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일보 회의실에 모인 이광형(오른쪽부터) 카이스트 교수, 이주호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장, 송경진 세계경제연구원장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정부 정책과 교육 혁신, 규제 개혁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전문가 좌담 <끝>
참석자 = 이주호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장
이광형 카이스트 교수
송경진 세계경제연구원장
[사회 = 박양수 부장]
새해 들어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50주년을 맞아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7’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5가지 키워드를 주제로 전 세계 4000여 개 업체가 참가해 미래 혁신 기술을 선보였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융합혁신이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자율주행 자동차와 드론, 3D 프린터가 현실이 돼버린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벼락 치듯이 도래한 4차 산업혁명이 경제불황과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4차 산업혁명의 의미, 혁명의 미래에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기 위해 시리즈 ‘4차 산업혁명에 미래 달렸다’를 정리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박양수 부장 = ICT를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에게 4차 산업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이주호 위원장 = 최근 미국 사회의 정치적 불안정도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제조업 생산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직업이 대폭 늘어나자 제조업에 종사하던 백인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정치적 불만이 가중됐다. 기술은 세계화를 가속화한다. 기술 변화가 산업 구조를 완전히 바꾸자 부의 편중이 심화하고,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극심하게 갈려 갈등이 커진 것이다. 아웃사이더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배경에도 이러한 기술 변화와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세계화에 대한 중산층의 반감이 깔려 있다고 본다.
△이광형 교수 = 기술 발전은 경제구조를 바꾸는 만큼 필연적으로 부의 편중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21세기 디지털 경제에선 안정적이고 장기적이면서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 고용 형태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여기선 소수의 운 좋은 사람만 안정적인 수준의 소득과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다수의 노동자는 이전보다 훨씬 나쁜 상황에 처하는 등 경제적 불평등 상태를 악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노동자를 보호하며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정책이 필요해질 것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힐튼 맥린 호텔에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을 탑재한 고객 안내 서비스 로봇 코니가 관광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료사진
△송경진 원장 = 자기 이익이 침해당할 때 그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려는 사회적 힘이 작용한다. 선거를 예로 들자면 사회·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이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 개연성이 높지만 이른바 낙오자의 경우 투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당선된 상황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박 부장 = 경제적 불황과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의 하나로 4차 산업혁명이 주목받고 있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려면 정부 정책에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것 아닌가.
△이 교수 = 지능형 기계가 보편화되는 디지털 사회에선 세계 경제를 포함해 많은 것이 바뀐다. 궁극적으론 소수의 거대한 승자와 엄청나게 많은 패자로 나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제도가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노동법과 복지제도 개혁 등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하면 기술 발전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의 세습이 강하고, 현재의 정규직이 일자리를 독점하는 상황이 고착화한다면 종말은 뻔한 것이다.
△이 위원장 = 저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미국 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대응 방법은 사회정책보다는 교육을 통해 기술 변화가 요구하는 인재를 많이 양성해 모두가 잘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은 양극화돼 있다. 공립학교의 경우 ‘스쿨 디스트릭트(학군)’가 2만 개 정도 되는데, 재정을 확보하는 방식이 전부 다르다. 못사는 곳과 잘사는 디스트릭트 간의 교육 격차가 크다. 기술 발전 시기에 부잣집 아이들은 변화 상황을 잘 준비해서 교육을 받아 좋은 직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지만, 못사는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공교육에선 차별화가 없다. 물론 사교육 문제가 있지만. 핵심은 기술 변화에 어떻게 잘 대응하느냐인데, 여기에 부응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에도 성패가 갈린다고 본다.
△송 원장 =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됐으며 AI 분야는 최근 몇 년 동안 몰라볼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활용 등에 관한 규제로 인해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실 우리 사회가 3차 산업혁명까지는 잘 해왔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 다른 나라에 뒤처지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고 본다.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면 새로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개인정보 활용에 관해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박 부장 =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창업 환경을 정부가 어떻게 조성해주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이 위원장 = 분배는 성장과 함께 이뤄진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위너(승자)가 많아지면 경제가 빨리 성장하고 분배도 잘 이뤄진다. 따라서 얼마나 위너를 많이 배출하느냐인데, 쉽게 말해 창업 생태계의 조성이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마이크로 멀티내셔널(소규모 글로벌 기업)’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네트워크를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새로운 상품을 다양하게 만들어, 전 세계에 팔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창업 환경도 매우 좋아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창업 환경 조성 등이 지나치게 관 주도로 가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부대로 진행하다 보니 충돌이 자주 일어난다. 정부 주도로 경제개발을 할 때와 4차 산업혁명을 본격화해야 할 현 상황에서 정부의 방식은 변한 게 전혀 없다. 관 주도 방식에 대한 개혁이 안 되면 우울한 미래가 예상된다.
