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 것’을 멈추지 마라… 땅에 묻히는 그날까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헤닝 멘켈은 “추운 겨울밤, 별들을 바라보며 인생의 의미와 진행에 대해 자문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존재”라고 했다. 자료사진

사람으로 산다는 것 /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발란더 형사’ 시리즈로 유명한 스릴러 문학의 거장인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1948∼2015)은 2014년 예순여섯 살에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 그때 그는 자신이 여덟 살이던 해 겨울, 마을 호수에 빠져 익사한 소녀의 모습과 함께 죽음을 떠올렸다. 자율 소방대원들이 사용한 갈고리가 달린 막대기에 걸려 나온 경직된 소녀의 시신을 멀리서 봤을 때 느꼈던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공포는 다시 잡지에서 읽은 모래 늪에 빠진 사내 이야기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졌다.

이야기 속에서 카키색 유니폼을 입고 어깨에 총을 멘 탐험가는 모래 늪에 발을 디디자마자 꼼작할 수 없이 빠져버렸다. 모래에 빠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만 모래는 남자를 삼켜, 그의 숨을 끊어버렸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그도 카키색 유니폼의 사내처럼 버둥거렸다. 그는 엄습하는 공포 속에서도 공포가 자신의 저항력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완전히 마비시키지 않도록 버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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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오래지 않아 깊은 모래 늪에서 기어 나와 자신에게 다가온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전을 받아들인 그가 한 일은 자기 삶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삶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찾으려 했다. 의미있는 삶은 무엇인지, 자신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었는지. 그 기준에 비춰 자신은 제대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자기 점검이었던 것 같다. 전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고, 수천만 부가 팔린 만켈의 생애 마지막 에세이집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 기록이다.

한 시대를 대표한 작가이자, 30대에 모잠비크에 극단을 세운 뒤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머물며 불평등한 세계의 현실과 고통을 알리는 일에 몰두했던 ‘행동하는 지성’이 삶의 마지막 순간 온 힘을 다해, 전 생애를 돌아보며 찾아낸 삶에 대한 답을 명징하게 전하고 있으니 책을 펴든 독자로선 감사할 뿐이다.

그가 자기 삶의 출발이라고 기억해낸 시점은 1957년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이다. 아홉 살이던 그는 등굣길에 충격적인 각성을 하게 된다. 제일 친한 친구가 아파 혼자 학교에 가게 된 그 날, “나는 나일 뿐. 다른 누구도 아니다. 나는 나다”라는 문장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한다. 새롭고 충격적인 통찰에 아홉 살 만켈은 오랫동안 추위 속에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 순간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된다. 위대한 작가가 될 사람의 어린 시절은 좀 다른 듯하다.

이 시점에서 시작해 만켈은 삶의 중요한 순간순간과 자기가 관통해온 시대의 중요한 지점들을 성찰한다. 소설과 연극으로 사회 불평등과 부조리를 고발했던 만켈이지만 그는 숱한 개인적이고 세계적 재앙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만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삶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라고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 삶에 대한 의지와 이성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그는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힘의 원천은 ‘삶에 대한 애착과 생의 기쁨’이라고 했다. 이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혼자 앉아 놀이와 자기만의 생각에 완전히 빠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아이와 같은 상태가 생의 생생한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라고 했다. 만켈은 생의 기쁨이 생생한 호기심, 지식욕과 결합할 때 우리는 인간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했다.

“행복이라는 말이 감정적이고 상업적인 방식으로 무가치하게 되어버린 후 약간 역겨운 단어가 되어버리긴 했어도 우리는 모두 번듯한 삶에 대한 애착 위에 세워진 생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좇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당신 삶에서 삶에 온전히 집중해 삶을 생생하게 만든 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이와 함께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켈은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우리의 공통점이다”는 그는 “추운 겨울밤, 별들을 바라보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자문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인간의 얼굴은 질문으로 가득할 때 가장 진실하다”고 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질문을 던지되 어떤 사람은 어린 나이에 질문을 그만두고, 어떤 사람은 묻기를 포기하고 더 이상 알고 싶거나 궁금한 것이 없는 듯이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고는 일상을 이어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늙어서까지 고집스럽게 묻기를 계속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삶에서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생각들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의지라고 했다. 좋은 삶이란 다른 사람들이 진실이라 말하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나만의 길을 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작가인 그에겐 그 길은 당연히 글쓰기였다. “중요한 이야기는 각성을 다룬다. 개인의 각성이든 아니면 전체 사회의 각성이든, 혁명에 의한 각성이든, 자연재해에 의한 각성이든 간에. 글을 쓴다는 일은 내가 가진 손전등으로 어두운 구석들을 비추고 전력을 다해 다른 이들이 숨기려는 것을 밝히는 일이어야 한다.”

이 책 또한 그의 각성이며 그는 자신의 각성을 통해 우리 모두의 각성을 요구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