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트럼프와 패권 국가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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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차장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 정치·경제 지형(地形)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등을 동시에 관통하는 아이디어는 패권 국가(Hegemonic State)로서 미국의 종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헤게모니 안정 이론’(Hegemonic Stability Theory)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패권 국가(Hegemon)가 있을 때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민족 국가(nation state)가 예컨대 통상 분야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품목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에 개방하라고 주장하면서, 불리한 품목에 대해서는 자국의 문을 닫겠다고 나설 경우 경제적으로 분쟁이 불가피하고, 경제적 이해관계의 상충은 종국에는 전쟁(戰爭)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적으로 보면, 전쟁을 통해 갈등이 해소된 뒤 장기간 평화가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세계 경제를 살펴봐도 전쟁 뒤에 경제적인 번영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은 세계 전체 GNP의 50%에 육박할 만큼 절대적이었다. 군사적으로 ‘세계의 경찰’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세계 모든 국가에 자국 시장을 개방해도 두려울 게 없었다. 미국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출범하면서 인류사에서 가장 강력한 ‘자유무역’(free trade)을 위한 실험이 펼쳐졌다.

트럼프 당선 이후 등장한 보호무역주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패권 국가로서 미국의 ‘항복 선언’이나 다름없다. 제 코가 석 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나라가 이익 보는 것을 눈감아주는,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이 패권 국가의 역할을 포기할 경우, 다른 나라의 방위를 위해 미국의 돈을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른 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트럼프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주장한 주한미군 철수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지는 지켜볼 문제다. 그러나 트럼프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상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려고 할 것은 확실시된다. ‘트럼프의 미국’이 패권 국가로서 역할의 상당 부분을 포기할 경우 전 세계에 어떤 일이 생길까? 헤게모니 안정 이론에 따르면, 경제 분야에서 과거보다 훨씬 많은 분쟁이 발생하고,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우리나라는 2차 대전 이후 수출 주도형 모델을 통해 후진국에서 벗어난, 전 세계에서 사실상 유일한 국가다. 한국의 경제 발전 모델은 그만큼 미국이라는 패권 국가가 제공한, 자유무역에 우호적인 국제 환경의 덕을 많이 봤다는 뜻이다. 패권 국가가 사라진 새로운 상황에서도 과연 한국 경제는 발전을 이어갈 수 있을까.

haed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