△이 교수 =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돈을 많이 투자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제도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창업하겠다고 하면 찬성하는 집이 한 곳도 없다. 그만큼 우리의 창업 환경이 좋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이라 내 자식이 창업하는 데는 반대하면서 다른 청년들에게 창업하라고 권할 순 없는 노릇이다. 창업 현장에는 아직도 음성적으로 연대보증이 존재한다. 장기적으로 연대보증을 금지해야 한다. 창업에 따른 위험 부담을 개인에게 지우니 겁이 나서 아무도 창업을 하려 하지 않는다. 개인에게 부담을 집중시키지 말고, 사회 전체가 리스크를 분담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이 위원장 = 우리나라에서 벤처캐피털(VC) 제도의 활성화가 잘 되지 않는 이유의 하나는 소위 관치금융 때문이다. 관료 중심으로 운영하게 되면 리스크를 절대 지려고 하지 않는다. 관료들은 연구·개발(R&D) 프로젝트 관리를 하더라도 과학자들에게 95%의 성공률을 요구한다. 이것은 과학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과거에 우리가 다른 나라를 쫓아갈 때는 정부 주도로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더라도 효과가 많이 났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과 기술로 상품을 만드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관치 형태가 맞지 않는다. 정부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만들고, 창업 초기 기업들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risk, high-return)’을 해야 하는데 관치가 곳곳에서 이러한 혁신을 죽이고 있다. 추격형 경제 구조일 때는 효율적이었던 관료제도가 혁신 생태계에 들어와선 거꾸로 생태계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관치 중심의 생태계를 혁신 중심의 생태계로 만들려면, 정부를 완전히 재창조해야 한다.
△송 원장 =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AI를 인간과 사회에 유익하게 사용하자는 취지의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보고서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혁신 업체들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를 도와줘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주도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이 위원장 = 그것이 바로 소위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오픈 이노베이션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인재들이 45%(미국인 제외) 정도를 차지한다. 트럼프는 이들에 대해 벽을 치려고 하는 것이다. 취임 이후에 설마 그렇게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렇게까지 간다면 진짜 큰일이다.
△박 부장 = 4차 산업혁명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점에 동의하지만 지나친 관심이나 과대포장, 반대로 무관심이나 평가절하 자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위원장 = 제약 분야를 예로 들겠다. 제약도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한 분야인데, 제약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한다. 앞으로 DNA 분석을 통해서 질병별로 대응책이 나오게 되는데, 일단 질병마다 정밀화학의 플랫폼이 완성되고 나면 특허로 보호 받기 때문에 다른 해외 업체에서 침범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몇 가지의 질병, 몇 개의 플랫폼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10년 내에 제약업계 판도가 결정된다. 이게 결정되고 나면 아무도 그 영역에 진입하지 못한다. 그만큼 매우 시급한 문제인데도 우리나라는 질병별 플랫폼을 개발할 때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이 적용된다. 무엇이 가능한지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다 불가능하다. 가령 질병의 종류가 2000개 있다고 하면 8개에 대해서만 허가하는 식이다. 네거티브로 규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미지의 것에 대해선 현재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보니 제약사들이 진입을 못 한다. 빨리 네거티브로 바꿔줘야 한다. 10년 안에 끝나는 게임이다.
△이 교수 = 10년이 아니라 앞으로 3∼4년이면 끝장이 날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정비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생산 체계를 데이터와 AI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재구성 과정의 기반에 빅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빅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다 저촉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은 포지티브 규제로 해서 사용 가능한 개인정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송 원장 = 당면한 이슈 중의 하나는 사이버 보안의 강화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이나 AI 등 기술 발전에 따라 보안 위협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보안의 가장 보편적인 약점은 기술에 있지 않고 결국 사람에게 있다. 앞으로는 모든 게 컴퓨터로 이뤄질 것이고, 클라우드 컴퓨팅이 보편화할 것인데 사이버 공격에 더 많이 노출될 게 뻔하다. 핀테크로 대표되는 모바일 결제 등을 대상으로 저지르거나 국가적인 사회기반시설을 공격하는 사이버 범죄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사이버 보안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며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한다.
