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1047) 51장 대통령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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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의 사쿠라 빌딩 옥상에 대형 TV가 설치되어 있다. 지상 10층 높이인 데다 가로 15m, 세로 5m의 규모여서 교차로의 행인들이 보기 좋은 위치다. 오후 7시, 교차로의 행인들이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걸음을 멈추고 모여 서서 TV를 올려다보고 있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곧 사거리는 TV를 올려다보는 인파로 가득 찼다. 화면에는 바다를 뒤덮은 선박을 비추고 있다. 실제로 바다는 온갖 선박으로 덮여서 장관이다. 크기와 종류별로 배열시켜서 보기도 좋다. 화면 밑에 1만2500척이라는 글자가 떠 있다. 대한민국 남해상에 대기 중인 상륙선인 것이다.

그때 화면이 바뀌더니 군(軍)부대가 비쳤다. 부대에 집결한 병사들은 모두 무장 상태로 훈련 중이거나 대기 상황이다. 이어서 부대를 공중 촬영한 사진이 비쳤고 6개 부대가 차례로 나왔다. 다시 화면 밑에 글자가 나왔다. 25만5000명이다. ‘대마도 상륙군’인 것이다. 화면에 기자가 나와 병사를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고 밑에 자막으로 보여준다. CNN 기자가 병사에게 물었다.

“대마도를 점령하다가 목숨을 잃어도 됩니까?”

그러자 젊은 병사가 비웃는 표정으로 기자를 보았다.

“우리는 명령을 받으면 기쁘게 죽습니다. 이것이 군인의 의무이고 보람입니다.”

자막 밑에 군인의 신상명세가 깔렸다. ‘북한군 제12특전대 이등중사 고복철’이다. 그것을 본 긴자의 인파들은 침묵했다. 탄성도, 분노의 외침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바다를 메울 듯이 덮인 배가 보였고 해설자의 말이 자막으로 떴을 때 인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무덤덤한 표정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인파 속에 끼어 있던 도쿠가와가 발을 떼며 묻자 옆을 따르던 사토가 대답했다.

“전의(戰意)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맛살을 찌푸린 사토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기세에 압도당한 분위기입니다.”

도쿠가와는 발만 떼었다. 자신도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대마도는 지금까지 일본 영토였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난데없이 대한민국 측이 영토를 수복한다느니 하면서 저런 쇼를 벌이면 이쪽에서도 분개해 맞받아쳐야만 한다. 그런데 저 꼴이라니, 마치 늑대를 피하려는 양떼처럼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도쿠가와가 혼잣소리처럼 물었지만 사토가 대답했다.

“정부에서 지금도 일·미 방어 협정을 믿고 상황을 오판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신호등에 멈춰선 도쿠가와에게 사토가 말을 이었다.

“국민은 일·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이 일본 편만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더구나 중국도, 러시아도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

“조금 전 화면에서 보셨다시피 북한군은 굶주린 개떼들입니다. 대마도를 거쳐 이키섬, 그리고 본토까지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금 SNS에서는 별 소문이 다 떠도는 중입니다.”

“서동수, 그놈.”

마침내 도쿠가와가 이 사이로 말했다.

“그놈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한민국의 운이 트였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