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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Who, What, Why 게재 일자 : 2017년 01월 18일(水)
罪 욕하며 富 동경…최순실 사태로 본 ‘블레임룩’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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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초 덴마크 올보르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될 당시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던 정유라 씨.

- ‘나쁜 그들’의 패션을 보는 二重시선

최순실 구두·정유라 패딩 등
국정농단 관련자 패션 화제

그들의 특혜·불법 비난하지만
어떤 옷을 입는지에도 호기심

브랜드는 인지도 상승 효과
부정적 이미지만 강해질수도


“우리 제품 아닙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될 때 입고 있었다는 N사의 패딩 점퍼에 대해 N사 측은 이렇게 해명했다. “해당 보도가 나간 뒤 본사 제품과 비교해봤는데 디테일이 많이 다르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엉뚱한 곳으로 번지며 벌어진 해프닝이다. 지난해 최고의 유행어로 손꼽히는 영화 ‘곡성’의 명대사 “뭣이 중헌디”는 이럴 때 쓰는 게 딱 알맞다. 비선 실세 사태로 시끄러운 대한민국에서 최 씨의 딸이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하지만 대중은 궁금해한다. 그가 체포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직후 하루가 넘도록 ‘정유라 패딩’이라는 키워드는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장시간 차지했다. 부정적 사건에 연루되거나 문제를 야기한 이들이 착용한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을 좇는 현상인 ‘블레임 룩(Blame Look)’의 전형이다.

◇블레임 룩, 언제 처음 등장했나?

포털 사이트 네이버 기준으로 ‘블레임 룩’을 검색하면 2007년 9월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다. 당시 학력 위조 및 횡령 의혹을 받던 미술관 큐레이터 신정아 씨에 관한 보도다. 그가 200만 원대 D사 재킷과 40만 원대 B사 청바지 등 ‘시즌 한정판’을 입고 있었고, 그가 착용했던 티셔츠를 판매하는 백화점 매장에 구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검색창에 ‘신정아’를 넣으면 ‘패션’이 연관 검색어로 가장 먼저 뜬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블레임 룩’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이 같은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처음 포착된 것은 지난 1999년이다. 탈옥 후 전국을 누비던 신창원은 이탈리아 브랜드인 M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지개 패턴 티셔츠를 입어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중에 이 티셔츠는 소위 ‘짝퉁’인 것으로 확인됐으나 각종 매체에서 그를 패러디할 때마다 무지개색 티셔츠가 단골처럼 등장했다. 그를 추종하는 이상한 기류까지 흐르며 비슷한 느낌의 모조품이 대거 유통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로비스트 린다 김의 선글라스가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는 폭행 혐의로 법정에 소환될 당시 E사의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로비스트 활동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진 린다 김의 선글라스는 일종의 부를 과시하는 도구처럼 여겨졌다.

▲  지난해 10월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 씨가 입장하는 과정에서 벗겨진 그의 명품 신발.

◇저변에 깔린 ‘양가 감정(兩價 感情)’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는 유독 블레임 룩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았다. 사건 초기 최 씨 모녀 거처의 신발장을 가득 메운 명품 신발이 공개되며 세간의 화제를 모은 데 이어 지난해 10월 최 씨가 검찰에 출석해 입장하는 과정에서 벗겨져 덩그러니 남겨진 신발이 명품 P사의 제품이라 눈길을 끌었다.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 역시 지난해 11월 구속 당시 200만 원 상당의 명품 브랜드 M사의 패딩을 입고 있었다.

일반 심리학에서는 ‘블레임 룩’을 좇는 대중의 심리를 ‘양가 감정’으로 본다. 이는 두 가지의 상호 대립되거나 상호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다. 이를테면 최순실의 딸로서 온갖 특혜를 입은 정유라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가지면서도,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르는 재산을 가졌다는 최순실의 딸이 입는 옷은 어떤 브랜드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동경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학과장은 “블레임 룩을 좇는 현상은 유명인이 입는 의상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욕할 때는 상대에 대한 ‘인정’이 포함된다.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상대라면 욕을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라며 “블레임 룩은 상대방의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그의 사회적 위치나 부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이 깔린 양가 감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블레임 룩의 상업적 손익을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대대적 언론 노출을 통해 해당 브랜드나 제품의 인지도는 상승했으나, 긍정적 이미지가 확대됐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입은 옷이나 액세서리를 똑같이 착용하려는 이들은 드물다”면서도 “하지만 사건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큰 부를 쌓은 인물이라면 그들이 선택한 브랜드의 가치가 상승해 해당 브랜드의 다른 의상이나 액세서리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블레임 룩 현상 부추기는 언론 보도

블레임 룩에 대한 관심이 해당 브랜드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것은 단언할 수 없는 반면, 언론 매체의 잇단 보도가 블레임 룩에 대한 대중의 비상식적인 관심을 증폭시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대적인 보도가 이에 무관심하던 대중까지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블레임 룩에 대한 보도는 해당 의상을 입은 사건 당사자들의 심리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껏 드레스를 차려입고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던 여배우가 행사를 마친 후 관련 보도와 댓글을 일일이 살피며 다음 행보를 준비하는 것과 유사한 행태다. 국내 보도를 접한 정 씨는 국내 송환이 결정되면 입국 시 착용할 의상을 심사숙고해 고를 것이고, 이는 다시금 화제로 이어질 수 있다.

배 학과장은 “정유라 씨도 체포 당시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이번 입국 때는 의상을 고르는 데 고심할 것이다. 의상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며 “‘욕을 먹는다’는 것은 곧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고, 대중의 관심사가 되는 의상 선택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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