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왜 정치는 영화에 민감히 반응할까?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곁에는 희대의 선동가가 있었습니다. 요제프 괴벨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던 괴벨스가 여론 장악을 시도하며 선전, 선동의 주요 도구로 삼았던 것은 영화였죠. 특히 1934년 뉘른베르크의 나치 전당대회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는 선전 영화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힙니다. 2시간가량 되는 러닝타임 동안 대중을 푹 빠지게 만드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그 어떤 연설과 강의보다 훌륭한 주입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괴벨스는 잘 알았죠.

하지만 영화는 저항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민초들의 생각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왔죠. 히틀러가 주창한 나치의 만행과 악행이 영화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을 통해 후세에 지탄받는 것을 땅속에서 바라보는 괴벨스의 마음은 어떨까요?

영화가 가진 이런 특성 때문일까요?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편의 영화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201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CJ E&M 이미경 부회장이 특정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변호인’을 각각 투자 배급하고 투자사로 참여해 ‘미운털’이 박혔다는 이야기가 충무로에서는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죠.

‘변호인’을 투자 배급한 NEW는 이 영화의 흥행 이후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는데요.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립니다. 프로야구가 지난해 모은 총 관중이 800만 명 남짓인데 영화 한 편으로 2∼3개월 만에 1000만 관객을 모을 수 있으니, 정치권이 특정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1137만 명을 동원한 ‘변호인’은 2013년 말 개봉 이후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TV에서 방송된 적이 없죠. 반면 ‘변호인’보다 늦게 개봉된 ‘명량’ ‘국제시장’ ‘베테랑’ 모두 TV에 소개됐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죠.

‘변호인’을 TV에서 틀어야 한다고 굳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변호인’이 특정 정치인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죠. 다만 ‘보이지 않는 손’이 나라를 주무른 세태 속에서 이 영화가 부당한 이유로 시청자들과 만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를 곱씹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나는 당신의 의견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신이 탄압받는다면 당신을 위해 싸울 것이다”라던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말처럼 말이죠.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