△박 부장 = 디지털 시대에는 창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선 보유한 특허권을 오픈 소스화해 기반산업 분야의 R&D를 가속화하는 한편 연관 산업의 기업 간 전략적 제휴를 확대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 교수 = 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R&D에 투자해야 하는 돈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에 경쟁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기술의 융복합이 가속화되는 추세 속에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을 이끌어내려면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에 있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할 만큼 중요하다.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산학협력의 비율이 10년 전부터 줄어들고 있다. 첫째 원인은 특허권에 대한 분쟁에 있다. 한국 기업들은 우리가 돈을 줘서 일하니까 특허권은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한다. 미국 기업들은 특허권을 대학에 주고 사용권만 가져간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과 일할 때는 미국식으로 하고, 한국 대학에 연구비를 줄 때는 특허권과 사용권을 자기들이 모두 가져간다. 어느 게 맞을까. 대기업이 특허권을 다 가져가고 나면, 대학은 더 이상 연구가 불가능하다. 권리를 다 줘버렸기 때문에 이걸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연구는 특허법에 걸리는 것이다. 미국은 지혜와 경험으로 이런 사실을 깨닫고 특허권을 대학에 준다. 그래서 대학은 기술을 계속 축적할 수 있고, 발전이 이뤄진다.
△이 위원장 = 정부가 4차 산업혁명에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다른 산업에 지원하던 걸 줄여서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산업을 죽여가면서 돈을 끌어올 게 아니라 제도부터 바꿔줘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관점에서 보면 지금 정부는 파편화돼 있고 분절돼 있다. 새로운 산업이나 플랫폼, 원천기술을 개발해서 신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4차 산업이기 때문에 지식경제와 산업경제가 결합돼야 한다. 그래야 연구소에서 나온 새로운 발견을 바로 산업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고등교육은 교육부, 출연연구기관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이런 체제로 운영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영국은 기업혁신기술부(BIS)라고 해서 대학과 연구, 산업 등에 걸친 이노베이션 프로세스 전반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있다. 우리 말로 하면 혁신전략부, 혁신기획부와 같은 부처다. 4차 산업혁명에 정말 필요한 혁신 생태계는 한 부처에서 담당하고 관리해야 한다
△박 부장 =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시장의 변화가 생긴다면 교육 시스템이나 교육 기능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텐데 앞으로의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이 위원장 = 제가 사실 교육부를 오래 맡았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을 포함해 72개국의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PISA)’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가 항상 ‘톱 5’ 안에 든다. PISA 성적으로 잘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 소프트 스킬, 즉 4C(creativity, critical thinking, communication, collaboration)다. 어떻게 보면 이런 요소가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PISA에서 측정되는 건 인지능력뿐이다. 우리나라 인재들은 실행 역량은 뛰어난데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 어렸을 때부터 4C, 소프트 스킬 등을 길러야 한다. 제가 연구하면서 깨달은 건 프로젝트 학습의 중요성이다. 지금까지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줘 답을 내게 했다. 프로젝트 학습은 질문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에서 무얼 할지 직접 정하고, 그걸 해결하도록 한다. 마지막에는 프레젠테이션까지 하게 한다.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학교인 하이텍하이스쿨, 뉴텍하이스쿨 등이 전부 프로젝트 학습을 하고 있다. 뉴텍은 현재 미국 전역에 180개가량 있는데, 이 학교에선 고교 3년간 프로젝트 학습만 한다.
몇 달 전에 갔던 뉴욕의 에버뉴월드스쿨이란 데선 3세 때부터 12학년까지 내내 프로젝트 학습만 한다. 12학년 교실에 가봤더니 학생들이 엘리베이터 작동 코딩을 짜고 있더라.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인코딩을 직접 짜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프로젝트만 해온 아이들과 정답 찾기만 해온 아이들 사이에 이래서는 경쟁이 정말 안 되겠다 싶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장기적으로는 바꿔야 한다고 본다.
△송 원장 = 학부모들도 바뀌어야 한다. 코딩 의무화라고 하자마자 강남 학부모들이 코딩 과외교사부터 찾더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것이다. 앞으로 아이들이 국제 경쟁력에서 뒤처질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게 현실이다.
△이 위원장 =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속도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성과 민첩성, 협업적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민첩성도 강조했다. 플랫폼은 일단 누군가 선점하고 나면 절대 못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인재도 괜찮고 인프라도 좋기 때문에 정부만 민첩해지면 되는데, 오히려 혁신을 죽이고 있는 게 문제다. 대학도 과거처럼 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기관으로 보는 건 난센스다. 대학은 이미 혁신 기관이고, 혁신 생태계에서 허브 역할을 한다.
△이 교수 = 코딩 교육이 왜 필요한지 얘기하겠다. 첫째, 미래 4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우리를 끌고 가는 사회다. 여기서 살려면 기계를 이해하고, 기계와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기계를 이해하는 방법은 코딩을 배우는 것이다. 기계가 주도하는 사회에서 기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운 창업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세계를 주름잡는 기업의 모든 창업자는 기계를 아는 사람들이다. 기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 두 번째, 프로젝트라는 건 뭔가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레고 같은 것도 비슷한데 이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컴퓨터 안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코딩밖에 없다.
