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푸른 바다의 전설, 발랄하면서도 슬픈 인어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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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통념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사랑이 변하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통념이다. 그 어떤 시련과 고난에도 변하지 않는 순수한 감성을 사랑이라 믿고 있는 꼴이다. 진부하고 상투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청춘남녀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는 여전히 대중을 사로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절대적이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판타지와 다르지 않다. 자칫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즐기는 동화로 치부될 수도 있다. 조선 중기에 편찬된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인어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은 SBS 드라마스페셜 ‘푸른 바다의 전설’도 그렇다. 깊고 깊은 바다에서 첨단 문명의 전시장인 도시에 온 인어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기꾼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환상적으로 펼쳐 놓는다.

이 드라마의 인어는 거품이 되어 사라진 안데르센 동화의 슬픈 인어공주가 아니다. 육지에서 만난 첫 번째 인간이자 남자인 허준재(이민호)를 찾아 도시로 왔다가 생활고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인어다. 먹성이 좋아 무엇이든 잘 먹지만, 인간 세계의 규칙이나 언어를 몰라 바보 취급을 받다가 급기야 ‘심하게 멍청하다’는 의미의 심청(전지현)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그녀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어로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질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자, 신기한 구경거리일 뿐이다. 사랑을 찾아 바다에서 도시로 올라올 정도로 주체적인 성격임에도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어에게 이름을 지어준 허준재는 부동산 재벌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다가 사기꾼 조남두(이희준)를 만나 사기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머니를 찾아 좋은 집을 사드리겠다는 일념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한없이 멍청한 심청이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아무리 사기꾼이라 해도 없는 사람 돈은 먹지 않고, 결혼을 미끼로 사기 치지 않는 원칙을 지키던 그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심청에게 세상 이치를 하나씩 가르쳐주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허준재와 심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고 있었다. 조선시대 협곡현령 김담령(이민호)이 어부들에게 잡힌 어린 인어(전지현)를 바다로 돌려보내 줬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와 현대를 병치시킨 구성은 허준재와 심청의 오랜 인연을 설명해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하지만 과거에 이루지 못한 사랑이 현재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야기의 구심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일으키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게다가 부동산 재벌 남편의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어릴 때 집을 나간 아들 허준재를 찾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새어머니의 계략이 인간과 인어의 사랑이라는 핵심 서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도 앞으로의 전개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심청이는 인간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가면서도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인어의 사연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도 그래서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