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제자들과 29년간 ‘믿음의 손편지’… 상처받은 마음 보듬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준철 교사가 순천효산고 학생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산책을 즐기던 중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준철 교사 제공

순천 효산고 정년퇴임 안준철 교사

‘아직은 네가 가야 할 길이 멀고, 설익은 사월의 풋사과처럼 아직은 네 계절이 아니라도 넌 이미 향기롭게 익어가고 있는 것을 난 알 수 있단다. ’

지난해 전남 순천시 순천효산고에서 29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 퇴임한 안준철(64) 교사가 지난 2012년 4월 제자의 생일을 기념해 지은 ‘영혼의 약속’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안 교사는 한 달 동안 학생과 손편지를 주고받은 것을 토대로 시를 지었다. 시는 안 교사와 학생의 마음을 잇는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안 교사는 교직에 입문해 첫 담임을 맡은 1989년부터 퇴임하는 순간까지 학생들을 위한 시 짓기를 멈추지 않았다.

안 교사는 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과 수업을 하면서 한 달에 5명 안팎의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녹록지는 않지만, 내가 관심을 두는 만큼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더 컸다”고 회고했다. 안 교사는 특히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그는 “교사의 관심과 사랑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들을 많이 가르쳤다”며 “결손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 제자들의 좌절을 보며 가슴 졸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안 교사가 20년 전 담임을 맡았던 제자 중 이한수(가명) 군은 6세 때 부모를 잃고 두 살 터울의 동생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라 고등학교까지 진학한 학생이었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 군의 부모는 말다툼을 하더니 갑자기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는 “한수는 부모 없이 자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을 묻자 뜻밖에도 공부라고 했다”며 “집에는 까막눈인 할머니뿐이어서 초등학교 때까지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 교사는 “아이가 ‘글을 못 읽는다고 혼을 내는 선생님은 많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상하게 글자를 가르쳐준 선생님은 만나지 못했다’고 고백했을 때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뒤늦게 딱한 사연을 알게 된 안 교사가 이 군을 다독거려 학교생활을 이어가게 했지만, 졸업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범죄에 휘말려 퇴학을 당했다. 안 교사는 이 군이 퇴학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설득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 이 군은 졸업한 지 12년 만에 안 교사를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안 교사는 “졸업한 후에도 많은 역경을 겪은 아이가 힘든 일이 닥칠 때면 내가 먼저 생각났다는 고백을 했을 때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안 교사가 방황하는 학생에게 가장 먼저 하는 교육법은 ‘믿어주는 것’이다. 안 교사는 “교사가 학생을 믿어줄 때 학생은 시나브로 변해간다”고 설명했다. 박영은(가명) 양의 사례도 이 중 하나다. 박 양이 학교를 자퇴하고 2015년 재입학했을 때 안 교사가 담임을 맡았다. 초·중학교 때는 착실했던 박 양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무단결석을 하는 등 일탈의 길을 걸었다. 재입학을 해서도 박 양의 생활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안 교사는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 생각을 하면 걱정과 함께 화도 났던 것이 사실이지만 우선 아이가 변할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안 교사는 결석할 때마다 거짓말을 하는 박 양에게 “결석을 해도 좋으니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박 양이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용서했다. 안 교사의 이 같은 믿음에 박 양은 변하기 시작해 무난히 졸업하고, 졸업 직후에는 취직도 했다. 그는 “아이의 변화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서서히 일어났다”며 “회사에 취직한 아이가 이제는 제법 성숙한 행동을 할 때면 교사로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자랑했다. 박 양은 졸업한 후에도 안 교사를 꾸준히 찾아 회사에서 속상한 일도 얘기하고 월급을 모아 새 차를 구매한 날에는 안 교사와 시승식을 할 만큼 돈독한 사제지간이 됐다.

안 교사는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역경을 극복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배운 점도 많다. 안 교사가 1989년 첫 담임을 맡은 제자 중 김주영(가명) 군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학생이었다. 어머니 혼자서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5형제를 키웠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김 군 역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해야 했다. 다행히 성적이 좋았던 김 군은 면접만 통과하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안 교사는 “합격은 떼어놓은 당상이었지만 학교에서는 학생의 안정적인 취업을 위해 면접에서 이 군 어머니의 직업을 ‘호텔 종사자’쯤으로 대답할 것을 조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군은 면접장에서 어머니의 직업을 솔직하게 구체적으로 답했고 결국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안 교사는 “‘어머니의 직업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아이의 야무진 입과 당찬 목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의 행동이 오히려 나에게 큰 가르침을 줬다”며 “정직하고 착실했던 이 아이는 지금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교직에 몸담으면서 많은 역경을 겪는 후배 교사들에게 “아이들에게 대우받기 위해 엄격한 교사가 되기보다는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교사가 돼야 한다”며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교사만이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의 공감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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