법원이 일부 따르지 않아 핑퐁식으로 왔다 갔다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한쪽으로 몰아주는 조정이 필요합니다.”

김 명예교수는 법원의 폐쇄성과 관료주의 문화를 비판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하에서 사법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것들이 이제는 기득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법원장의 권한은 다른 나라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하다”며 “대법원장이 동료 대법관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법관의 서열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중 법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며 “교수, 검사, 변호사, 공무원 등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는 ‘대법관은 임명된 날, 단 하루만 좋고 6년 내내 고통이다’라는 말이 있다. 대법관의 업무가 지나칠 정도로 과중하다는 것이다. 미 연방대법원의 경우 연간 80∼100건밖에 심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법원은 1년에 4만여 건을 다루며, 대법관 1인 평균 심리 건수는 2800여 건에 달한다.

―복지 분야는 어떻습니까.

“복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고 확충해야 하지만, 헌법에 어떤 형식으로 규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헌법 34조 1항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돼 있습니다. 지금도 엄청난 복지 비용이 필요한데 국민 개개인 한 사람에게 더 나은 복지를 보장해주려고 하면 엄청난 재원이 더 필요하겠죠. 복지에 관한 세부 사항을 헌법에 규정하면 이를 실행해야 하는데, 재정적 문제로 실현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헌법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다음 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안길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에는 최소한의 삶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규정하고, 그 밖의 구체적인 내용은 해당 시대의 국민이 법률과 예산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인터뷰 = 유병권 차장 (정치부) yb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