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안뺐다고”… 황당한 승진탈락 사유

기업들 인사기준 업무 무관
“다이어트 계획서 제출” 요구
흡연자 색출 모발·소변검사에
직원들 미용실서 탈색·염색도

한 대기업에 다니는 A 씨는 지난해 11월 평사원에서 주임으로 진급하는 승진인사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A 씨는 12월 상사로부터 승진인사에서 탈락한 사유를 전해 들으며 ‘다이어트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상사는 A 씨에게 “주임이 되지 못한 게 자기관리가 소홀한 점도 원인”이라며 “체중을 감량할 필요가 있으니 내게 다이어트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A 씨는 이 같은 요구에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다이어트 계획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지켜본 동료들은 “직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기준으로 인사가 진행돼야 하는데, 회사에서 개인 체중을 지적하고 감량까지 강요하는 것은 인권 침해 수준”이라고 불평했다.

해당 기업은 또 승진 후보자를 대상으로 흡연자인지 가려내기 위해 ‘모발·소변검사’까지 실시, 직원들의 불만이 더욱 고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연을 장려하고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 흡연 사실이 적발되면 대부분 승진인사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승진대상자 중 흡연을 했던 사람들은 인사철 모발검사를 앞두고 미용실에 모여 탈색이나 염색을 하는 웃지 못할 풍경까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직원들은 소변검사 때 비흡연자 동료의 소변을 받아 대신 제출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입사 최종단계에서 금연 서약을 하게 되는데, 최종합격을 앞두고 ‘을’의 입장에서 ‘담배를 계속 피워야 하니 서약할 수 없다’고 할 지원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들은 “직장에서 철저히 금연하고 퇴근 이후나 휴일에만 담배를 피우더라도 흡연자라는 이유로 승진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지나치지 않으냐”고 평했다.

이 기업 관계자는 “회사 내부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데, 사실이라면 본사 차원의 지침이 아니라 지점에서 잘못한 것”이라며 “당연히 체중이 승진 탈락 요인이 될 수 없고, 업무성과에 따라 승진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명했다. 흡연자를 가려내는 검사에 대해서는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모발·소변검사는 동의를 받은 후 직원 건강을 우선시해 실시하는 것”이며 “금연정책을 시행하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한 중소기업 대표이사가 과체중 직원에게 체중 감량을 지시하고, 실패할 경우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강요하는 이메일을 보낸 데 대해 ‘용모 등 신체조건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로 판단한 바 있다. 인권위는 당시 대표이사에게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해당 직원에게 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