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면세점 스캔들의 배후는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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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새로운 수익원으로 각광받던 면세점이 대기업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수렁으로 변했다. 검찰에 이은 특검 수사가 권력과 기업 간 유착의 주요 고리로 주시하고 있는 것이 면세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 3월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비공개 개별 면담을 했다. 면세점 경력 27년·23년의 롯데·SK는 그 3∼4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특허(사업 허가) 심사에서 각각 월드타워점과 워커힐점을 잃었다. 면담한 지 얼마 안 된 4월에는 관세청이 서울에 대기업 몫 3곳을 포함, 신규 면세점 4곳을 추가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독대와 두 기업이 재기의 기회를 얻은 것 사이의 인과관계가 드러난다면 뇌물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해당 기업들은 “오히려 탈락한 피해자”라며 펄쩍 뛰지만, 청탁이 있었는지는 특검이 밝히면 된다. 진짜 문제는 면세점이 ‘보이지 않는 손’에 좌우될 수 있다고 보는 시장 참여자들과 국민의 의구심이다.

지난해 롯데와 SK가 경험 없는 경쟁자들에게 밀렸을 때부터 뒷말이 많았다. 롯데만 해도 매출 기준 세계 3위 면세점 업체로서 영업력에 관한 한 최정상급이다. 그런데 탈락하고도 뭐가 문제였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관세청이 상세한 평가기준표도, 심사위원 구성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당시 롯데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이었다. 실력보다 정무적 판단이 개입했다고 볼 소지가 다분하다. 그래놓고 불과 5개월 만에 대기업 3곳을 다시 추가하기로 한 것도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이런 결정의 법적 근거로 관세청은 2015년 서울의 외국인 관광객이 88만 명 늘었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자료를 제시했지만, 실제 통계는 메르스 사태 등으로 100만 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왔다. 서두른 흔적이 역력하다. 투명하지도, 일관되지도 않은 면세점 정책이다.

1962년 김포공항에 처음 등장한 국내 면세점 시장은 2009년 이후 줄곧 세계 1위다. 올해는 매출 10조 원을 넘길 추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허=특혜’로 치부되지는 않았다. 10년 특허 기간이 만료되면 별 하자가 없는 한 자동 갱신되는 체제였다.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시내면세점이 29개에 이른 적도 있다. 2013년 ‘홍종학법’으로 불리는 관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특허 기간은 5년으로 축소됐고, 기존 업체도 같은 조건으로 경쟁입찰에 나서게 됐다. 진입 장벽을 낮추고 경쟁구도로 간다면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한된 티켓을 쥐고 5년마다 사활을 건 입찰전쟁을 부추기는 구조에서는 특혜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당초 재벌 독과점 견제용으로 만들었던 법이지만, 대기업의 면면만 바뀌었을 뿐이다.

규모의 논리가 작동하는 산업이 면세점이다. 덩치를 키워야 면세점 성패가 걸린 명품 브랜드에 대한 협상력을 확보하면서 재고·환율 등 다양한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 스위스의 듀프리는 최근 몇 년 사이 10여 개 업체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2014년 미국 DFS의 10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지난해 DFS를 간발의 차까지 뒤쫓았던 롯데는 월드타워점을 뺏기면서 추격세가 꺾였다. 한국 면세점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기업이 자력으로 이룬 결과다. 일본과 중국이 최근 한국형 면세점을 늘리며 급속히 추격해오는 것도 심상찮다. 정작 정부와 국회는 수시로 규제 장치를 만들어 면세점 산업의 갈 길을 막는 형국이다. 글로벌 유통 전문지 무디리포트는 한국의 5년짜리 특허제 전환을 두고 ‘정부가 제 발에 총을 쏜 것’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의 80%가량은 유커를 포함한 외국인이 구매한다. 내수산업이 아니라 수출산업이다. 세계 1위 듀프리가 있는 스위스의 인구는 800만 정도다. 국내 업체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성장한다. 그런데도 면세점을 선정할 때 사회공헌이나 상생협력 등 사업과 관련이 없는 잣대를 들이민다. 대기업 입찰을 제한한 면세점을 중견기업으로 위장한 듀프리가 덥석 채간 적도 있다. 면세점은 중소기업적합업종도 아니다.

권력자와 기업인의 부적절한 밀회에서 비롯된 ‘면세점 스캔들’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배후를 제거하는 것이다. 바로 관이 틀어쥐고 놓지 않는 끈덕진 규제다. 규제가 없다면 은밀히 만나 얘기할 이유가 없다. 면세점 허가제는 이참에 포기하고 신고제로 전환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