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표적 지성 다치바나 서가 ‘고양이 빌딩’에는… 인생이 꽂혀있다, 知性史가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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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문학동네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쓴 오드리 니페네거의 그래픽 노블 ‘심야 이동도서관’에는 자신이 평생 읽은 모든 책이 꽂혀 있는 도서관이 나온다. 자신이 읽은 책은 물론 신문, 광고지, 시리얼 봉투, 자신이 쓰고 다시 읽은 일기까지…. 한 사람이 읽은 모든 것이 꽂혀 있는 도서관이라면 그곳은 그 사람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의 모든 것,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담겨 있고 걸쳐져 있으며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책을 펼친 이유, 우연과 운명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시작된 격렬하고 때론 미세한 변화들까지. 그렇기에 바람 부는 새벽, 우연히 길모퉁이에서 자신의 ‘심야 이동도서관’을 만난 주인공이 그 도서관을 다시 만나기 위해 평생 곳곳을 헤맨 이유를, 그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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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77)의 서가라면 그곳 역시 그의 인생이다. 다만 그의 서가는 한 개인의 생에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을 넘어서는 시대의 지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다치바나가 자신의 서재를 둘러보고 그곳에 꽂힌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그런 책이다. 그의 생이자 시대의 지적 계보.

그의 서재는 규모 면에서 위협적이다. 지하 2층, 지상 3층의 빌딩 자체가 그의 서재이다. 측면에 그려진 고양이 때문에 ‘고양이 빌딩’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20만 권이 쌓여 있다. ‘꽂혀 있다’가 아니라 ‘쌓여 있다’고 한 것은 계단 옆과 옥상에 이르기까지 빈자리라곤 없이 책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서가 수와 서가당 평균 책 수를 곱해 어림잡아 20만 권이라고 했지만 그조차 정확히 몇 권이 쌓여 있는지 알 수 없는 서재다.

다치바나가 이 책을 내게 된 것은 서가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와이다 준이치(田純一)의 작업에서 시작됐다. 서가란 무릇 책이 끊임없이 들고 나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처음엔 정지된 한순간의 서가를 찍는 것에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와이다가 작업할 때 서가에 서서 꽂힌 책들에 대해, 그때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새삼 그곳이 자기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보인다. 책등을 보기만 해도 내가 그 책을 사서 읽었던 시기의 추억이 잇따라 되살아난다. 그 무렵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고뇌했으며 또 무엇을 기뻐했던가, 책과 함께 그런 추억들이 되살아온다. 나의 분노와 고뇌가 책과 함께 있었음을 떠올린다. 어쩔 수 없이 더러워진, 여기저기 얼룩진 책일수록 버리기 힘든 것은 그 책을 되풀이해서 읽고, 줄을 긋거나 메모를 했던 추억이 거기에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된 고양이 빌딩. 위 사진은 사진작가 와이다 준이치가 찍은 고양이 빌딩의 3층 동쪽 서가와 남쪽 서가. 문학동네 제공

그는 고양이 빌딩 1층 안쪽, 오래전에 정리해둔 채 몇 년째 변화 없는 서가 앞에서 그곳에 오랫동안 꽂혀 있던 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죽음에 대한 책들이다. 이어 그는 대략 일정한 주제별로 꽂혀 있는 서가를 따라가며 책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신의 서가 앞에 서서 문학, 신학, 철학, 인류학, 미술사, 물리학, 생물학 등을 넘나들며 책과 학문 세계 전체를 조망해 나가는 그의 해설은 압도적이다. 그 속엔 자연스레 그의 전방위적 관심사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그런 관심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돼 확장돼 왔는지 알려 준다. 책들에 얽힌 그의 개인사와 일화도 풀려나온다. 실용적 측면에서 보자면 책의 대가가 특정 주제에 대해 어떤 책을 어떤 단계로 읽어가면 되는지를 알려 주는 매우 유용한 독서 리스트이기도 하다.

책에 대한 로망에 끌려 찾아오는 관광객이 꽤 많은 고양이 빌딩에 대한 다치바나의 가이드 투어가 끝나면 그의 또 다른 서고인 산초메(三丁目) 그리고 릿쿄(立敎)대 연구실 서가로 옮겨 설명을 이어간다. 그의 서가는 그의 머릿속을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펼쳐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수록된 와이다의 사진을 보다 보면 알파고에 졌다 해도 인간 두뇌의 위대함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시대는 지나, 단말기에 수백, 수천 권을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건물 전체에 읽은 책, 읽고 싶은 책, 언젠가 읽을 책을 쌓아두는 이도 아마 그가 거의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치바나와 함께 우리 시대 대표적 독서광이자 애서가이며, 장서가로 꼽혔던 움베르토 에코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으니 그는 책, 특히 종이책을 경배하는 거의 마지막 세대의 대표 선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 우리 맘을 아는지 다치바나는 서재를 돌며 이런 말을 했다.

“현실에 대해 평소 생활과는 다른 시간 축과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 그런 행위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촉구하는 책이야말로 하나의 작업이 끝난 후에도 반드시 남겨두어야 할, 오래도록 도움이 되는 책인지 모르겠다. (중략) 책이라는 것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좋은 책일수록 텍스트나 콘텐츠 이상의 요소가 의미를 갖게 되고, 그 요소들이 모두 독자적인 자기표현을 하는 종합 미디어가 된다. 그런 책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가장 많이 사서 읽는다. 책의 세계를 경제적으로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구조가 계속되는 한, 종이책의 세계가 끝나는 날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책에 대한 경배를.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