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朴대통령 명예로운 단죄 도와주는 게 나라 살리는 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하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는 헌법적 근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이헌(55)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당시 시위 장기화로 피해를 본 서울 광화문 일대 상인들의 소송대리인을 맡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여했으며,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탄핵, 촛불, 세월호 등 현 시국의 모든 핵심 키워드와 ‘인연’이 있었던 그를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9일 국회에서 가결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박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데 대해 ‘헌법 제10조에 의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며 탄핵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당일 7시간 행적과 관련해 헌법·법률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 법인(홍익법무법인) 안동일 변호사님이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때 탄핵소추 대리인 중 한 분이었어요. 당시 제가 그분의 ‘어시스턴트’ 변호사로서 도왔기 때문에 탄핵심판에 대해 좀 압니다.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있더라도 ‘중대한 법 위반’이라는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희생자를 직접 구조할 책무는 오로지 세월호 선장, 해경 등 현장구조 지휘관에게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치적 이유로 ‘세월호 7시간’을 탄핵소추안에 집어넣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시간만 더 걸릴 판입니다.”

이 이사장은 그러나 탄핵사유는 아닐지언정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미심쩍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특조위 부위원장 시절 이를 조사하려고 하자 정부와 청와대 측이 펄펄 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저는 부위원장 될 때부터 그 7시간까지 다 조사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조사하겠다니까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여럿이 저에게 ‘청와대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하겠다’ 이러는 겁니다. 그걸 보면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이유, 대통령에게 흠이 될 만한 사유가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7시간 조사한다니까 저한테 좌파라고 하고, 심지어 제가 누구를 성추행했다는 소문까지 퍼뜨렸어요.”

이 이사장은 특히 헌재가 탄핵심판에서 인용 결정을 내리는 게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이 이사장은 ‘비선 실세’ 최순실(60) 씨를 거론하며 “최순실 국정농단은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주권을 박 대통령에게 위임한 거지 최순실에게 한 게 아니니까요.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탄핵이 안 된다면 탄핵 제도의 존재 이유가 없어집니다. 제가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 활동 등을 하면서 종북좌파와 끊임없이 싸워 왔는데, 이런 세상 만들려고 싸운 게 아니에요. 박 대통령이 그야말로 강남의 정말 못된 아줌마(최순실), 하필 그런 사람한테 일을 시켰잖아요. 저나 최재경 변호사(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대환 현 민정수석까지도 제가 이해하기에는 ‘박 대통령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안 죽을 것 같으면 우리(건전 보수 진영)라도 나서서 죽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최 변호사의 경우 민정수석 그만둘 때 저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밟히는데 박 대통령이 명예롭게 단죄될 수 있게 뒤에서 변호를 도우려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별검사팀 수사와 헌재의 탄핵심판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적용이다. 법률가로서 그의 의견을 묻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포괄적 뇌물죄 이론이 있기 때문에 대가성 부분은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전례가 있으니까요. 또 제3자 뇌물죄는 분명히 존재하는 죄명이고요. 게다가 이 사람 저 사람 많으면 헷갈리는데, 박 대통령은 최순실 일가에게만 몰아줬으니 더 얘기할 것도 없이 확실하죠. 게다가 기업들도 미르·K스포츠재단, 최순실을 밀어줄 때 면세점이라든지 총수 사면이라든지 대가가 오갔다는 부분이 특검을 통해 밝혀질 수 있겠죠. 특히 대통령이 지난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날 때 청와대에서 준비한 말씀 자료에 ‘시내 면세점 특허 제도에 관한 종합적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잖아요. 그게 증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사실 이 이사장은 9년 전에 이미 최순실 씨 일가의 존재를 거론했던 인사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경선 때 국민검증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참가, 최 씨, 그의 남편이던 정윤회(61) 씨, 부친 최태민(1994년 사망) 목사 등과 당시 박근혜 후보 간의 관계에 대해 추궁했다. 이 이사장은 사전에 예상질문을 넘겨준 상태에서 진행한 검증 청문회였는데도, 최 씨 일가와 관련해 묻자마자 박 후보의 얼굴이 확 굳어지면서 너무나 완강하게 반발해 놀랐다고 기억했다.

“이번에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한테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항복 받은 거 있잖아요. 그 파트를 맡았던 것도 접니다. 그 당시에도 ‘주술적 관계’라는 건 파악했죠. 단 그때는 주술적 관계를 통해 ‘힐링’을 하더라도 자기 일만 제대로 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국정 전반에 최순실이 개입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최순실은 최태민의 딸 정도로만 이해했는데, 최태민보다 더한 주술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이사장은 탄핵 정국에서 주요 포스트에 있는 인물들과도 여러 인연으로 얽혀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탄핵심판의 소추위원장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중앙대 법대 80학번 동기다. 조대환(60) 청와대 민정수석과는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을 같이 했고, 조 수석의 전임자 최재경(54) 변호사와는 법률구조공단에서 월 2회씩 무료 법률상담 봉사를 한 바 있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64) 특검과도 인연이 있다. 오세훈(55) 전 서울시장이 2013년 세빛둥둥섬을 만들며 세금을 낭비했다고 대한변협에 고발당했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이 이사장은 오 전 시장의 법률대리인이었고, 박 특검은 고발인 쪽이었다.

