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최순실 낙인’ 정책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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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전국부 부장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희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늪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에서도 ‘최순실’이란 제목이 붙어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평소라면 신문이나 방송의 톱기사가 됐을 뉴스라도 ‘최순실’이란 이름이 빠지면 뉴스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분위기다. 전국을 강타한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기사도 예외가 아니다. 예년이라면 전국적으로 수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폐기되는 살벌한 상황이 신문을 도배했겠지만 지금은 신문의 한 귀퉁이를 조그맣게 차지할 뿐이다. 자식처럼 키운 가축을 땅에 파묻고 시름에 빠져 있을 농민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진 게 요즘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최순실 일가의 악행이 사회 곳곳에 끼친 반(反)사회적 후유증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보는 게 맞는다. 그들은 국정 전반을 마비시키고 국민에겐 무기력증을 안겨주었다. 생업에 종사해야 할 서민들을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촛불 집회’ 현장으로 내몬 것도 결국 그들이 아닌가.

당장 코앞에 닥친 걱정거리는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오던 각종 개혁 정책들이 국정 혼란 와중에 도매금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활성화 등을 목표로 추진 중이던 일부 경제정책조차 ‘최순실 표’라는 빨간 딱지가 붙어 폐기될 판이다. 참여연대가 오늘(3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규제프리존법 문제점 진단’이란 제목으로 연 좌담회만 해도 그렇다. 제목 앞에 ‘박근혜-최순실-전경련 합작품’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규제프리존법의 폐기를 전제로 한 좌담회다. 참여연대 측은 “최순실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재벌들의 입금이 완료된 바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법이 핵심 내용인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특별 주문했다”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규제프리존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이 법을 통해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게 주최 측의 얘기다.

존치가 위태로워진 정책은 규제프리존법만이 아니다.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 중인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도 최근 최순실과 측근의 이권 개입설에 휘말려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12월로 예정된 면세점 신규 특허 심사 역시 최순실 관련 사업에 대한 기업들의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면세점 관련 정책 자체가 줄줄이 폐기 처분될 운명이다. 하지만 아비가 못났다고 그 자식까지 밉게 볼 필요는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의혹만 가지고 정책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재단해선 안 된다고 본다. 이런 때일수록 옥석을 명백하게 가려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순실 사건에 잠시 가려 잊고 있을지 모르지만 저성장과 고실업, 고부채, 저출산, 고령화 등 우리 사회의 악순환 고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악순환 고리를 끊을 마땅한 처방도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 좋은 정책이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잘못을 가려내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의 선택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어떻게 지키고 가꿔온 나라인데 일개 개인의 국정농단에 거덜 나게 둬서야 되겠는가.

ys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