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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6년 12월 09일(金)
보수주의 정신의 핵심은 ‘자기희생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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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저자 로저 스크러튼은 로널드 레이건(왼쪽 사진)과 마거릿 대처(오른쪽)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자유’라는 보수의 지향점이 있었고, 이 두 사람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동시에 최고위직에 있었던 점이 소련붕괴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자료사진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 로저 스크러튼 지음, 박수철 옮김 / 더퀘스트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새누리당이 사실상 해체됐고 보수세력 역시 변화를 맞게 됐다. 이를 두고 ‘보수(Conservative)’의 쇠락 운운하는 건 우스울 것이다. 정치권만 보면 여야를 보수-진보로 놓을 순 없다. 한국에서 보수는 그저 ‘탐욕스러운’ 기득권 세력 정도로 볼뿐 그 철학은 별반 기대조차 않는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대표적 보수지식인으로 평가받는 로저 스크러튼이 쓴 이 책은 ‘보수는 무엇인지’를 말한다. 일단 민주주의 전통이 오랜 영국을 중심에 놓다 보니 역사·문화적 경험이 판이한 데다 여전히 신생 민주주의국을 면치 못한 한국과 견줄 바가 많진 않다. 심지어 저자가 얘기하는 기독교적 가치와 정상 가족, 관습법의 존중 등 형이상학적 보수주의(자)는 구한말 전통과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사대부와 비슷한 감마저 들 정도다. 그렇다 해도 서구에서 논하는 ‘보수’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준다.

1944년생인 스크러튼은 부친이 사회주의자였고 젊은 시절 파리에서 ‘68혁명’을 목격하고도 정반대의 길로 간 독특한 학자다. “진정하지만 상대적인 자유는 허황되지만 절대적인 그림자를 위해 파괴되었다”라고 68혁명을 비판한다. 1979년부터 폴란드와 체코 등지에서 ‘비밀 세미나’의 강연자로 활동해 동구권 붕괴에 일익을 맡기도 했으며, ‘솔즈베리 리뷰’라는 보수주의 잡지를 만들었다 ‘레이시스트’(인종차별주의자)로 찍혀 한동안 강단에 서지 못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보수주의자가 됐다고 그는 당당히 말한다.

저자는 ‘보수주의의 개념에 대해서’라는 장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 중 표현을 빌려 “보수주의의 출발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심리학”이라며 “그것은 인간을 서로 책임지며, 상호의무로 묶여있고, 가족과 시민사회 생활에 성취감을 느끼는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말한다. 이어 “인간이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법제도, 교육, 정치 등이 그 결과물”이며 “그것들은 우리가 자유를 획득하는 통로이자 우리가 온전한 자의식적 행위자로서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정의한다. 다른 장에서는 이를 쉽게 “가족을 부양하고, 공동체 생활을 누리고, 신을 경배하고,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자기 소신에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풀어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보수주의는 체제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법제도’ ‘교육’ ‘정치’ 등과 함께 개인의 측면에서 ‘가족’‘공동체’‘신’‘문화’를 “지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개인과 자본주의 체제의 관계와 관련해 저자는 자기희생과 함께 책임을 보수주의의 정신으로 강조한다. 그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이기심을 모두의 이익으로 잇는 사회는 연민, 임무, 미덕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회”이며 “이기심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모든 사회의 기저에는 자기희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유경제가 자유로운 존재에 의해 운영되지만 자유로운 존재는 책임지는 존재”이며 “개별 행위자들이 계약을 지키도록 하고 부정행위의 비용을 원인 제공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법적, 도덕적 제재의 지원이 없으면 시장경제는 적절하게 기능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정, 지역 동호회와 단체, 학교, 직장 등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사회가 혁명적 독재 정권이나 은밀한 관료제의 비인격적 명령에 의해 하향식으로 조직될 때 정치적 질서와 심지어 사회에서 책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며 “하향식 통치는 무책임한 개인을 양산한다”고 경고한다. 우리 사회 보수주의 정치의 행태와 관련해 음미해볼 만하다.

저자는 대처리즘을 모두 수용하진 않지만 ‘각자도생’이나 ‘사회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에는 동의하는 ‘뉴라이트’다. 또한 “유럽 문명이 국경의 유지로 좌우되며 국경을 해체하려는 음모의 결과물인 유럽연합이 유럽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믿는 유럽통합 반대론자다. ‘서양 문명’의 수혜자로서 물려받은 물질적, 정신적 유산을 잘 지켜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보수주의는 다른 세계와는 많은 괴리가 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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