“조 수석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건 밝히면 안 될 것 같고요. (조 수석은) 제가 대통령 변호인단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아쉬워하긴 해요. 유영하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변호사가 나와 ‘검찰 수사를 안 받겠다’ ‘검찰이 상상과 추측으로 환상의 집을 지었다’ 등의 이야기를 해서 사태만 악화시켰습니다. 물론 저로서는 변호인이 안 된 게 다행이죠. 박 대통령 변호를 맡기로 했다면 제 아들이 자기를 밟고 가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저도 후보로 몇 분을 추천했는데, 박 대통령 측이 변호인단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은 건 사실입니다. 제가 알기에 분명 최순실과 연관이 있는 변호사 2명도 변호인단 합류를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광우병 촛불시위를 강하게 비판했던 이 이사장. 최근의 촛불집회에 대한 견해는 전혀 달랐다. ‘4·19 혁명이나 6월 항쟁, 3·1운동,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반열에 있는 국민적 저항’이라는 게 촛불집회에 대한 그의 평가였다.

“광우병 촛불시위는 폭력적 양상으로 진행됐고, 상당수 시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줬습니다. 반면 이번 촛불집회는 평화적이고, 대다수 시민이 찬성했습니다. 법리적으로 들어가면 2008년엔 쇠고기 수입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거라, 일종의 소비자 운동 개념이죠. 지금은 국기를 문란하게 한 국정농단 사건에 국민이 정당하게 저항권을 행사한 겁니다. 저항권의 발동요건인 ‘국가권력에 의하여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해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보수·진보 양측의 집회는 계속되고 있지만, 지난 9일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제 공은 헌재로 넘어간 게 사실이다. 이 이사장은 촛불 민심을 제도적으로 승화하는 게 남은 과제이고, 이를 위해 당장 개헌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19 혁명이 5·16 쿠데타로, 1980년 서울의 봄이 신군부의 등장으로, 1987년 6월 항쟁이 군사정권의 연장으로 끝났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하는데, 지금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탄핵심판보다도 문제없이 될 겁니다.”

헌법 전문 변호사를 자처하는 이 이사장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에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권한이 절대적입니다. 중임제로 해 놓으면 나중에 3선개헌 하고 독재로 갑니다. 권력을 분점하는 게 개헌의 핵심입니다. 의원내각제 아니면 이원정부제 등의 논의가 나오는 게 이 때문이죠. 의원내각제로 개헌한다면 21대 국회에서나 제대로 작동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내년에 뽑을 대통령 임기도 21대 총선(2020년)까지로 해야지 않을까요.”

이 이사장의 ‘소신파’ 성향은 법률구조공단 운영 철학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법률구조 제도가 본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적용 대상을 명확히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법률구조는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법률상담, 소송대리, 기타 법률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복지’ 제도다. 1987년 법무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법률구조공단이 출범해 내년 30주년을 맞는데, 법률구조 대상은 현재 국민의 67%까지 확대돼 있다. “법률구조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해야 맞습니다. 무차별 복지가 아니라 선택적 복지가 돼야죠. 그래서 이달 초 대한변호사협회, 대형 로펌 등과 업무연계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공단은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꼭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무료 법률구조에 집중하고, 그 외 대상자들에 대한 법률지원은 대한변협이나 로펌 변호사에게 연결해주는 겁니다.”

이 이사장은 이를 통해 ‘바람직한 전관예우’의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고위 공직을 거친 분들은 공직자윤리법 때문에 로펌에 3년간 못 들어가요. 그분들한테 의무만 강요하지 말고 일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겁니다. 무임금이든 3년 계약직으로 채용해 최소한의 생활비만 드리든 해서, 전관 변호사들에게 공익활동 기회를 주자는 거죠. 동시에 청년 변호사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효과도 있을 걸로 기대합니다.”

지난 5월 취임한 이 이사장의 임기는 2019년 5월까지다. 3년 임기를 채우고 연임까지 하고 싶지만, 사회에 공헌할 다른 길이 열린다면 피하지도 않겠다는 게 이 이사장의 생각이다. 이 이사장은 다만 국회의원만은 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친구나 선후배 중 괜찮았던 사람들이 여의도에 들어가서 조폭 하수인처럼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2007년 대선 때 이회창 무소속 후보 선거를 도우면서 여의도식 정치에 환멸을 많이 느꼈습니다.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 핵심 관계자가 캠프에 들어왔는데,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손을 잡자고 하더라고요. 대선 뒤 이회창 후보가 자유선진당을 창당했는데, 저는 선진당까지 따라갈 생각은 없어서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MB(이명박)의 남자’로 불리던 분 중 한 분이 저를 찾아와 ‘이회창 죽이려는데 알려줄 만한 얘기 없냐’ 그러더군요. 정말 너무한다 싶었습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