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1009) 49장 제3제국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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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상공을 날아가는 비행기 안, 대한민국 대통령 서동수가 탄 전용기다. 전용기라고 하지만 한국항공의 민항기를 임차해 내부만 조금 개조한 것이다. 앞쪽 대통령실에는 서동수와 외교장관 유춘식, 대통령실 홍보수석 하선옥까지 셋이 둘러앉았다. 회의를 마치고 다시 모인 셈이다. 서동수는 회의를 자주 안 하는 편이었지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은 유춘식이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대통령실로 들어왔다. 유춘식은 58세, 외교부에서 30년을 근무한 전문 외교관이다. 남한의 외교부 차관이었다가 이번에 대한민국의 외교장관이 됐다.

“각하, 크램프 대통령이 언제 어떤 질문을 할지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유춘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백악관의 측근들조차 자주 당혹하게 만드니까요.”

크램프가 즉흥적이고 다혈질이지만 치밀함도 갖췄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서동수 또한 순발력과 임기응변에 일가견이 있는 터여서 지금 전 세계가 한·미 정상회담을 주목하고 있다. 서동수는 크램프와의 정상회담을 위해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춘식이 서동수를 보았다.

“각하, 크램프 대통령이 핵 문제를 꺼낼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이 크램프에게 여러 번 압력을 넣었습니다.”

이미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였다. 그때 유춘식이 목소리를 낮췄다.

“일본과 중국이 밀착되는 상황에서 미국까지 연합하면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각하, 이것을 염두에 두시지요.”

하선옥이 힐끗 서동수의 눈치를 보았다. 유춘식의 말투가 가르치려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동수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는 것도 몇 사람이야. 따라서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국가와 국민이 불행해지지.”

“각하, 제가 외람된 말씀을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 장관보다 더 똑똑해야 한다면 대통령 될 놈은 하나도 없어요.”

“예, 각하.”

“외교 부문에선 유 장관이 나보다 나아야 돼요.”

“예, 각하.”

“내가 또 참고할 것이 있어요?”

“예, 그것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유춘식이 말을 이었다.

“주한미군 주둔비를 100% 부담하라는 요구를 할지 모릅니다. 그때는 상의해 보겠다고 하시지요.”

“그러지요.”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니까요.”

“예, 각하.”

“나는 그저 인사차 들른 것이고 결정은 하나도 못 한다고 할 겁니다.”

“예, 각하.”

유춘식이 시선을 내렸으므로 서동수가 입맛을 다셨다.

“유 장관.”

“예, 각하.”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는 ‘에이, 왜 그러십니까?’ 하면서 웃으면 돼요.”

머리를 돌린 서동수가 옆에 앉은 하선옥을 보았다.

“하 수석이 해봐요.”

그때 하선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에이, 각하, 왜 그러세요?”

“옳지. 이렇게 말입니다.”

서동수가 정색하고 유춘식에게 말했다.

“망한 나라는 모두 지도자와 측근들 사이에 대화나 소통이 단절됐습디다. 난 그렇게 안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