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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1월 11일(水)
과학적 밝음 ‘日’과 인문적 밝음 ‘月’ 공존해야 진정한 ‘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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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안은진 기자 eun0322@

김정탁의 장자 이야기 - (21) 장자의 ‘明’이 의미하는 것

‘천자문’은 하늘천 따지, 가물현 누를황으로 시작한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이 사자성어는 하늘은 ‘현’하고 땅은 ‘황’하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먼저 하늘을 쳐다보자. 그러면 동쪽 하늘과 서쪽 하늘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똑같이 푸르러서이다. 이것이 가물거려 경계가 소멸된다는 ‘현’의 상태이다. 이에 반해 땅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숲도 있어 자연히 구분이 생겨난다. 구분이 생겨나기에 누렇게 드러나는 ‘황’의 상태이다. 천자문이 서양의 자연과학인 천도(天道), 인문과학인 인도(人道), 사회과학인 치도(治道)의 대강을 설명한 텍스트인 점을 고려하면 동아시아 사상은 현과 황의 개념을 통해 가물거림과 드러남, 경계의 소멸과 생성이 그 뼈대를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노자는 현(玄)을 자신의 사상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설정했다. ‘도덕경’ 1장은 “도를 도라고 말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로 시작하는데 마지막은 “유(有)/무(無) 양자는 같은 데서 나와 이름만 달리할 뿐이어서 이 같음을 일컬어 현(玄)이라 한다. 현(玄)하고 또 현(玄)하니 여러 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이다”로 끝난다. 즉 유/무가 이름만 다를 뿐이지 사실상 같은 것이어서 이를 현이라 규정했는데 노자는 이 현을 도의 성격이라고 파악했다. 따라서 노자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현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노자의 현 개념도 경계가 소멸되어 가물거린다는 ‘천자문’의 현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비해 유가는 상대적으로 황(黃)하다. 모든 걸 드러내려 해서이다. 사회구성원을 구분하는 데서도 이런 경향이 잘 나타난다. 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인민(人民), 즉 성안에 사는 지배계층인 ‘인’과 성 밖에 사는 피지배계층인 ‘민’으로 구분해 왔다.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받들었던 조선에선 이런 구분이 보다 확대된다. ‘인’에 해당하는 사(士)를 재조(在朝)와 재야(在野)로, 또 재조는 당상관과 당하관으로 구분하는데 이것도 모자라 옷 색깔로 차별화한다. 그래서 당상관은 붉은색 옷을, 당하관은 푸른색 옷을 입는다. 또 ‘민’은 하는 일에 따라 농(農)·공(工)·상(商)으로 세분화한다. 물론 그 아래에는 천민이 있다. 이처럼 모든 걸 드러내려고 하는 게 유가의 입장이다.

그런데 유가사상을 서구사상과 비교하면 결코 ‘황’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현’한 편이다. 그만큼 서구사상은 모든 걸 드러내려는 황의 사유방식에 철저히 입각해 있다. 이런 경향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사회에 들어오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그 결과 세상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과학이 크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고, 합리적 통치시스템인 법치국가가 뿌리내린 것도 사실이다. 사실 서구가 세상의 원리를 규명하는 도학(道學)이 동아시아에 비해 늦었음에도 그것의 응용에 해당하는 기학(器學)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래서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시기에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까지 등장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현(玄)이란 단어는 장자서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장자가 직접 쓴 ‘내편’조차 인간세(人間世)에서 딱 한 번 등장한다. 그것도 ‘현명(玄冥)’이란 가상의 인물을 통해서. 대신 ‘밝을’ 명(明) 개념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장자 사상의 진수를 담는다는 제물론(齊物論), 그러면서 가장 난해하다는 제물론도 이명(以明)을 중심으로 그 본론이 구성되면서 도입부와 매듭부가 앞뒤로 연결된다. 도입부는 하늘의 퉁소 소리·대지의 퉁소 소리·인간의 퉁소 소리를 소개하는 내용이다.(2016년 3월 23일자 22면 11회 참조) 또 매듭부는 앞으로 소개될 호접몽(胡蝶夢), 즉 호랑나비 꿈이다. 그리고 도입부와 매듭부 사이에는 조삼모사를 비롯해서 다양한 내용이 소개되는데 이 내용은 결국 이명(以明)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것들이다.

