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不信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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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정치부 부장

병신년(丙申年)은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판치고 배신과 배반이 꼬리를 문 난세로 기록될 것이다. 원숭이해는 잇달아 ‘탄핵 징크스’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4년 갑신년(甲申年) 노무현 대통령 국회 탄핵 후 12년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의 전철을 밟았다. 그 때문일까. 병신년은 나라 팔아먹은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떠올리는 난세의 언어들이 대유행했다. 국정농단을 막지 못한 새누리당 친박 호위무사 5인방을 일컬어 ‘병신친박오적(丙申親朴五賊)’이라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반대로 방중한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인은 보수단체로부터 ‘병신육적(丙申六賊)’이라 불렸다.

교수들이 2016년 사자성어로,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는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한 데서 보듯, 병신년은 난세 중 난세였다. 주인 잘못 만난 동물들까지 지옥 같은 해를 보내야 했다. 3000만 마리에 육박하는 닭과 오리 등 가금류가 조류인플루엔자(AI)와 인간들의 부주의로 몰살당했다. 붉은 닭의 해인 2017년 정유년(丁酉年)에 새벽을 알릴 ‘꼬끼오’ 울음소리가 멈추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엄습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죄 없는 동물들은 난신적자들과 동급 취급당하는 수모도 당했다.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은 최순실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늙은 너구리’라 부르며 경계했다고 진술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김 전 실장을 ‘법률 미꾸라지’라 칭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대통령을 몰아붙인 검찰을 “다리가 부러져 거동할 수 없게 된 사자에게 떼로 달려드는 하이에나”라고 이중성을 질타했다. 정유년 검찰 개혁은 제일 명제다. ‘죽은 권력과는 싸우고 산 권력에는 복종하는’ 정글의 하이에나 습성이 체질화된 검찰이 언제 또 촛불을 삼켜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1994년 은둔 시절 박영선 민주당 의원과 가진 인터뷰에서 “‘동물의 왕국’을 즐겨 본다”고 했다. “동물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박근혜정부의 실패 원인은, 가신(家臣)그룹(최순실, 문고리 3인방)과 친위 검찰(김기춘, 우병우)로 구성된 ‘이너서클’을 중심에 둔 폐쇄적 국정운영 방식 때문이었다. 권력의 폐쇄적 울타리를 걷어내는 것은 정유년의 두 번째 과제다. 배신을 차단하기 위해 불통·불신의 울타리를 겹겹이 쳤지만 국가 감시망을 벗어난 통제 불능의 이너서클 내부에서 결국 배신의 구멍이 뚫렸다. 민주주의와 국민을 배신한 대가로 박 대통령은 유폐됐다.

광장의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송박영신(送朴迎新) 구호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역신(疫神)’의 기세를 꺾고 살생의 기운 대신 생명을, 분노 대신 희망의 새해를 맞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하지만 난세 뒤 대선의 해, 정치권 핵분열로 춘추전국시대가 찾아왔다. 지지율 20%대를 넘긴 절대 강자가 없는 군웅할거 시대다. 정유년은 친박·비박, 친노·비노, 친문·비문 같은 계파 패권주의와 난신적자, 하이에나, 너구리, 정유오적 같은 불신의 단어를 쓰레기통에 버리자. 힘찬 첫새벽을 알릴 혜안과 용기, 실천력을 갖춘 난세의 영웅을 영접하는 것은, 눈 밝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