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국가주의의 주술에서 벗어나 ‘국가다운 국가’를 찾는 작업이며, 불신의 산물인 ‘리셋’을 넘어 다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연합뉴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 엄기호 지음 / 창비
국가이성비판 / 김덕영 지음 / 다시봄
기계가 작동을 멈췄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 보다가, 도저히 나아질 가망이 없을 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리셋 버튼을 누른다.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다.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한 마지막 단계. 요즘 한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다. 사람들은 “세상을 리셋하고 싶다”고 한다. 이는 변화에 대한 갈망이 동력이 되는 혁명과 다르다. “깡그리 망해버려라”고 하는 증오와 파괴의 감정이다. 문화학자 엄기호가 ‘단속사회’ 이후 2년만에 들고나온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이 리셋 욕구를 분석한다. ‘국가 이성 비판’은 한국사회가 왜 리셋시키고 싶은 국가로 병들어 가는지, 그 근원을 캐묻는다. 전자가 ‘개인’에서 출발해 질병 제공자인 한국 사회를 조망한다면, ‘국가 이성 비판’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실상을 파헤치고 ‘제대로 된’ 개인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무슨 노력을 해도 바뀔 것 같지 않다”=‘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에 따르면 리셋 감정의 진원지는 무기력이다. 희망이 없는 거다. 저자는 “이 무기력은 기회가 주어지면 세상을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반역사적인 종말론적 급진주의와 매우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과격한 무기력이다. 화난 무기력이며 무기력해서 화가 난 상태”라고 말한다. 삶을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 즉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경험하고, 그래서 성장하며, 자기 ‘서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 점차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거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삶의 ‘전환’이나 전환의 ‘가능성’이 아니다. 이들이 원한-복수라는 정념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는 유토피아적이라기보다는 허무주의적이며 종말론적이다.”(31쪽)
세상은 왜 리셋을 부르는가. “사는 게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참사,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가까운 사건·사고만 나열해도 쉽게 이해가 된다. “이 국가／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와 그리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슬픔.(…) 그리고 이 불행한 사건이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르며, 그 차례는 정확하게 약자들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게 하는 사건들이었다.”(100쪽)
리셋을 넘어설 순 없을까. 저자는 희망을 갖기 위해 민주주의가 멈춰선 곳, 즉 ‘광장’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안전을 위해 활동을 중지하고 도망가지 말고, 활동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존재의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것. 저자에 따르면 이 존재는 ‘똑똑한 소비자’라기보다는 ‘협력의 기술자’에 가까워야 한다. 분석이나 비판, 반복은 큰 역할을 못 하기 때문이다. “너의 이야기는 이런 말이지?” “다른 말로 하면” 등 끊임없이 상대의 말을 새로운 제안으로 돌려주는 이른바 ‘변위’만이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변위를 통해 대화는 ‘진전’되며 이런 진전이 있을 때 사람들은 말을 하고 듣는 것에 관심을 느끼며 계속 참여하고 말하는 행위, 즉 공동세계를 만드는 일에 협력하게 되는 것이다.”(207쪽)
◇“국가주의 주술을 벗어나자”=‘국가 이성 비판’은 국가다운 국가를 찾기 위해 ‘개인’에게 시선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국가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책임하게 외면하는 괴물 같은 키클롭스 국가”라고 비판하며 여전히 근대성과 합리성을 가지지 못한 한국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책에 따르면 국가는 이를 감추기 위해 경제주의, 국가주의 등의 주술을 국민에게 걸었다. “한국의 근대화는 그 영역에서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그 주체에서 국가와 재벌로 환원된 근대화, 즉 이중적 환원 근대이다.”(109쪽)
저자는 이같은 경제주의적·유물주의적 주술로부터 해방되려면 결국 ‘개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순·명확하다 ‘근대’라는 것이 개인과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책은 구체적인 제도·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주술에서 깨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근대적 합리성과 합리적 국가의 근본원리 외에 더 강력한건 없기 때문이다. “경제주의의 탈주술화는 경제에서 사회로 관점을 전환함으로써 가능해지고, 국가주의의 탈주술화는 국가에서 개인으로 관점을 전환함으로써 그리고 개인과 국가의 관계와 더불어 개인과 인류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가능해진다.”(185쪽)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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