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젓가락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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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삼성 반도체’가 42년을 맞았다. 1974년 12월 6일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 회장은 국내 반도체 1호 기업 한국반도체를 전격 인수했다. 오일쇼크로 경영난을 겪던 시절이라 주변 만류가 심했지만 이 회장은 ‘젓가락 문화론’을 들고나왔다. “우리는 젓가락 문화권이어서 손재주가 좋고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등 주거생활도 청결을 중시한다. 이런 문화는 반도체 생산에 아주 적합하다.” 삼성은 1993년 메모리 부문 세계 1위에 오른 뒤 독주해왔다.

한국인은 손가락을 쓰는 재주가 남다르다는 평가를 듣는다. 세계 기능올림픽을 거의 제패해온 것도, 양궁이나 골프 등에서 탁월한 성적을 내는 것도, 외과수술과 미용 기술에 대한 명성이 높아지는 것도 정확한 손놀림을 가능케 한 ‘젓가락 DNA’ 덕이라는 얘기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방한했을 때 어린아이가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집는 모습을 보고 ‘밥상 위의 서커스’라며 경탄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젓가락은 한·중·일 3국이 모두 쓰지만, 사용법은 주식이나 식습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원탁을 돌려가며 면류 등을 집어 먹는 중국의 젓가락은 길고 뭉툭한 반면, 생선이 주류이면서 밥그릇을 턱밑까지 끌어다 먹는 일본은 짧고 뾰족하다. 한국은 중간쯤인데 숟가락과 함께 쓰는 것이 다르다. 사용 빈도로 보면 젓가락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중·일이 더 높을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이기도 한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쇠젓가락론’을 편다. 대나무나 목재가 주재료인 중·일과 달리 한국은 놋쇠 젓가락을 많이 썼다. 젓가락질에는 64개의 근육과 관절이 동원되는데 특히 무거운 쇠젓가락은 손의 감각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젓가락 문화가 디지털시대에 더 각광받고 있는 건 흥미롭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IT와 관련된 도구들은 모두가 젓가락과 같은 페어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상대가 있어야 메일을 보내고 채팅을 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앨빈 토플러가 ‘미래혁명’에서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 21세기 정보화시대를 지배한다’고 예측한 것이 10년 전이다.

식품기업 샘표가 5∼7일 신입사원 공채면접에 ‘젓가락질’ 과제를 내 화제다. 젊은 세대에서는 시대착오라는 비판도 있지만, 자신에게 내재한 ‘젓가락 DNA’에 천착할 기회를 갖는 것은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