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임죄 확대해석’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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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순실 사건의 여파가 민간 기업의 합병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정농단 특검팀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 청와대 등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급기야 혐의를 부인하는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28일 긴급체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또,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소환해 외압설은 물론 배임 여부까지 집중 추궁했다고 한다. 국민연금의 권리 행사에 권력자들이 불법적 외압을 행사했다면 직권남용 등에 해당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특검팀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러나 업무상 배임 자체에 대한 판단은 신중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칫 정상적 경영 행위를 현저히 위축시키는 공포의 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에 찬성한 것이 홍 전 본부장의 배임행위에 해당하는가.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홍 전 본부장이 기금운용본부장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위배했어야 하고, 그로 인해 국민연금에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어야 한다.

먼저, 임무 위배 부분을 보자. 위 합병 건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의결권 행사는 본래 기금운용지침과 의결권행사지침에 따라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도 공단 투자위원회가 다각도의 검토 결과를 놓고 찬반 표결을 했다. 기명 표결 결과 찬성표가 반을 넘었다. 과반의 찬성이 있으면, 찬반을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이 아닌 한 굳이 외부인사로 구성된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부의할 필요가 없다(의결권행사지침 제8조). 외부인에게 맡기는 것은 오히려 여론의 간섭으로 혼란만 부채질할 수도 있다. 또, ‘외압 의혹’을 보자. 최순실 사건으로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은 거의 모든 사람이 책임을 윗사람에게 다 떠넘겼다. 그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다. 위원을 교체할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실제로 압력이 있었는지, 본부장과 장관에게 일말의 자발성도 없었는지를 엄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윗선의 압력이 있었다고 해도 그 윗선의 ‘강요죄’는 성립할 수 있을지언정 아직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본부장이나 그 윗선이 국민연금에 손해를 보일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손해를 봤다는 분석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설사 합병 후 자산(주식의 시가총액)이 줄었다고 해도, 그래서 국민연금이 손해를 봤다 해도 그것은 본부장이나 그 윗선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합병으로 인해 주가가 떨어졌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주가엔 오만 가지의 변수가 개입한다. 오히려 합병이 무산됐더라면 한국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됐을 것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무산, 엘리엇의 경영 간섭과 투자자의 실망으로 인한 주가의 급격한 하락, 수조 원에 이르는 회계상의 잠재적 부실에 대한 처리 불발, 계속된 건설경기의 침체 등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넣었을 것이다.

강요죄의 경우에도 강요 행위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긴 매우 어렵다. 강요가 아닌 통치행위로 볼 여지도 있고, 자신만의 신념이나 충성심에서 자발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배임죄를 처리하는 검찰의 태도는 요즈음 들어 매우 신중해졌다. 황당한 의혹이 진실처럼 난무하는 삼류 드라마 같은 세상이다. 흔히 경영 실패는 배임죄를 불러온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국민연금의 경영 실패도 아니다. 냉철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