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고 속아주는 한국사회…‘거짓말 불감증’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비밀을 감추고 문 뒤에 숨어 당신의 마음을 파고드는 거짓말에 대한 감각을 높여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추수밭 제공

한국인의 거짓말 / 김형희 지음 / 추수밭

하룻밤이 지나면 어제의 해명과 변명이 거짓말로 돌아오는 거짓말 정국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속았을까.

5년간 한국인의 거짓말을 분석한 언어·행동심리 분석가가 ‘한국인의 거짓말’에서 내린 결론은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공한다. 거짓말에 대한 무감각. 저자는 한국 사회 전체가 거짓말에 무감각하다며 한국인 거짓말의 고유한 특징을 ‘무감각’이라고 규정했다. 어느 사회에서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지적받는 것은 치명적인 모욕으로 여긴다. 그러니 거짓말을 할 땐 사회적 신용과 관련된 모든 자격이 상실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한국에서는 속였다가 들키는 사람의 회복보다 속은 사람의 회복이 훨씬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정치 쪽으로 가면 지지자들은 정치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빤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더라도 애써 외면하거나 오히려 열렬히 응원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과 잘 속아주는 사람의 합이 맞아야 하는데 한국은 이 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속담도 나왔다. ‘속은 놈이 잘못이지.’

저자는 이 무감각을 한국 근현대사와 치열한 생존 경쟁의 결합으로 풀어냈다.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책에 열거된 몇몇 연구만 추려봐도 사람들은 대략 세 살부터 거짓말을 시작해 평생 2만80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단다.

세계 공통으로 거짓말에 속는 이유는 ‘욕망’이다. 200% 수익 보장이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속는 것은 상대의 욕심을 정확히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치열한 성공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세한다. 또 과거의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다시 진실이 돼온 한국 근현대사, 그 속에서 거짓말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험이 거짓말에 대한 감각을 더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범죄 대비 사기 범죄 비율이 1위라는 사실이나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이 같은 역사와 현실의 징후라고 했다.

문제는 소셜미디어 등으로 인해 거짓말이 보다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딘가에서 발화된 작은 거짓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구석구석 전파되고, 나중에 진실이 밝혀져도 처음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대부분 거짓말에 대한 자신의 ‘촉’을 상당히 믿는 편이다. 직관적으로 자신은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거짓말 앞에 겸손해져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거짓말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베테랑 요원 필립 휴스턴이 ‘거짓말의 심리학’에서 밝힌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패턴에 주목하라는 조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5년간 심리 실험을 통해 거짓말 영상 1083개, 진실을 말하는 영상 1300개를 추려낸 뒤 한국인의 거짓말 신호를 분석했다. 그 결과 흥미롭게도 한국 남성과 한국 여성의 거짓말 스타일이 달랐다. 남성은 거짓말을 할 때 말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상대를 속일 때 설득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설득에서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신뢰인데 신뢰는 정보에서 나온다. 남성들은 몸짓이나 표정 같은 비언어적 수단보다는 언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기에 언어로 많은 정보를 제공해 그 안에 거짓말을 숨기려 한다.

반면 한국 여성은 거짓말을 할 때 평소보다 말이 짧아졌다. 공감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들은 정보를 많이 줄수록 실수하거나 논리적으로 어긋날 확률,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거짓말의 단서가 드러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우려해 말을 짧게 한다.

한국인이 거짓말할 때 가장 많이 드러나는 신호는 안면 비대칭이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진실을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뇌에서 나온 두 신호가 충돌해 안면 비대칭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입술 침 바르기, 침 삼키기, 눈동자 좌우 이동,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멸의 표정, 상대의 질문을 반복하는 시간 끌기, 입술 꽉 다물기 등도 나타난다. 서구인과 달리 거짓말을 할 때 코를 만지지는 않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섹스 스캔들과 관련해 대배심 증언을 할 때 코를 아홉 번이나 만졌다. 실제로 거짓말을 할 때 코와 눈 주변 근육의 온도가 올라가고 특정 화학물질이 분비돼 콧속 모세혈관이 팽창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코를 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험 결과, 한국인 중에서 거짓말을 하면서 코를 만지는 비율은 1%도 되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들이 말에 집중하면서 드러난 이 모든 신호들을 놓친다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구분하는 비밀은 비판적 사고에 있다.” 저자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밝힌 비판적 사고를 거짓에 대한 우리의 자세로 제시했다. 합리와 객관의 거리 확보이기도 하다. ‘생각(회의)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오랜 기본 명제가 절실한 시간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