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혁신은 ‘비트’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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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메이션 / 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김태훈 옮김 / 동아시아

오늘날, 정보라는 말은 모든 곳에 있다. 정보사회, 정보국가, 정보혁명, 정보기관, 정보량, 정보망, 정보력……. 접두사처럼 정보는 여기저기 달라붙는다. 유형과 무형을 가리지 않는다. 어쩌면 접미사일 수도 있다. 금융정보, 결혼정보, 교통정보, 군사정보, 생체정보……. 정보는 사방 모든 곳에서 흘러나온다. 세상 모든 것이 정보로 변하고 있고, 또 정보를 발신하는 중이다. 마침내 인류가 아톰(Atom)을 발견한 것일까. 정보는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인 것도 같다. 하지만 정보가 무엇인지 실제로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 사전을 찾아보아도 정보가 무엇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정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보는 “관찰이나 측정을 통하여 수집한 자료를 실제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리한 지식 또는 그 자료”를 뜻한다. 이러한 정의는 일상적이지만 아주 어정쩡하다. 관찰이나 측정이 아닌 방식으로, 예를 들면 순수사유를 통해 얻은 지식은 정보가 아니란 말인가. 또는 똑같은 지식이라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정보가 아니란 말인가. 미흡한 정의는 과학적으로 오히려 혼란을 가중할 뿐이다. 수집 방법이나 용도 같은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고 정보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면 정보과학은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마도 컴퓨터가 이룩한 혁명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을 해낸 것이 바로 클로드 섀넌이라는 과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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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은 구술 사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보 개념의 역사를 추적한다. 650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 속에서 저자는 고고학자가 되어 문학과 철학, 수학과 과학의 영웅들이 인류의 역사를 가로지르면서 퇴적한 지층을 차례로 파헤친다. 아프리카에서 정보전달에 ‘말하는 북’에서 출발한 탐험은 플라톤, 비트겐슈타인, 매클루언, 에드거 앨런 포, 보르헤스, 루이스 캐럴 등의 사유를 향해 뻗어가는 동시에 노이만, 맥스웰,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 전설적 물리학자들의 이론을 적재적소에 얽어맨다. 여기에 쿠르트 괴델, 클로드 섀넌, 앨런 튜링이 그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는다. 지식의 전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저자의 종횡무진은 경이롭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는 지식의 역사 전체를 살필 수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정보라는 말을 우리가 그토록 자주 사용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정보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정보가 의미와 전혀 관계없는 기술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과학에서 사용하려면, 단순화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섀넌이 그 일을 해냈다. 섀넌에 따르면, 정보는 의미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통신의 근본 문제는 한 지점에서 선택된 메시지를 다른 지점에 정확하게 혹은 비슷하게 재현하는 데 있다.” 이러면 정보는 사람과 관계있는 의미의 정확한 전달 문제가 아니라 어떤 메시지(정보형식)의 물리적 재생산 문제로 바뀐다. 예를 들면 한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다른 유전자에 복제되거나 복제에 실패하는 일과 똑같은 것이 된다. 예와 아니오로 이루어진 세계의 기본 입자, 다시 말해 0과 1의 이진수로 표시할 수 있는 정보의 기본단위인 ‘비트’가 여기에서 태어났다. 그러고 나자 정보는 세상 전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날 정보는 지구와 우주의 운동에서부터 생명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휩쓰는 홍수와도 같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비트가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입자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정보는 “우주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모습”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혁신은 대부분 비트로부터 나온다. 운동의 법칙이 증기기관을 낳고, 에너지의 법칙이 전기기구를 낳았듯이, 정보의 법칙은 컴퓨터를 통해 세상을 완전히 혁신하는 중이다. ‘인포메이션’은 정보가 인류 활동의 핵심으로 들어서는 흥미로운 전개와 그것이 정제되어 이론화를 거친 후 다시 모든 곳으로 넘쳐흘러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비약적으로 높이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과학’처럼, 이 책 역시 과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일정 수준의 지적 능력이나 과학 소양이 필요해 보인다. 인터넷이 만들어 낸 정보의 우주는 많은 지식을 가볍고 얄팍하고 짧고 간소하게 만들지만, 중요한 깊이를 담은 지식들은 여전히 끈질긴 도전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인포메이션’은 시간을 들여 완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장은수 출판평론가