흔히들 명(明)은 밝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밝음은 우리가 아는 밝음과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명’이란 글자를 파자할 필요가 있다. 파자하면 명은 ‘해(日)’와 ‘달(月)’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명(明)은 해의 밝음과 달의 밝음을 동시에 지닌다. 우리가 아는 밝음은 해의 밝음뿐이다. 해의 밝음은 세상을 환히 비추기에 모든 걸 명명백백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그림자도 만들어내므로 해의 밝음에는 밝음과 어둠이 항상 공존한다. 이런 밝음과 어둠의 공존은 ‘네/아니오’ 식 이항대립으로 대표되는 서구인의 사고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나아가 이런 사고방식은 분석적 내지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해의 밝음이 ‘과학적 분석력’과 긴밀히 연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달의 밝음은 어슴푸레한 밝음이다. 그래서 해의 밝음처럼 환하지 못하다. 이런 어슴푸레한 밝음 하에서 대상을 인식하려면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희미한 밝음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드러내려면 상상력을 통해서 세부, 즉 디테일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메움을 인문(人文)의 힘이라고 본다. 그래서 달의 밝음은 ‘인문적 상상력’과 긴밀히 연결된다. 이처럼 해의 밝음을 통해 과학적 분석력을, 달의 밝음을 통해 인문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밖으론 세상을, 안으로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이것이 동아시아인이 그려왔던 문명관이다. 서양의 문명 개념인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은 어쩐지 해의 밝음에만 의존한다는 느낌이 든다.

문명(文明)은 ‘문(文)’에 의해 밝아진다는‘(明)’ 뜻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문자의 역할이 인류사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사실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으뜸의 역할은 문자가 했다. 또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중요했던 발명품도 활자이다.(이런 사실은 1999년이 끝나갈 무렵 전 세계 지성을 상대로 한 서방 언론의 몇몇 조사에서 예외 없이 드러났다) 앞으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발명품은 디지털언어일 것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문자·활자·디지털언어는 밝음(明)의 핵심적인 원인자로 작용해 왔고, 또 작용할 것이다. 단 해의 밝음을 넘어 달의 밝음까지 품을 때 이런 역할이 보다 의미 있게 될 것이다. 베토벤이 달빛 소나타인 월광곡(月光曲)을 작곡한 것도 이런 필요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커뮤니케이션과 관련지어 볼 때도 해의 밝음과 달의 밝음의 공존은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의 일차적 기능은 머릿속 생각을 상대방에게 객관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이 작업은 해의 밝음을 통한 과학적 분석력이 전제될 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게 커뮤니케이션의 전부는 아니다. 해의 밝음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은 옳고 그름, 즉 시비를 가리는 것으로 왕왕 끝나서이다. 그런데 이런 식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는 대표적 인물들이 소피스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과학적 분석력의 소산인 논리를 완벽히 구사하기 위해 애쓴다. 오늘날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걸 업으로 하는 법조인들은 현대판 소피스트들일 것이다. 이들이 목표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선 결국 승자와 패자로 갈리기 마련이어서 이들에게 소통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장자가 혜시(惠施)와 절친이면서 장자서 전체를 통해 그를 조롱했던 건 동아시아판 소피스트인 명가(名家)를 대표하는 인물이어서이다. 혜시는 해의 밝음을 통해 시비를 가리는 게 유일한 그의 커뮤니케이션 목표였다. 장자는 이럴 경우 소통을 이루기 힘들다고 느끼고 달의 밝음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보았다. 어쩌면 해의 밝음이 남성적이라면 달의 밝음은 여성적이고, 해의 밝음이 굳세다면 달의 밝음은 유연하다. 그리고 해의 밝음이 ‘머리와 머리 간(brain-to-brain)’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하면 달의 밝음은 ‘가슴과 가슴 간(heart-to-heart)’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한다. 이 두 개는 서로 다른 입장이므로 보완되어야만 완벽해질 수 있다. 이에 장자는 이명(以明), 즉 해의 밝음과 달의 밝음을 통해 시비를 잠재울 때 가장 이상적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제물론에선 본론의 주요 대목들을 마무리하는 개념으로 ‘이명’이 세 차례나 등장한다. 그만큼 제물론은 밝음(明)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가 “묵가가 그르다 한 걸 유가에선 옳다고 하고, 유가가 옳다고 한 걸 묵가에선 그르다고 하려면 ‘이명(以明)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 만한 게 없다”에서이다. (2016년 7월 20일자 22면 15회 참조) 두 번째가 “이것도 무궁한 변화 중 하나이고, 저것도 무궁한 변화 중 하나이기에 ‘이명(以明)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 만한 게 없다고 말한다”에서이다. (2016년 8월 17일자 26면 16회 참조) 세 번째가 “성인은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평상시 한결같은 상태에 머무는데 이것이 ‘이명(以明)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다”에서이다. (2016년 12월 7일자 26면 20회 참조)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이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대학(大學)’의 기본 틀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의 화목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커뮤니케이션만한 게 없다. 그렇지만 남성적이고 굳센 해의 밝음만으론 안 된다. 이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은 시비를 가리는 데 효과적일 뿐이다. 부부 사이에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면 화목은커녕 관계 자체가 깨질 수 있다. 그래서 여성적이고 유연한 달의 밝음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큰 소리와 상대를 윽박지르는 커뮤니케이션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최순실 국회청문회에서 검사 출신 한 야당의원의 역할이 돋보였던 것도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한 결과로 보인다. (문화일보 11월 9일자 24면 19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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