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장을 중심에 그린 후기 구석기 벽화(왼쪽)와 성화(가운데)는 우리의 영혼이 심장에 있다는 인류의 오랜 믿음을 보여준다. 적출된 자기 심장을 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오른쪽 사진은 과학의 발달로 심장이 더 이상 영혼의 장소가 아님이 드러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다 제공
마음의 장기 심장 / B-MADE 센터 기획·지음 / 바다
인류 역사에서 영혼과 마음의 자리를 두고 다른 두 견해가 충돌했다. 우리 영혼과 마음은 머리, 즉 뇌에 자리 잡고 있다는 ‘뇌주설(腦主說)’과 심장이야말로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라며 영혼과 마음은 심장에 있다고 생각한 ‘심주설(心主說)’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보자면 알크메온, 피타고라스, 히포크라테스는 뇌주설 쪽이고 엠페도클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주설을 신봉했다. 하지만 심장과 뇌의 대결은 뇌신경과학의 발전, 심장 이식 성공과 함께 뇌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제 영혼은 심장에 머문다는 심장 중심모델은 더 이상 과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다. 과학의 역사에서 이를 결정지은 사건은 1967년 크리스티안 바너드에 의한 최초의 심장 이식 수술이었다. 심장이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영혼이 심장에 존재한다는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현대인은 이제 심장이라면 혈액을 공급하는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심장 모양을 옮긴 하트가 사랑의 상징이듯 우리에게 드리워진 심장의 아우라는 여전히 눈부시다. 뇌과학이 진실을 드러내도 쿵쿵,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 뛰는 심장 박동과 가슴 아린 통증처럼, 심장은 살아있는 몸, 육체적 감각으로 느껴지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책은 심장을 둘러싼 과학적 발견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 이뤄졌던 심장에 대한 종교, 신화, 예술과 인문적 고찰을 풀어낸다. 심장을 사이에 둔 과학(의학)과 예술(인문)이라는 이질적인 업계의 흥미로운 만남으로. 생명과학, 인지과학 그리고 예술과 디자인의 융합연구를 위한 학술공동체 B-MADE(의생명 예술디자인교육)센터가 기획한 작업이다.
김성준 서울대 의대 교수, 김홍기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 김정한 서울여대 현대미술과 교수, 이현진 연세대 미디어아트 교수 등 의학(과학)과 예술(디자인), 두 갈래에 속한 연구자 8명은 8편의 글을 통해 각자의 관점에서 심장을 살핀다. 8편의 글은 원시 종교, 자연철학, 해부학, 물리학, 화학, 생리학, 분자 생물학, 문학, 시와 회화, 음악 그리고 미디어 첨단 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하게 흐르면서 만나고, 다시 자기의 길을 가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인류 역사에서 먼 원시시대엔 심장보다는 간이 더 중요했다고 한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제물로 바친 짐승의 간을 꺼내 보고, 그 형상으로 점을 치는 기술이 발달했다. 그 뒤 우리 영혼이 심장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심장이 장기 가운데 최고 위치에 오르게 된다. 심장이 시각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만5000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이다. 스페인의 엘 핀달 동굴 벽화에 재현된 매머드 그림에는 장기로는 유일하게 심장이 그려져 있다. 심장을 그림으로써 매머드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주술적 의미로 풀이된다. 프랑스 니오 동굴 벽화에도 들소 그림에 심장 위치가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오랜 기간 수렵 경험을 축적한 후기 구석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심장이 뛰느냐 멈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심장이 나오는 최초의 문헌은 기원전 2000년경에 작성된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수메르의 도시 국가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황소를 죽인 후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태양의 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이때 심장은 주술적 의미에서 생명을 나타내고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상징물로 풀이된다. 이집트에서도 심장과 영혼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겼다. 인체 장기중 심장만 방부 처리해 미라 안에 다시 집어넣는 의식을 가졌고 죽은 뒤엔 영혼과 지성이 담긴 심장과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상징인 깃털을 올려놓은 저울이 기울지 않고 평형을 이룰 때만 내세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질병이 주술의 영역에서 벗어나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심장에 대한 의학적 발견이 이뤄지는 한편 뇌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심장의 신화는 사라졌다.
이 같은 변화는 쇼팽의 심장과 제니퍼의 심장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작곡가 쇼팽의 주검은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 묘지에 안치되었지만 그의 심장은 조국 폴란드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돼 있다. 쇼팽이 죽기 전에 동생에게 자신의 심장을 아버지 땅에 가져다주길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의 심장은 따로 적출돼 술병에 담긴 채 비밀리에 폴란드로 옮겨졌다. 쇼팽에게 심장은 자신의 영혼이었다. 그로부터 150여 년이 흐른 2007년,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제니퍼 서튼이라는 여성이 화제가 됐다. 수술 때문이 아니었다. 심장 이식 수술 자체가 뉴스가 될 때는 이미 지났다. 뉴스가 된 것은 그의 몸에서 나온 쪼그라든 심장, 방부제 용액에 담겨 웰컴 멀렉션 개관 기념전에 전시된 죽은 심장이었고, 서튼은 전시장에서 자신의 심장을 봤다. 자신의 것이지만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자신은 살아 있지만 자신의 심장은 죽은 낯선 상황은 과학이 가져온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장편시 ‘라미아’에서 아이작 뉴턴이 분광학으로 무지개를 분석하는 바람에 무지개에 대한 시성이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무지개를 풀며’를 통해 과학은 영감의 원천으로 실제적인 아름다움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고 답했다. 책은 심장에 대한 과학적 성과를 좇으며 심장을 탈신비화시키지만 과학적으로 밝혀진 심장의 원리가 다시 새로운 미디어아트가 되듯이 과학적 발견은 또 다른 의미에서 심장에 대한 매혹을 증폭시킨다.
오히려 과학적 발견으로 심장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심장을 둘러싼 인류의 믿음은 전설이 돼 버렸다. 전설의 아우라는 과학보다 강하다. 이제 심장 박동은 인류의 먼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학적 시원의 기억인 동시에 개인으로서는 탄생 이전에 엄마의 자궁 속에서 감각 수용기 세포들이 물의 떨림을 통해 전해 듣는 신호가 됐다. 기억 이전에 생명을 깨어나게 하는 심장의 진동. 이 냉정하고 각박한 시대, 심장은 다시 신화가 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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