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代 잇는 ‘예술 가문’… “아버지는 클라리넷 연주자… 아들·딸도 연극의 길 걸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도중에 배우 이호성(오른쪽)씨가 찾아와 “선생님께 세배를 드리러 왔다”고 했다. 연극으로 연을 맺은 사제의 신년 정담이 듣는 이에게도 참 훈훈했다. 신창섭 기자

“나도 음악이 하고 싶었어요.” 80대 연극인 임영웅 연출가는 어렸을 때의 꿈을 내비쳤다. 그는 3세 때 어머니를,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컸다. 그의 아버지는 ‘동양의 베니 굿맨’이라 불리며 일본, 중국에서 재즈 밴드를 이끌던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아버지 형제는 다섯이었는데 모두 음악을 했다. 그의 숙부 중 한 분은 서울예고를 만들고 KBS교향악단을 창설한 지휘자 임원식 선생이었다. 자식들이 음악하는 것에 질린 그의 할아버지는 손자가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갔으면 했다.

그 다른 길이 연극이 된 것은, 그를 맡아 기르던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할머니가 어린 그를 데리고 연극과 영화, 악극을 자주 보러 다녔기 때문이다.

휘문중에 들어간 그는 국어교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국어를 잘하니 연극을 한 번 해볼래.” 그 교사는 ‘얄개전’으로 유명한 소설가 조흔파 선생이었다. 그는 연극반에 들어가 ‘마의태자’에서 대신 역할을 경험한다.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명동의 시공관극장에 올린 무대였다.

“그때가 1940년대 후반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배우들에게 이야기하곤 하지요. 난 해방 직후에 명동극장에 서 본 배우라고…, 하하!”

그는 그렇게 연극과 인연을 맺어 평생을 함께했다. 그러나 그는 딸과 아들이 뒤를 이어서 연극 무대에서 활약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딸 수진(53) 씨는 산울림 극장장으로, 아들 수현(51) 씨는 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오는 15일까지 상연하는 ‘산울림 편지콘서트’는 수진 씨가 기획을, 수현 씨가 연출을 한 작품이다.

“아이들에게 내 뒤를 이어달라고 한 적 없어요. 딸은 그림 공부를 해서 서울대 미대를 나왔어요. 연극 포스터나 전단을 맡길 생각이 있었는데, 대학 나올 때까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극장장을 하고 있으니….”

서울여대 교수인 수현 씨는 2012년 산울림 소극장에서 연출 데뷔한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아들의 연출이 못마땅한 점은 없냐고 묻자, 그는 손을 크게 내저으며 “자기 나름의 길이 있는 것이니까요”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수진, 수현 씨가 이 나름의 길을 얼마나 잘 개척하느냐에 ‘연극 명문가’ 탄생 여부가 달려 있는 셈이다. 조실부모한 그가 80이 넘어서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며 자녀들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것은, 신의 아름다운 섭리라고나 할까.


△1934년 서울 출생 △휘문중고·서라벌예술대 연극영화과 졸업 △조선일보 등 기자 △동아방송·KBS 프로듀서 △극단 산울림 창단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초대회장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대상 및 작품상, 동아연극상 대상, 동랑연극상, 한국백상예술대상 대상,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등 수상 △금관문화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