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체육계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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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체육부장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 법적 처리가 탄력을 받고 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9일 열린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7차 청문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인정했다. 그리고 12일 최순실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구속했다.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윗선’으로 지목받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장관을 소환,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중대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한 문화예술계 인사 1만 명의 명단을 작성·관리하고, 정부 지원을 배제했다는 건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체육계 주변에서도 블랙리스트 의혹이 나돌고 있다. 체육계 블랙리스트의 명단 등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황상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다. 전명규 전 부회장은 한국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의 ‘대부’로 꼽힌다. 1987년 당시 불모지였던 쇼트트랙에 뛰어들어 대표팀을 구성했고, 코치와 감독으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4차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11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조련했다. 국가대표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에도 빙상연맹의 전무, 부회장을 맡으면서 한국 쇼트트랙이 세계 최강을 유지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쇼트트랙=대한민국’이란 공식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그런데 2014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고, 전명규 당시 부회장이 타깃이 됐다. 전명규 전 부회장은 부조리, 파벌 싸움의 장본인으로 지목됐으며 문체부는 그를 겨냥해 빙상연맹 감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전명규 전 부회장의 가장 큰 장점은 카리스마다. 그의 카리스마는 소신에서 비롯된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전명규 전 부회장이 남아 있는 한 빙상연맹을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해 문체부가 그를 몰아냈다는 분석이 체육계에선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시 체육행정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구속된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소관이었다. 개인은 물론 경기단체에 대한 압박도 심했다. 문체부의 뜻을 거스른 경기단체, 임원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경기단체의 운영·훈련비 등은 대부분 국고에 의존하기에 문체부의 예산 지원 중단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체육계 블랙리스트는 특히 최순실 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 씨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등 체육계 주변에서 이권을 챙기려 한 혐의와 맞물린다. 전명규 전 부회장은 물론 김진선, 조양호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도 김종 전 차관이 취임한 뒤 물러났다. 체육계 블랙리스트를 파헤쳐야 하는 이유다.

j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