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통령의 運命, 기업·관료의 宿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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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따라붙는 수식어로 ‘스펙터클 사회’라는 말이 있다. 역동적 나라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지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면 야단법석을 떨다가도 다른 사건이 터지면 이전의 일은 까맣게 잊은 채 새로운 사태에 광분하는 우리 민낯을 꼬집는 의미가 더 크다. ‘왜그 더 도그(Wag the dog·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라는 말도 있다. 정치권에선 종종 권력자가 음모를 꾸며 국민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는 행위로 차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 현상의 힘을 빌려 ‘한 방’으로 반전을 노릴 모양이다. 헌정 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이라는 굴욕에 거짓말까지 들통난 그로서는 외통수 선택일는지 모른다. 자진 퇴진하면 구속도 각오해야 하니 작전의 궁극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시간을 질질 끌며 버티자’다. ‘우왕좌왕·지리멸렬’ 야당과 ‘샤이(shy) 박근혜’ ‘대통령 사면’ 등을 운운하며 이성적 해법을 찾는 척하는 골수 지지자들은 버팀목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꿍꿍이셈이 있다면 오산이다.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는 그들의 천행(賤行)이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선천성 공사(公私) 구분 결핍증’ 환자인 대통령과 ‘천한 것’들이 국가의 온갖 부문에 개입해 너절·추잡하고 충격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다. 얼마나 죄상이 명백했으면 ‘박근혜 사람’으로 알려진 수사 책임자가 ‘99% 입증 자신이 있다’며 대통령을 ‘주범’으로 지목했을까. 인간적 고뇌가 녹아든 혐의들이 이 정도니 더 드러날 범죄의 양과 폭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대통령은 “사익을 챙기지 않았는데 뭘 잘못했느냐”며 항변한다. 그러나 독 오른 검찰의 판단은 중죄 피의자다. 집권당 전 대표도 탄핵 앞장을 선언했다. 그는 이제 독립 아닌 종속변수일 뿐이다. 40년 지기와 부역자들의 판도라 상자가 다 열리면 피플 파워발(發) ‘대통령직 삭탈’은 시간문제다. ‘세월호 7시간 비밀’의 개문(開門)은 그 정점일 수 있다. 정치적 수순은 정치공학적이어서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만 민심 폭발의 끝은 오로지 ‘퇴진’이다.

문제는 정치와는 달리 경제·안보는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 수장 ‘유고(有故)’ 상태에서 ‘미국 제일·고립·보호주의’로 대표되는 트럼피즘은 발등의 불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 큰 아저씨(Mr.Big Uncertainty)’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글로벌 경제에 살아 있는 공포다. 12월 미 금리 인상은 내년 6월 한국 경제 위기설의 예고편이다.

그렇다면 혼군(昏君)발 혼돈(混沌)을 떨쳐낼 구국 전사는 누구여야 할까. 관료와 기업인이다. 관료들은 ‘경박한 강남 아줌마’의 신출귀몰 칼춤을 지켜보면서 자괴감이 클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휘청댈 때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게 공복의 숙명이니 어찌하랴. ‘관피아’로 따돌림당한 서러움은 떨쳐내라. 정치에 곁눈질 말고 복지동면(伏地冬眠)에서 깨어나 국정 마비부터 타파하라. 사유화한 국정을 바로잡는 일도 공익 DNA로 무장된 공무원 몫이다. 전직 장관에게 들은 얘기다. “인구 5000만 이상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상인 클럽이 있다. 전 세계 200여 개국 중 7개국이 회원이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한국이다.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그들 속에 대한민국이 들어 있는 비결은 유능한 공무원이다.”

기업은 또 다른 희망이다. 물론 과도 있지만 공이 더 크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도 기업이다. 창업 세대들은 그 모진 시기에도 맨땅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을 키웠다. 그런 기업가정신을 아들·손자들이 계승하려 애쓰니 다행이다. 이 난국에도 신성장동력의 승부수를 던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그래서 대단하고 고맙다. 대통령의 ‘조용한’ 겁박에 괘씸죄가 두려워 거액을 뜯긴 총수들을 똑같은 사안으로 검찰, 국정조사, 특검 등에 연거푸 불러내 국제적 망신을 주려는 나라 아니던가. 창업주의 사업보국 정신이 기업 전반에 들불처럼 번지길 바랄 뿐이다.

천주교계 원로 정의채(92) 몬시뇰이 최근 분노에 찬 국민에게 던진 말이다. “그간 놀랄 일이 얼마나 많았는가. 4·19, 5·16, 10·26…. 우리는 이 모든 위기를 매번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이겨냈다. 참 신기한 민족이다.” 관료와 기업인들이여, 분발하라. 그래야 국민도 살고 국가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