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탄핵 표결 뒤 해야 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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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정치부 부장

기어코 대한민국호는 국회와 청와대, 촛불 민심까지 ‘탄핵 열차’에 실은 채 앞만 보고 돌진하고 있다. 혼란과 갈등이 일사불란하게 정리된 듯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9일 확실시되는 탄핵 표결을 계기로 ‘포스트 탄핵’ 정국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 있다. 꼼수와 술수에 말려들까 봐 촛불 민심에 떠밀려 탄핵에 올인한 결과 포스트 탄핵 국면에 대비한 대책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 조기 하야를 압박하거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부역자라 매도하며 사퇴 압박의 정치 공방이 벌어질 경우 진짜 ‘국정 마비’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첫 번째 판도라 상자다. 여야 정치권은 특검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일임해야 한다. 쓰나미처럼 밀어닥칠 경제·안보 리스크에 대비하지 않고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판도라 상자는 반드시 열릴 것이다. 황교안 대행 체제는 오직 국정 안정과 대선의 중립적 관리를 준비하고, 박 대통령 없이도 국정 관리를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입증해야 한다. 야당의 협조를 얻어 이중 경제사령탑으로 경제리스크를 가중시키는 부총리 인선을 조기 매듭짓는 것이 황 대행 체제의 첫 번째 관문이다.

박 대통령은 워터게이트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닉슨은 탄핵 가결이 확실시되자 국민을 위하는 척하며 미리 사임하는 용단이라도 내렸다. 박 대통령은 시종 ‘법대로’를 외치며 촛불 민심과 맞서 퇴로마저 차단했다. 탄핵 국면이 길어져 6개월 이상 갈 수도 있다. 두 번째 판도라 상자다. 박 대통령의 불통과 옹고집은 공주와 여왕으로 살아온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그러나 공주인 줄 모르고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의 업보 탓도 없지 않다.

박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정치 10단 고수 반열에 올랐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권력학을 수학했다. 박정희 대통령 통치 18년간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 권력의 생리를 체득했다. 구중궁궐 영애로서 공주 스타일이 체질화된 시기다. 어머니가 흉탄에 쓰러진 후 퍼스트레이디로 통치술을 익혔다. ‘천당의 18년’이다.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18년의 은둔기’는 도를 닦으며 와신상담한 ‘시련의 18년’이었다. 영혼을 지배한 최태민-최순실 부녀와의 만남은 또다시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했다. 2013년 18대 대통령의 권좌에 올랐다. 하지만 근거리서 보좌한 ‘문고리 3인방’은 18년 만에 물러났다. 18년의 정치활동기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 ‘롤러코스터 18년’이었다. 주술과도 같은 ‘18년의 법칙’은 박 대통령에게 씌워진 숙명인가.

박 대통령은 만 43세 때이던 1995년 에세이 ‘내 마음의 여정’에서 “인생은 어차피 하나의 싸움이다. 자신을 이긴 사람에게 남이란 싸움의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촛불 민심과의 싸움도 자신과의 싸움으로 보기에, 싸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판도라 상자다. 박 대통령의 비극은, 민심을 역행하는 끝없는 정권 재창출의 권력욕에 기인한다. 4·13 총선 당시 민심을 거스른 공천학살로 여소야대 정국을 자초했다. 사필귀정이다. 박 대통령이 모든 욕심을 비우는 순간 판도라 상자는 닫힐 것이다.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