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과 불황의 순환… 경제가 앓고있는 ‘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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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 / 토마스 세들라체크·올리버 탄처 지음 / 세종서적

자본주의는 역사상 인류가 공동생활을 시작한 이래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경제체제다. 18세기 중반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자유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을 도입하고, 19세기 후반 레옹 발라와 앨프리드 마셜이 신고전주의로 계승한 후 20세기의 영국 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공공 또는 국가의 보완적 역할을 강조하는 이른바 ‘케인스 경제학’을 내놓으면서 21세기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국가 성장의 동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2008년 전 세계가 유례없는 금융위기에 직면하면서 이 같은 믿음에도 균열이 생겼다. 케인스 이후의 경제 석학들은 ‘포스트 자본주의’ ‘진화경제학’ 등 새로운 전망을 하며 위기 탈출의 해법을 찾고 있다.

그런데 다양한 해법 중에 정신분석학을 들이댄 것은 이 책이 처음 같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앓아누웠기 때문”이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구스타프 융의 정신분석학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제목에서 보이듯 경제를 정신과 의사의 소파에 누운 환자에 비유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경제 증후군을 앓고 있다. 물론 우리는 지금의 경제 시스템 덕분에 큰 진보를 이뤘다. 그러나 동시에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병에 빠지고 말았다.

저자가 경제를 조종하는 다섯 가지 정신장애로 지목한 것은 현실인식장애, 공포증, 정서·정동장애, 충동조절장애, 성격장애다.

현실인식장애는 서비스 및 소비재 산업의 이윤을 증가시키는 데 일조한 쾌락 원칙의 병적 ‘후손’이다. 경제 시스템에서는 사디즘, 나르시시즘, 사도마조히즘의 행동패턴이 감지되는데, 과도한 경쟁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쾌락을 주는 사디즘적 공격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경쟁 일변도의 삶에선 더는 자유로운 거래의 긍정적 효과를 누릴 수 없고 경쟁에 동참하지 못하는 순간 경제적으로 죽게 된다. 경쟁의 자유가 강요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공포증은 부정적 극단에서 현실을 왜곡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으킨다. 위기의 시대에 특히 공포 마케팅이 성행하는 건 이 때문이다.

정서·정동장애는 양극성 장애, 일명 조울증이다. 점점 빨라지는 호황과 불황의 경기순환은 양극단의 혼돈을 만든다.

충동조절장애는 투자은행의 태도에서 느낄 수 있는 병적인 도박중독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도벽’이다. 또 성격장애는 이타주의보다는 잔인한 경쟁에 더 익숙해진 경영자들이 시스템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최고경영자들은 직장에 들어서자마자 잔혹한 ‘미스터 하이드’가 되고 퇴근할 때는 성실한 ‘지킬 박사’로 돌아간다.

정신분석학은 신화와 관련이 깊고 신화의 해석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저자 역시 정신분석의 방법과 신화의 도구를 동시에 활용했다.

히브리의 구전문학에 전해지는 ‘릴리스’(Lilith) 신화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경제 해석 도구로 쓰이고 있다. 릴리스는 성서 속 아담의 첫 번째 아내이자 이브보다 먼저 창조된 최초의 여성이었다. 릴리스는 아담과 똑같이 진흙으로 빚어졌고 모든 면에서 아담과 평등했다. 그러나 억압을 느끼고 스스로 에덴동산에서 뛰쳐나갔다. 릴리스는 자유를 얻는 대신 신으로부터 무서운 저주를 받았다. 그는 매일 백 번씩 아기를 출산하고 다시 그 아기를 죽여야 했다. 최초의 자유인이던 그는 하루아침에 악마의 상징이 됐다.

릴리스의 신화는 소비와 파괴의 순환을 보여준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그는 파괴적 경제의 시작과 끝이자 알파와 오메가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스타 경제학자의 분석은 설득력이 충분하다. 시장은 합리적이고 성장만이 경제 문제의 유일한 해답이라는 굳은 믿음을 돌아보게 하는 도발적인 책이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