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사이비 종교와 혹세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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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엽 문화부 선임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이 국내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를 종교계에서 자주 한다. 더는 바닥이 없다는 5% 지지율로 급전직하한 시기는 ‘최태민-최순실’을 ‘사이비 종교’와 연결짓는 보도가 언론에 폭주하면서였다. 5%가 처음 나오자 박 대통령이 연거푸 ‘사이비 종교와 관계없다’는 입장을 내고, 부랴부랴 개신교 등 종교계 지도자를 만난 것도 의례적으로만 볼 수 없다. TK(대구·경북)의 견고한 지지층이 있지만,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 상당 부분은 보수 개신교계와 신도들이었다.

이승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그 연원은 깊다. 보수 개신교계는 엔간한 비리나 부정으로는 보수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또 하나 특징은 ‘이단’에 대해 관용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이단을 둘러싼 시비와 소송이 많은 나라는 없다. 한국처럼 개신교의 종파가 많은 곳도 없는데, 대다수는 교리에 대한 논쟁으로 갈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단’도 아니고 무속에 가까운 ‘사이비 종교’라니, 보수 개신교의 상당 부분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 이유다. 개신교계는 최태민에게 ‘목사’ 칭호를 붙이지 말라고 언론에 공개 요구할 만큼 민감했다. 최순실이 얼마 전까지 다닌 것으로 알려진 강남의 한 교회는 지금껏 침묵하고 있다.

사실 이단과 사이비 종교는 비교될 층위는 아니다. 이단이냐 아니냐는 특정한 교리에 위배되느냐를 다투는 것이다. 가톨릭과 개신교와 유대교는 각기 이단으로 규정할 수 있고, 실제 그런 개신교 교단도 있다. 과거 국내 개신교 최대 교파인 예장통합과 여의도순복음교회 간의 이단논쟁도 있었다. 교세가 약할 땐 이단이었다가 교세가 세지면 정통이 된다는 통설도 있다.

사이비 종교는 사회가 내리는 판단이다. 특정 종교가 사회구성원의 행복과 안녕을 해치는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면 그걸 사이비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판단도 자의적일 수 있어 지금까지 법원은 ‘사이비 종교’라는 판결을 한 손에 꼽을 만큼밖에 내지 않았다. 이번에 ‘신흥종교’란 말이 ‘사이비’와 비슷한 의미로 쓰였는데, 이 역시 학술적 용어를 아무렇게나 적용한 것이다. 김홍철 원광대 명예교수가 얼마 전 펴낸 ‘한국신종교대사전’에는 천도교와 대종교 등 우리 정신문화 형성은 물론 독립운동에 기여한 신흥종교들이 포함돼 있다.

개신교에서는 사이비 종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교주의 신격화, 시한부 종말론, 반사회적·비윤리적 행태 등을 열거해 놓았다. 중요한 점은 이런 사이비 종교는 기성종교가 부패해버린 토양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통’으로 대접받는다 해도 그 행태 전반이 ‘혹세무민’과 다를 게 없다면, 국민은 ‘그게 사이비가 아니고 무언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과연 종교는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이 각 종교의 내부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단연구자 고 탁명환 씨가 과거 최태민이 영세교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이는 ‘사이비 종교’라 하기도 모자란 수준이다. 최태민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주술사나 그저 사기꾼에 가깝다.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