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보다 돈 걱정… ‘癌울한’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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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癌치료 확대 협력단’ 조사 결과

현재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은
경제문제 37%·치료 고통 27%
비급여 환자 연평균 2877만원

중증환자 고가 치료비 더 부담
조건부 급여 단계적 지원 필요

“그나마 있는 집을 팔아 약값을 대지 그거라도 없는 사람은 죽지 어떻게 살겠어요. 집 판 돈 다 쓰고 나면 어떨지 모르지. 다 써 가는데 지금.”(유방암 환자)

“한 달에 300만 원씩 하는 약을 아빠가 더는 못 먹겠다 했을 때 은행에 갔는데, 제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돈을 엄청 많이 뽑으시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는 거예요. 저 아줌마를 따라가서 후미진 골목에서 돈을 뺏어올까.”(위장관기질종양 환자 보호자)

“남편이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서요. 언제까지 끝난다는 보장이 없어서 한 번 하면 끝까지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아이들도 대학생 2명이고.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 했습니다.”(유방암 환자)

“나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내가 치료받겠다고, 마지막 상황에서 집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만 살겠다고 식구들 다 길에 나앉게 할 수도 없고.”(백혈병 환자)

의학기술의 발달로 암 치료 성적은 좋아지고 있으며, 정부도 4대 중증 보장성 강화 정책 등으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면 암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아졌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암 치료 현장에서는 각종 암 치료 신약 개발로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혁신적인 신약 개발과 조기 발견 등으로 인해 ‘길어야 3개월 또는 6개월’ 등의 사망선고가 드물어진 대신, 고가의 신약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로 연결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암 환자와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와 암 환자 가족들은 현재의 일률적인 암 보장성 대신 본인 부담을 더 늘리더라도 중증 환자나 어려운 환자 등에게 맞춤형으로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암 환자, 치료보다는 비용 걱정 더 커 = 암 치료 의사와 암 환자·보호자들이 설립한 ‘한국 암 치료 보장성 확대 협력단’이 암 환자 185명에 대한 정량조사와 22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개별 면접조사에 따르면, 암 환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치료’에 대한 불안감보다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우선 정량 조사에서는 ‘현재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는 ‘경제적 요인’ 37.3%, ‘정신적 요인’ 31.9%, ‘육체적 요인’ 27.6%, ‘사회적 요인’ 2.7%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암을 진단받은 당시와 현재의 어려움을 비교한 결과 다른 요인들은 최초 진단받았을 당시에 비해 현재 개선됐지만, 경제적 요인만은 어려움이 더 커졌다. 즉, 경제적 어려움은 치료과정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치료비용 분석 결과 응답자 중 비급여 치료를 받은 암 환자들의 암 치료 비용은 연평균 2877만 원이었다. 이 중 71.6%인 2061만 원이 비급여 항암제 비용으로 지출됐다. 이에 따라 암 환자 10명 중 9명은 “비급여 항암제 비용에 부담을 느낀다”(95%), 10명 중 8명은 “비급여 항암 치료를 위한 비용 마련이 어렵다”(83%)고 답했다. 또, 비급여 항암제 중단 경험이 있는 22% 환자 중에서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요인(69%)이었다. 이러한 비용 부담으로 인해 임의대로 신약 투여량을 줄이거나 복용 횟수를 줄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암 환자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암 환자의 치료로 인해 간호를 하거나 치료 비용의 경제적 부담을 지는 보호자는 생활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암 선별적 지원 요구 = 암 환자 보호자들은 현재 정부의 암 환자 보장을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초기 환자에게 지원하는 저가의 검사비 등을 일괄 지원하기보다는 중증 환자에게 드는 고가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또 암 산정 특례(본인 부담금이 높은 암, 중증질환자,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낮춰 주는 제도)의 경우 진료비의 본인부담금이 5%(5년간)로 정부가 나머지 95%를 지원하지만, 이러한 높은 지원으로 인해 산정 특례 혜택을 받는 대상이 상대적으로 적고 5년 이후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 유방암 환자 보호자는 15일 “모든 신약에 대해서 급여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꼭 5%가 아니라, 조건부 급여라도 단계별로 지원이 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방암 보호자는 “신약을 쓰려고 하는 환자의 경제 상태를 고려해서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민환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회장은 “상당수의 환자가 본인 부담률을 상향 조정해서라도 비급여 항암신약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정부가 환자와 함께 암 보장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 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정현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환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치료가 양극화되거나 암 환자들이 메디컬푸어(Medical Poor)로 전락하지 않도록 환자, 의료진, 정부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협력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