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잇몸’으로라도 國益외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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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군대는 450대의 항공기를 실은 6척의 항공모함을 동원, 진주만을 기습공격했다. 미군 2000명 이상이 사망한 미국은 진주만 피습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했다.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한 전함 애리조나호를 진주만에 그대로 보존해 일제(日帝)로부터 당한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 이 기념관에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오는 하순 방문한다.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은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금언을 상기시킨다. 지난 5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원폭 투하에 의해 14만 명 이상이 사망한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태평양전쟁 종전 71년이 되는 올해 상대를 패망시키기 위해서 국운을 걸고 전쟁을 치렀던 미·일 양국이 화해를 위한 상징적 행사를 양국 정상들 주도하에 치르고 있다. 이번 아베의 진주만 방문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미·일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한 가운데 굳건한 동맹 관계를 재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트럼프 미 차기 정권의 대일(對日)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일 동맹의 견고함을 국제사회에 보여줌으로써 일본의 위상을 확고히 하며, 미국민에게는 화해와 협력을 해나가겠다는 상징적 행사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정상외교가 소기의 목적을 쉽게 달성할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 당선 직후 개최된 트럼프와 아베 간 양자회담은 아베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양자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중시한다고 했으나, 회담 후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할 일로 TPP 탈퇴를 통고하겠다고 천명했다. TPP를 반대하는 트럼프의 입장은 후보 시절부터 일관된 것이며 아베와 회담한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아베 정권은 협정의 선도적 비준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TPP 참가 12개국 중심으로 경제협력 체제 수립을 주도해 중국의 경제적 약진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의도에 대해 트럼프 당선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최근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심해지는 주된 이유는 트럼프 정권의 외교정책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데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미국 우선’이라는 기치 아래 자국 이익의 확보를 위해서 외교 전례를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하고 있다.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함으로써 1979년 미·중 국교 수립 이후 계속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배려하지 않았다. 중국 반응에 개의하지 않을 정도이니 미국의 핵심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동맹국인 일본이나 한국의 반응은 거의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외교를 통해 국익을 확보하려는 아베 총리의 노력은 결과 여부와 무관하게 일본 국내에서 평가받고 있다. 오는 16일로 예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일 때 러·일 정상외교를 통해 북방영토 반환에 관한 협상을 시작하려는 아베 정권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긍정적 대응을 조건 없이 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2020 도쿄(東京)올림픽까지 장기집권을 주도하며 활발한 정상외교를 수행하는 아베 정권에 대해 역대 어느 4년 차 정권보다 높은 국내 정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국가 간 의사소통의 대표적인 방법은 정상(頂上) 간 외교다. 동맹국 간에도 국가지도자가 교체되면 정상 간 의사소통을 통해 상대국 새로운 지도자의 의사를 보다 확실히 이해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 한국이 주도하는 정상외교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기까지 어려울 전망이며, 세계정세는 한국의 정국(政局) 안정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정상외교가 당분간 불가능한 상황에서 트럼프 정권이 대(對)한반도 정책을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때까지 기다려서 결정할 것 같지 않다.

가능한 공식·비공식 통로를 통해 우리 의사를 트럼프 당선자에게 전달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미·중 대립이 심해지면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와 한반도 비핵화 노력에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정권의 한반도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한국의 국익 요소를 미국 측에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국익 확보를 위해 뛰어주기를 외교 당국에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