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수사>문체부 前간부 “블랙리스트 대응 TF 참여했다 쫓겨나”

리스트서 이름 빼준 국장 좌천
박정희 풍자극 탓 사상 검증도

김종, 김기춘과 통화모습 목격
김희범 前차관 “윗선지시 고통”

청와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예술계 블랙 리스트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인사 블랙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 리스트에 반대하거나 적용하지 않는 관료들은 쫓겨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고, 청와대 비서실에서 비판한 문체부 공연 담당자는 사상 성분 검증을 받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 블랙리스트 대응하려다 쫒겨나= 2014년 사표를 종용받은 문체부 1급 6명 중에 포함됐던 A 씨는 29일 문화일보와 만나 “그해 1급 3명이 문체부를 떠난 것은 청와대 비서실에서 내려온 블랙 리스트를 무마하기 위해 만든 ‘건전문화콘텐츠 TF팀’ 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 TF 팀은 그 해 6월 조현재 당시 차관이 김소영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 정무수석실에서 만들었다는 A4 두 쪽짜리 허접스러운 명단을 받은 뒤 만든 대응팀이었다. 당시 최규학 기조실장이 단장을 맡아 꾸려진 TF 팀은 청와대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 운영 계획을 만들어 보고하되 실제로는 이를 피해 가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게 A씨의 전언이다. 그에 따르면 TF에서는 “헌법과 법률에 저촉되는 사안, 이와 관련된 개인에 대해 지원하지 않겠다”는 매우 확실한 원칙을 넣는 한편 국회 예산 지원을 받은 작품, 오랫동안 운영해온 역사성이 있는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을 둬 지원 통로를 열어놨다. 이를 통해 논란이 된 지역 축제와 연극제를 지원했다고 그는 밝혔다. TF팀은 이 같은 운영 계획을 김 비서관에게 전달했다.

A 씨는 그 이전부터 문체부가 운용하는 펀드가 영화 ‘변호인’에 투자한 것을 두고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혀를 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 ‘개구리’에 대해 국립극단이 어떻게 이런 작품을 할 수 있느냐는 청와대 비서실의 비난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영화 쪽에 불만이 많아 “해외 주재 한국 문화원이 주관하는 영화제에 특정 작품을 포함 시키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반대로 특정 작품의 티켓을 대량 구입하라는 지원 요청도 있었다고 밝혔다. A 씨는 “당시 문체부에서는 문화예술계 통합에 대한 의지가 강해서 해외 영화제는 외국 전문가까지 참여해 결정한 것이기에 개입할 수 없고, 판단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맡겼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대응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괘씸하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개구리’ 같은 작품의 경우, 담당 간부가 사상 검증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진룡 장관이 그해 7월 면직됐고, 김종덕 장관 취임 이후 일괄 사표를 제출받은 1급 6명 중 TF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간부 3명의 사표만 수리됐다.

A 씨는 “블랙 리스트 초기 명단은 조악한 수준이었다”며 “그 뒤 여러 번 업데이트 돼 지금에 이른 것 같다”고 밝혔다. 특히 세월호 사건 이후 문화예술계에서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김 실장에게는 방해세력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블랙리스트 적용이 적극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2015년엔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적당히 빼주며 적용하지 않았던 모 국장이 예술원 사무국으로 좌천되는 등 한직으로 밀리기도 했다.

◆ 문체부 좌지우지한 김기춘= 유 전 장관 등의 증언에 따르면 김 실장은 2014년 7월 임명된 김희범 차관에게 1급 명단을 넘겨주며 자르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한 전직 간부는 “김희범 아틀란타 총영사가 차관에 임명됐다고 발표된 날 보니 이미 김 차관이 들어와 있어 모두 놀랐다”며 김 차관이 김 실장으로부터 많은 지시와 임무를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A 씨는 “김 차관이 부임 직후 문체부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했다. 그 뒤 나도 (윗선 지시 때문에) 참 힘들다. 위에서 시켜서 한다”며 고통스런 심정을 여러 번 토로했다고 전했다. 문체부 내에서는 김 차관이 부인하기 이전에 이미 정리할 1급 명단이 장관 내정자에게 전달됐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한편 김 실장에게 정례적으로 문체부 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김 종 전 차관이 당시 김 실장과 직접 통화하는 모습을 몇 차례 직접 목격됐다고 A씨는 밝혔다. 김 전 차관이 전화를 받으며 “‘네, 실장님’이라며 목소리를 낮추면 김 실장이라고 생각해 자리를 비켜줬다”고 전했다.

A 씨는 “알고 있는 사실은 말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며 “블랙리스트 같이 시대착오적인 일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문체부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고 간부들, 특히 윗선의 지시를 더 부풀려 전달했을 간부들은 철저히 책임져야 한다”며 “공무원이기에 윗선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실무자에 대해서는 정말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한편 문체부 안팎에서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모 실장이 퇴임 후 공공 단체장으로 부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일면서 책임 규명은커녕 여전히 보은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참담해 하고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