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화법’ 전환한 潘… 민감 현안엔 ‘모호’ 여전

“정치교체” 등 과감해진 표현
위안부 문제 등 에둘러 말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2일 인천공항 입국장 기자회견에서 ‘외교적’ 어투 대신 ‘직설적’ 화법을 내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쪽의 ‘정권교체’ 프레임에 맞서 ‘정치교체’를 내세우면서 ‘대권 도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고, 박근혜 대통령과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정치권의 ‘패권주의’와 ‘기득권’을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촛불로 대변되던 ‘광장 민심’과 ‘대통합’을 강조하며 지지 기반의 외연 확대를 시도했다. 하지만 일부 민감한 외교현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비켜 가는 애매한 화법을 여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재직시절 예민한 현안에 대한 답변을 피해 가는 바람에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기름장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까지 얻었지만 이날 회견에서는 정치적 수사를 과감하게 쏟아냈다. 반 전 총장은 “미래를 위해 청년의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 “저의 한 몸을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히는 등 대권을 향한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준비한 연설문을 읽고 난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때에는 ‘박연차 23만 달러 수수 의혹’,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 제한 관련 유엔협약’ 내용 등 현안들에 대해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또 항간에 떠도는 비리 의혹 등을 거론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에 헌신하고자 하는 내 진정성과 명예, 유엔의 이상까지 짓밟는 이런 행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예민한 현안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핵심을 비켜 가는 태도를 보였다.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의 핵심 의도를 벗어나는 답변을 했다. 대신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이 거출한 10억 엔이 소녀상 철거와 연계된 것이라면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로 에둘러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반 전 총장은 반(半)만 보여줬다”면서 “특히 내가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반기문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어야 했는데 그것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