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인물 탐구>“盧는 내 운명”… 호남과 애증 반복하는 ‘부산 사나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출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자신의 대담 에세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① 문재인

‘노무현’ 서 비롯된 정치인생
인권변호사·靑활동도 함께

부산에 강렬한 애정과 자긍심
정치 입문뒤 他지역 갈등요인

親盧 이어 親文패권주의 논란
최근 ‘개헌저지 문건’ 파동도

盧·文 이어진 ‘호남 홀대론’
“정권교체의 동반자” 달래기

언제나 버거운 짐 ‘종북논란’
올핸 ‘송민순 회고록’ 홍역

“권력의지 빈약” 평가 많지만
“최근엔 강한 의지” 시각 많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말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 같은 만남, 고향을 특히나 사랑하는 ‘부산 사나이’, 가난한 이들과 마주하게 했던 변호사 경험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통합이나 평화 이미지보다는 대립과 갈등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도 이런 인연에서 비롯된다. 그가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상식과 정의’라고 규정하고 ‘적폐 청산’이나 ‘주류 대청소’란 슬로건을 내놓는 것도, ‘패권주의’나 ‘종북’ 논란에 시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 전 대표는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공화국,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 국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국민성장, 이것이야말로 ‘상식과 정의’가 구체적으로 구현돼야 할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일부 국민은 이런 그에게 열광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다른 국민은 그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다소 격한 표현 속에서 깊은 우려와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문재인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따라 문 전 대표를 탐구해 본다.


■ ‘6大 키워드’로 본 文

1.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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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표에게 ‘노무현’은 ‘자산이자 질곡’이다. 노 전 대통령을 빼고는 문 전 대표의 인생을 설명하기 어렵다. 인권변호사의 길, 재야 활동가의 길, 청와대 활동과 정치의 출발지가 모두 ‘노무현’에서 비롯됐다. 저서 ‘운명’에서 고백하기도 했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랬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 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467쪽)

문 전 대표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부산팀’의 좌장이었다. 부산팀은 노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과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인연을 맺은 인사들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에 입성했고 대부분 지금까지 문 전 대표를 돕고 있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죽음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가족·측근 비리 의혹과 검찰 수사 등으로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고 간 것에는 당시 가장 가까이서 대통령을 모신 문 전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운명’에서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며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토로했다.


2. 부산사나이

실향민의 아들로 거제도에서 출생하고 부산에 정착한 문 전 대표의 고향 사랑은 누구보다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접고 로펌을 창립했을 때 법무법인 이름이 ‘부산’이었다. 청와대 참모로 일하다 1년 만에 그만둔 뒤에는 곧장 부산으로 내려갔다. 문 전 대표는 1979년 박정희 군사정권에 조종을 울린 부마항쟁의 중심지도, 1987년 6월항쟁 때 전국에서 가장 먼저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가 만들어진 곳도 부산이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운명’에서 “4·19혁명, 5월 광주항쟁, 6월항쟁 등 민주화 혁명 중 6월항쟁이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부산에 대한 강렬한 애정, 부산 출신에 대한 자긍심 이런 것들은 정치 입문 후 다른 지역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 때였던 2006년 “노 대통령이 부산 출신인데 왜 이 정권을 부산정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 안 된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 전 대표는 최근 ‘법무법인 부산’의 지분을 정리했다.


3. 패권주의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의 기원과 관련, 전문가들은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2010년 지방선거 완패 이후 ‘폐족’이 됐던 친노(친노무현) 그룹이 2011년 ‘혁신과 통합’을 깃발로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을 접수하고 모바일선거로 당을 장악한 뒤 2012년 19대 총선 때 전략공천으로 대거 국회에 진입한 것을 꼽는다. 강한 이념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피아(彼我)를 가르고, 집단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선악을 구분하며, 열렬한 지지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집단행동을 벌이는 것 등이 패권주의의 특징이다. 최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분권형 개헌 저지 보고서’나 이에 반발하는 당내 다른 대권 주자와 정치인들이 문자와 전화 테러에 시달린 것 등이 패권주의의 전형적 행태라는 평가가 많다.

패권주의는 대세론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현역 대학교수 600여 명이 문재인 싱크탱크에 이름을 올린 것은 패권주의와 대세론에 따른 줄 세우기와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문 전 대표가 얼마 전 몇몇 재야 원로들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대세론’을 설파했다는 설도 나돈다. 2012년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 친문 패권주의에 있다는 내용의 대선평가보고서를 당 차원에서 내려다 제지당한 것 역시 패권주의자들의 반발에 따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문 전 대표는 저서 등에서 “혐오의 정치가 아닌 화쟁의 시대로 가서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며 패권주의의 종언을 약속했지만 문 전 대표가 ‘진영’이란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비판은 대선 기간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4. 호남 정서

대선과 총선 등에서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와 철회를 반복하는 호남 유권자들의 표심과 궤적은 다분히 전략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노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표로 이어진 ‘호남 홀대론’과도 깊숙이 연결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호남이 내가 좋아서 찍어줬나’는 말에서 시작된 홀대론은 후일 호남인사 차별, 호남학살론 등으로 증폭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와 북한 정권의 뒷거래를 캐는 ‘대북송금 특검’을 승인한 것도 호남 주민들에게는 친노·친문 집단에 대한 ‘원죄론’의 근거로 남아 있다.

문 전 대표는 정권교체를 해내려면 호남의 지지가 필수적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새해 첫날 무등산 해맞이 등반 후 문 전 대표는 “호남은 민주주의의 본산이고 우리당의 뿌리”라며 “지난 총선 때 호남의 지지를 받고 싶은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드린 말씀이었다”고 해명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호남하고 저는 정권교체를 함께해야 할 동반자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5. 종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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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터지고 흥남철수가 이뤄질 때 문 전 대표의 부모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도 거제도로 탈출했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이 특전사 출신임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 문 전 대표에게 종북 공세는 늘 버거운 짐이다. 2012년 대선 때에는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이 대선 쟁점이었는데 올해 대선에서는 ‘송민순 회고록’으로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문 전 대표가 2007년 유엔 대북 인권 결의안 표결에 임하는 정부 입장을 정하는 자리에서 ‘북한에 물어보자’고 했다는 회고록 내용이 대선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최근 공식 회의 석상에서 “문 전 대표가 북한에 물어보자고 한 것이 최순실 사태에 덮여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최근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발언한 것도 불에 기름을 부었다.

문 전 대표는 이를 ‘종북몰이’라고 비판한다. ‘송민순 회고록’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비망록과 다르다”고 주장했고, 대통령 당선 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것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의 ‘건강한’ 안보관을 확인이라도 하듯 최근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매달린다면 김정은 정권은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는 ‘취소’에서 ‘전략적 모호성’으로 한발 물러났다.


6. 권력의지

문 전 대표는 늘 권력의지 빈약이라는 비판을 달고 다녔다. ‘보스형 리더십’이 아닌 ‘사회자 리더십’ 평가를 받는 것도 같은 비판이다. 친노 리더가 아니라 친노 그룹에 휘둘리는 사람, 시민사회에 휘둘리는 사람 등 평가도 권력의지 빈약을 보여주는 것이란 해석도 있다. 문 전 대표의 측근들은 오랜 인권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약자들의 말을 경청하는 버릇에서 배태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이번 대선 정국에서는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다. 강한 권력의지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17일 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4·13총선에 출마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선) 3수를 할 생각이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문 전 대표는 내 일생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했을 때를 중학교 입시를 앞둔 초등학교 6학년 때, 해남 대흥사에서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 그리고 지금(대선) 등 세 번이라고 밝혔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