△이 위원장 = 결국 웬만한 프로젝트 학습들을 다 코딩으로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구글 같은 기업들이 나오려면 코딩 교육을 해야만 한다. 지금 네이버, 넥슨, NC 등 큰 회사 창업자들은 전부 이런 코딩에 빠져서 놀던 사람들이다. 기계가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창업이 불가능하다
△송 원장 =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우리가 설정하는 게 아니라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을 설계하는 사람이 인간과 기계 간의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주도권을 잡는 사람은 이 설계를 하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계속 따라가는 것밖에 못 하는 것이다. 이들 기업과 창업자들이 플랫폼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페이스북, 구글 같은 이런 기업에 도전할 수가 없다. 우버는 택시가 하나도 없는데 택시회사를 만든다. 법으로 만드는 게 아니고, 철학자·사회학자가 만드는 게 아니고 ‘엔지니어’가 만든다.
△박 부장 =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다른 나라보다 뒤처지는 이유가 뭘까.
△이 위원장 = 벤처기업이 좋은 기술을 갖고 있으면 대기업이 “와서 시연해봐라” 해놓고 몇 번 회의와 토론을 하고 나면 대기업으로 벤처기술이 그냥 넘어가 버린다. 그래서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협력 관계가 안된다. 뺏길까봐 못 만난다. 미국에선 ‘논 디스클로저 어그리먼트’라고 해서, 이런 회의를 할 때 동의서를 작성하게 한다. 회의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관행들이 실리콘밸리에 잘 돼 있다. 우리는 이게 안 돼 있다 보니 대기업·중소기업 간에 혁신 협력이 잘 안 된다.
△송 원장 = PISA 성적이 나오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기사를 쓴다. 그러면 전 국민이 우리나라 교육 수준이 높다는 착각에 빠진다. 제가 볼 땐 어떤 면에서는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망각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있는 것 같다. 수년 전에 OECD 교육담당 국장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 우리나라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더라. 한국은 무슨 빵 만드는 데도 대학을 가야 하느냐고, 그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사회냐 라는 말을 하더라. 앞으로 디지털 격차로 인한 계층 간 갈등, 세대 간 갈등이 굉장히 커질 것이라고 본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스마트폰을 잘 못 쓰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 발전이 앞으로 급속화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본다.
△박 부장 =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잘 타면 유토피아 사회가 기대되지만, 신기술이 창출하는 부의 효과가 갈수록 소수의 사람에게 돌아감에 따라 실업률은 더 높아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은 양날의 칼인 것 같다.
△이 교수 = 물론 기술 발전을 그대로 놔두면 부의 편중이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저는 로봇세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인간이 내던 세금을 기계는 내지 않는다.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들고, 실업자는 늘어난다. 그러면 직장 가진 사람들의 조세부담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가 유지 불가능하게 된다. 결국 기계에 세금을 매겨야 하는데, 어떻게 매기느냐가 문제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자리에서 일하는 기계는 세금을 내도록 하는 등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근로시간이 줄어도 임금이 유지되도록 하고 실업자도 보호받게 해야 유토피아가 된다. 로봇에게 일을 시키고 로봇에게 세금을 받으면 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일자리가 늘 수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로봇세를 매기는 식으로 사회를 재편해나가면 기술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꿈의 사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송 원장 = 미래의 로봇세를 얘기하는 것이 전혀 엉뚱한 주제는 아니라고 본다. 에어비앤비나 우버 같은 경우는 소비자와 공급자가 직거래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래서 수입 신고가 안 되다 보니 세무 당국이 세원을 파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런 신산업 분야를 좀 들여다본다면 세원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공유경제에 종사하는 기업이나 근로자들은 세금 신고를 하지 않고, 기업 입장에서도 고용보험이니 국민연금 등을 안 내도 되지 않나. 이런 곳도 들여다볼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이 위원장 = 분명히 미래에 일자리 문제도 나오겠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혁신 생태계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경기 침체를 살릴 수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뿐이다. 혁신 생태계를 살려서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에 주도 국가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게 안 돼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분배 문제도 결국 성장 엔진이 멈춰서 생긴 것이다. 당장 몇 년 안에 빨리 해결해야 하는 건 관치를 바꾸고, 규제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고,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게 몇 년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기에 국제사회의 낙오자가 된다. 앞으로 헌정 질서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의 문제도 전략적으로 빨리 해결해야 한다.
yspark@, 정리 =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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